과정 중입니다. 보류 중인 정체성과 강점
브런치를 다 쓰면, 디자이너의 성과와 기준과 관련해서 무언가 뚜렷하게 보일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성과’라는 단어가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지지만, 머릿속에 맴돌던 ‘성과’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은 정리가 되는듯 하다.
1. 설렘 이라는 동력
2. 정체성, 소속되고 싶은 마음 (도달하고 싶은 곳)
3. 강점에 대한 갈망과 경계 (판단 기준과 발판)
4. 직업 만들기의 과정과 기준 (경로)
1. 설렘
새로운 곳에서 새로 시작하면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몇 달째 뜯고 고치며 다각도로 조합하고 있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쌓기보다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모은 나의 경험과 이력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 보인다. 나 스스로도 나의 가능성을 새로이 발견하는 중이다.
여전히 나의 일을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참고할 만한 사람이 없어 나의 경력의 조각들은 어떻게 보면 참신하고 용기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없이 부족하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요리조리 실험 중이다. 그 반응을 보는 것은 설레면서도 두렵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에 더 불을 지펴 불안한 이 길을 주저 않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가려고 하는 중이다.
2. 정체성
차곡차곡보다는 산발적으로 쌓은 나의 경력은 정체성 또한 어디에 속할지도 애매해졌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 걸쳐져 있으면서도 어느 것에도 소속되지 않기도 하다: 모든 곳에 속하면 되지 않냐고 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 필드 내에서 나의 경력을 보았을 때 텅 비어있는 부족한 부분은 아프게 다가온다.
나의 출발점인 인테리어(공간) 디자인은 집과 같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전형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경력과는 멀기에 나는 스스로 내놓은 자식, 모난 자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또 하나의 학사가 미디어 그래픽에도 속할 수도 있겠다고 하기도 하지만, 나의 미디어 그래픽 지식과 경험은 충분히 섬세하지는 못하다. 나의 모든 관심사가 공간 중심이기에 미디어 그래픽 그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전 회사의 내 상사는 내가 도시 전문가 혹은 도시계획가라고 알고 있다. 디자인 배경으로 접근한 나의 실무경험인, 도시 및 공간 전략은 건축에서 보기에도 도시에서 보기에도 다들 갸우뚱하는 경험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내 포트폴리오를 본 많은 이들이 내가 하는 일은 서비스 디자이너라고 하였다. 정작 서비스 디자이너 실무자는 웃었다. 내가 쓴 방법론이 브랜딩 전략과도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경력에 브랜딩에 힘쓰는 민간보다는 브랜딩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공공과 일한 경험이 대부분이다.
모두에 속한다는 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한편 나 스스로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면서도 가장자리에 머물며 속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단단한 기반을 주어 좀 더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이제는 어딘가에 속해 나의 정체성을 좀 더 단단하게 다지고 싶은 마음이 커져간다.
3. 강점
다른 무엇보다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 기반이 될 나의 강점을 더듬어 본다. 이때 스스로 ‘나 이거 잘해’라며 수많번 되뇌는 것보다 남들이 내게 강점이라고 해준 것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 대학교 강사로서 나의 강점은 실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에 비해 스스로의 실무 경력이 짧다고 움츠려있던 나는 의외의 발견에 갸우뚱했다. 동시에 여전히 내 실무 경험은 자랑할 만큼은 되지 못한 채 작고 귀여운 정도일 뿐이라고 느껴졌다.
이전 회사 다닐 적에는 나의 강점이 지식(경제 이론과 같은)과 그래픽 기술이라고 하였다. 디자인 배경으로 다른 영역의 실무자들(금융, 경제, 도시 계획 등등)과 일하면서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구잡이로 주어 담은 지식과 기술이 강점이라니. 내심 뿌듯하면서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기반 없는 바닥에 서 있는 것 같아 이 장점도 내세우기에도 불안하게 느껴졌다.
잘한다고 들은 강점이 스스로 납득하기 어렵다 보니, 나는 꾸준히 ‘나의 장점을 도저히 모르겠다’라며 그나마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좋아하는 것을 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잘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사람’이란 나에 대한 수식을 들었다. 괜스레 나 스스로가 잘하는 효율적인 사람도, 빠릿빠릿한 사람도 되지 못하는, 좋아하는 것을 좇으며 미련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삐쭉되기에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강점들은 언제라도 무너질 듯 바스스 했고 기대기 어려웠다. 내게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되면 “물이 반이나 있네”의 태도보다는 “물이 반밖에 없네”의 태도에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빈 곳만 찾아다니며 스스로의 자신감을 억지로 누르려고 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자신감이 거만함이 되어 나 자신이 독불장군이 될까 봐, 자신감이 거만함이 되는 모습을 보며 강점을 오히려 경계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강점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 한편, 거만함으로 팀을 해체하고 혼자 남을까 봐,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4. 직업 만들기
어떤 글에서 이야기하길, 성과는 변화를 만드는 것이고 그 변화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하며 반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다만, 예측 불가능하고 변수가 너무 많았던 나는 측정을 하기 위해 쌓은 데이터가 더 이상 의미 없는 경우가 더 많았고, 반복하기에는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혹은 측정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들이 많았다. 구불구불한 불확실한 과정을 겪으면서 배우고 얻은 것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가능한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를 일단 모으는 습관이다. 데이터 없이는 판단하기도 변화를 보기도 증빙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더하여, 불확실함 속에서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을 기준이 필요하다. 잘하는 것이 자주 흔들리는 나는 다시 좋아하는 것, 재미있는 것에 기댄다. 어떠한 상황에도 제일 변하지 않았던 것은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나는 변화를 만든 것이 재미있다. 학생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도 변한 공간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좋다. 내가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다.
나의 석사 과정에서 튜터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의 직업을 내가 만드는 과정이 되었다. 이 과정이 과연 결과적으로 자랑스러울지, ‘그러게 남들이 하는 것 잘 참고 하면 좋았을 것을’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끊임없이 시도하는 수밖에. 결과가 어떻든, 새로이 만날 인연을 설레하는 마음을 양분으로 스스로를 보듬으며 혹은 보채며 내 경험과 역량이 가장 잘 쓰일 곳을 찾아 한 걸음씩 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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