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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타임 Apr 06. 2021

고추는 자랑스러운 것?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젠더 차별 2

전에 TV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은 남자아이를 봤다. 핀란드 아이였던 거 같은데, 아이는 머리를 자르고 싶지 않아서 종아리까지 기르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의지대로 외모를 표현하고 있었고, 부모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사회는 그런 모습을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서 8~9살 남자아이가 머리를 종아리까지 기른다고 상상해보자. 그 아이가 밖에 나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폭력적인 시선과 질문을 들을지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럽다.


다행히 요즘은 SNS에 보면 머리를 기르는 남자아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지만 대체로 아기 때부터 남자아이들은 머리카락이 조금만 자라도 쇼트커트로 자르고, 여자아이들은 머리카락이 충분히 자라지 않았을 때부터 머리에 띠를 두르고 핀을 하고 머리를 묶으며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다져간다. 우리 아이는 이발기의 모터 소리만 들어도 자지러질 만큼 싫어했지만 나는 아이의 머리를 길러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울어도 깎아야 하는 줄 알았다.


남자는 해도 여자는 안된다고?

여름에는 엉덩이에 발진이 날 때가 있어서 아기의 기저귀를 벗겨놓는 경우가 많다. 친척집에 갔는데, 남자 아기가 위에는 얇은 러닝만 입고 아랫도리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집안을 활보했다. 거실은 아주 좁았고 사람들은 많았지만 아무도 아기가 팬티나 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기의 아랫도리를 보고 싶지 않았고, 그 자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봐야만 하는 사실이 불쾌했다.


또 하루는 공원을 지나는데, 아기를 벤치에 세워놓은 채 사방이 트인 곳에서 기저귀를 갈아입히는 걸 본 적이 있다. 엉덩이도 아니고 모르는 아기의 고추를 공원에서 맞닥뜨렸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백일이나 돌 사진을 찍을 때 남자아이들만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 전신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아이가 여자 아이였어도 공원에서 기저귀를 갈아입히고, 친척들이 둘러앉은 자리에 기저귀를 벗겨 놓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 아기의 성기는 자랑스러운 것이어서 내놓고 다녀도 되고, 여자 아기의 성기는 숨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나는 남자든 여자든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아기의 온몸을 드러내 놓는 건 인권침해라고 본다. 남자아이는 그래도 되고, 여자아이는 안 되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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