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타임 Apr 06. 2021

크고 멋진 건 아빠?!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젠더 차별 1

아이가 한참 우주에 빠져 있을 때 잠자리에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느 행성이 제일 좋으냐, 너는 행성이 된다면 어떤 행성이 될래' 등의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태양계 행성 중에서 가장 큰 목성이 된다고 했는데, 아이가 목성은 아빠가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왜 목성이 아빠냐, 내가 목성을 하겠다'라고 계속 우겼다. 그러자 아이는 “그럼 태양을 아빠라고 하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아빠는 금성 좋아해. 금성을 아빠라고 하자. 아니면 수성 어때?”하고 크기가 작은 행성을 아빠에 비유하자 아이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내가 계속 우기자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듯 보였다. 그러고는 본인은 두 번째로 큰 행성인 토성을 할 거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행성에 성별이 있는 게 아닌데 아이는 무심결에 가장 크고 웅장한 걸 봤을 때, 엄마 대신 아빠를 떠올렸다. 남성은 크고 힘이 세다는 선입견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 듣는 동요에서부터 엄지 손가락을 아빠 손가락이라고 가르치고, 양반다리를 아빠 다리라고 일러주는 걸.  


EBS 애니메이션의 성차별 요소

아이들이 자주 보는 EBS 만화에서도 성차별적인 요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만화 속 여성 캐릭터는 대부분 핑크색을 대표색으로 하고 항상 조연으로 등장하며 대체로 수줍고 소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착하다.


<뽀로로와 노래해요>의 대표 여성 캐릭터인 루피에 대한 공식 설명은 이렇다. '다정한 꼬마 비버.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상냥한 성격의 루피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다른 만화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


 <냉장고 나라, 코코몽>의 아로미는 작은 몸집에 소심한 캐릭터이고, <로보카 폴리>의 엠버는 수줍은 성격은 아니지만 핑크색 앰뷸런스다. <꼬마버스 타요>의 라니는 핑크는 아니지만 팀에서 소심함을 맡고 있고 덩치도 제일 작다. <미니 특공대>에서 여자 캐릭터인 루시는 핑크색으로 만년 조연에 분량이 적은 편이다. <출동 슈퍼윙스>에서도 남자 캐릭터인 호기가 주인공이고, 여자 캐릭터 아리는 핑크색이며 존재감이 거의 없다. <용감한 소방차 레이>에서 앰비는 항상 자애로운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다.


<강철소방대 파이어로보>에는 세나라고 하는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똑똑하지만 차갑고 거만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대체로 착하고 소심하거나, 싸가지없고 매력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주연이 아닌 모두 조연이다.

 

반면, 프랑스 원작인 <미라큘러스 :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이나 러시아 원작인 <마샤와 곰>은 국산 애니메이션처럼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스토리는 탄탄하다. 미라큘러스는 무당벌레 슈트를 입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마리네트와 검정고양이로 변신하는 아드리앙이 주인공이다. 파리를 구한다는 히어로 설정은 있지만 여자 주인공이 공주로 변신하지 않고 주체적이며 독립적이다. 남자 주인공이 고양이로 변신하는 설정도 독특하다.


<마샤와 곰>에서 마샤는 혼자 사는 여자아이인데 천방지축, 개구쟁이 그 자체이다. 편한 자세로 조용히 지내고 싶은 곰을 종종 위기에 빠트리고, 늑대들을 골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이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공주나 착한 여자가 아니고 입체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이전 06화 나는 젠더차별적이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