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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흐 함 Sep 02. 2024

한국을 한번 더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

2012년에 8월에 한국을 떠나고 7년 만인, 2019년 9월 4일에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2024년 4월 4일에 다시 한국을 떠났다. 4년 반 만에 다시 떠나기로 결심을 한 이유에는 크게 3가지로 정리되었다.

다문화 가족

커리어와 공부

다양성


1. 다문화 가족

우리 집은 다문화가정으로, 남편이 한국 사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가족을 꾸릴 생각을 하는데, 한국에서 가정을 꾸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 생각도 있는 상황에서, 마냥 한국 사람처럼 생기지 않을 아이가 기왕이면, 좀 더 포용적인 곳에서 자랐으면 했다. 4년 반 내내, 열심히 한국어를 연습한 남편이 가게에서 식당에서 한국어로 주문하고 카드를 내밀어도, 직원의 대답은 옆에 먼 산을 보던 한국인인 내게 하고 카드도 내게 돌려주는 상황이 매일같이 일어났다. 남편을 투명인간 취급에 나도 남편도 지친 듯하다. 아이가 한국에서 자라도 이방인 취급받고,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다.


한국에서의 외국인 정책은 여전히 포용적이지 못하고 한계가 많다. 남편이 집주소에 등록되어 있음에도 등본을 출력하면 나는 혼자 사는 사람으로 나온다. 외국인인 남편과 내내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은행, 보험 등의 생활 필수 업무는 내국인인 나보다 훨씬 더 에너지와 시간을 예상해야 하고 복잡하다. 같은 이유로 남편은 한국에 살면서 카카오 결제도 네이버 아이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이는 한국 국적이 가지게 되겠지만, 카드에 다 적히지 않는 이름부터 전형적인 한국인이 아니라면 쉽게 신분 검증이 어려운 시스템 안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망설여졌다.


2. 커리어와 성장의 한계

두 번째는 내가 하는 일의 성장 기로가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디자인이며, 디자인을 방법론으로 활용한 기획 연구를 하는 일이다. 디지털 산업과 함께 커진 업종이며, 전통적인 디자인과는 조금 역할이 다르다. 4년 반동안 내가 하는 일과 맞는 잡 포스팅을 찾았지만, 내가 찾은 곳은 2군데뿐이었다. 그중 하나도 이름과 하는 일은 정작 달랐다.


동시에 나는 공공 일을 주로 하였는데, 공공에서의 디자인 업무는 제한적이고, 내가 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한국에서 그 영역을 만들고자 도전하였지만,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는 곳과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수익구조를 만들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당장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필요가 있다고 하여도, 시장이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는 좀 더 이 산업이 여물은 곳에서 경력을 쌓고 돌아와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였다.


더하여, 내 분야에 대해서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하여 더 기반을 단단히 다지고 싶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분야를 공부하려고 해도, 딱히 그것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한국에서 공부한다면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한국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해야 하기에 시간과 돈을 할애해야 했다. 내가 이제까지 쌓은 관련 경력이 인정하지 않는 상황은 나의 동기를 현저히 저하시켰다.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지도 못하는데 시간과 돈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니. 굳이…


더하여 남편이 한국인이 아니기에 한국외에서 일할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혁신적이라고 한 일이 한국 밖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오히려 반대로 외국에서 했던 일은 한국에서 ‘혁신적’이라고, 진보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모든 분야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공부하고 그대로 인정해 주고 공감해 주는 곳에서 공부하고 이름과 명성도 한국 안팎에서 더 인정해 주고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3. 다양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화 소재의 다양성에 갈증이 느껴졌다. 대화 내용도, 미디어도, 많은 것이 '나의 성공'에 정보도 토론도 강의도 집중되어 있는 것이 내게는 그 외의 것들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다른 기회와 시야를 좁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나를 답답하고 옥죄었다. 나만의 다양한 방향성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고 미디어도 광고에서도 내게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 점점 휩쓸리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정답 찾기에 몰두해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번 주목받으면 빠르게 소모되는 인상을 받았다. 속도에 비해서 논의되는 주제는 너무 좁고 소모적이며 얕게 느껴졌다. 성공의 이미도 너무 좁게 나껴졌다. 누구나 알만한 이름과 해외(특히 서구)에 송공의 이미지가 몰려 있는 느낌이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는 합의한 정답을 추구해야만 할 거 같은 압박감이 미디어의 많은 글과 사회 분위기에서 느껴졌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존재하지 않지만, 내게 생기는 압박감이 생겼다.


한국에서 느끼는 고립감에 조급해졌고 답답해졌다.



물론, 한국을 떠남으로써,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한국을 떠난 현재 더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이 제일 편안 곳이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인데, 한국을 떠나는 즉시 한국에 두고 온 나의 지인들과 나의 시간은 멈출 것이다. 이미 한국 밖에서 7년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느꼈던, 나만 한국에서의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간극을 다시 경험할 생각에 왠지 외롭고 슬프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와서 쌓은 소중한 인연들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고민이다. 모든 것은 사람 간의 관계로 만들어진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고 귀중하지 않은 인연이 없는데 말이다. 무엇보다도 4년 반보다 나이 든 부모님과 가족을 떠나야 하는 것은 편치 않다


더하여, 한국을 나가면, 아시안 여성으로 주목받고 보이지 않는 차별에 끊임없이 대응하면서 더 긴장된 마음은 나를 더 피로하게 만들 것이다. 이름에 대한 오해부터 한국인은, 아시안은 이럴 것이라는 편견부터 눈에 띄는 것, 그 와중에 나는 ‘나‘를 질문하고 내가 예민한 것인지 그들이 무례한 것인지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하며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할 것이다.


더하여 내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리셋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앞으로의 5년을 지내는 것이 잘 상상 가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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