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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타임 Apr 06. 2021

소녀는 핑크를 얻고 다른 모든 색을 내줬다

컬러가 고정관념에 미치는 영향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앱에 올라온 바깥놀이 사진을 보고 내 눈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 20명 남짓한 아이들이었는데 남자아이들은 빨강, 초록, 베이지, 네이비, 카키, 검정 등 다양한 색의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10여 명의 여자 아이들은 모두 핑크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것도 같은 톤의 핑크였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여자들은 핑크색을 좋아하고 핑크는 여자의 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는다. 여자 아이들의 부모님도 억울할 수 있다. "원래 여자 애들은 핑크색을 제일 좋아한다, 다른 거 입으라고 해도 그것만 입는다"라고 항변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딸아이인 걸 알고 가장 먼저 핑크색 옷을 사준 건 부모님들이다. 남자아이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핑크보다는 대체로 파란색 계열로 아이의 옷과 장난감을 준비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색으로 성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아이들의 옷은 색깔로 성별을 나눈 후에 무늬로도 구분해준다. 남자아이 옷에는 차, 공(스포츠), 공룡 그림이 대부분이고 여자 아이들은 꽃무늬, 하트, 보석으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한다.


우리 아이의 옷장도 파란색과 네이비 일색이다. 우리 아이가 남자아이어서 파란색을 사야지 하고 샀던 적은 없었다. 그저 내복이 필요해서 유아동복 매장에 갔는데 여자 아이 옷은 꽃무늬나 프릴이 달려 있어서 우리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남자아이 옷은 대부분이 파란색 계열이어서 파란색을 제외하면 고를 수 있는 옷이 많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집어왔던 게 옷장을 파란색으로 채우고 말았다.


윤정미 작가의 '핑크 블루 프로젝트'

윤정미 사진작가는 딸이 5살이 되었을 때 분홍색만 입고 싶어 하는 걸 보고, '핑크 블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가진 모든 옷과 물건을 방에 전시해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여자아이들은 온통 분홍, 남자아이들은 온통 파란색 물건 일색이었다. 으레 여자아이들이 분홍을 좋아하고 남자아이들이 파랑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이 프로젝트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파란색 혹은 분홍색 일색인 물건들이 방에 가득 들어찬 사진은 예뻐 보이기는커녕 약간 공포스럽다. 이 프로젝트는 이후에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핑크와 블루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씩 벗어나서 다른 색의 옷이나 물건으로 방을 채웠다.


굳이 핑크나 블루로 아이의 성별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문제는 부모들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좀 색다른 걸 사보고 싶어도 다른 걸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요즘은 직구도 많이 하고, 무채색 계열의 북유럽풍 옷이 유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옷 가게에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옷이 BOY와 GIRL이라고 명확하게 나눠져 있다. 


아이들의 옷과 물건을 남녀로 나누는 건 업체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팔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로봇이 그려져 있고 파란색 일색인 오빠 물건을 좋아할 여동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부모 입장에서는 여자 아이를 위해 마련된 핑크색 자전거와 옷가지 등을 또 사야 한다. 


시장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소비자에게 있다. 부모들이 더 이상 아이 성별에 따라 핑크와 블루를 찾지 않는다면, 유아동복을 판매하는 업체들도 핑크와 블루로 아이들 옷을 나누는 손쉬운 방법이 아닌 더 새로운 디자인을 고안할 것이다. 우리 소비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핑크와 블루를 피하는 유난스러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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