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평등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이고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성소수자들을 지지했고 그들의 존재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탓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젠더 차별적이었고, 무지하고 둔감했다.
첫째를 임신하고 나서 식성이 바뀌었다. 평소에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때도 콜라를 먹지 않았는데 임신을 하고 콜라가 엄청 먹고 싶고, 평소 좋아하지 않던 햄버거나 치킨 등도 먹고 싶어졌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하고 입맛이 바뀌었다고 말하면서,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평소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햄버거나 콜라, 치킨을 ‘남자’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여자아이를 배고 케이크를 엄청 좋아하게 됐다면 ‘여자 아이들처럼’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또 아이의 태명을 성별을 알고 난 후 좀 늦게 지었는데, 발차기를 잘해서 '슛돌이'라고 지었다. 명백한 남자아이의 별명이었다. 여자아이였고 발차기를 잘했다면 나는 태명을 뭐라고 지었을까.
태어난 아이는 기질적으로 순하고 겁이 많은 편이었다. 얌전하게 앉아서 놀다 보니 바닥에 매트를 깔지도 않았고, 안전가드나 모서리 보호대를 설치하지 않아도 아이는 몸에 상처 한번 없이 컸다. 그런 아이를 보고 시어머니는 종종 “여성스럽다”라고 말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아는 분이 태아의 성별을 물어봐서 아들이라고 했더니, “천국 예약이야”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아들은 딸보다 키우기 힘들다는 통념이 있어서 아들을 셋 둔 엄마들은 천국 프리패스권이 주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딸 가진 엄마들에게는 이 얼마나 차별적인 말인지. 아이들은 기질에 따라서 순한 아이도 있고 까다로운 아이도 있는 거지 아들이라고 해서 모두 키우기 힘든 건 아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와 남편은 아이의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제법 커서 ‘남자답게’ 생겼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볼 때마다 “장군감이네”를 외치셨다.
그러다 아이가 조금 커서 식당에도 가고 마트에도 갔는데, 처음 본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보고 "여자 아이냐"라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아이라고 대답하면서 다시 아이의 얼굴을 천천히 보았지만 편견에 휩싸인 눈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여자아이 같지는 않았다.
얼마 뒤 남편은 아이의 얼굴을 지그시 보더니 “여자아이 같다”라고 했다. 남성이어서 남자 같다는 생각을 걷어내고 타인의 시선으로 보니 여자아이처럼 보인다는 말이었다. 시어머니한테 사람들이 아이를 보고 여자아이냐고 자주 묻는다고 했더니 아주 당황스러워하시면서 희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았다.
아이는 이발기를 너무 싫어했지만, 돌이 지나고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당연하게’ 아이의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잘랐다.
여자 아이를 키우는 친척 언니가 준 옷을 입히면서 ‘너무 여자’ 같지는 않은지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 여자’ 같지는 않아서 입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얌전하던 아이가 드디어 칼싸움을 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손잡이에 매달리는 등 전에 하지 않던 짓궂은 행동을 하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소 남자다워지는 건가라는 생각에 안도했었다.
우리는 아이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아이의 모든 행동을 성별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고 있었다. 큰 목소리로 옹알이를 하는 건 ‘남자라서 그런지 목청이 좋네’.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 매우 활동적이면 “남자아이라서 그런가 활기차네”라든지. 반대로 생물학적으로 여자아이라는 건 안 상태에서 아이가 목소리가 크고, 지나치게 활기차다면 뭐라고 얘기했을까. “남자 같아”라고 했을 수도 있다.
아마 치마가 입고 싶은 아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아이로 인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차별과 고정관념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