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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타임 Apr 06. 2021

"아빠는 왜 내가 치마 입는 걸 싫어해요?”

남녀 성역할에 대한 고민

아이는 한동안 치마를 찾지 않았다. 대신 나는 치마가 아닌 다른 취향은 적극 존중해주는 방향을 택했다. 핑크색 티셔츠에 토성 무늬로 반전 스팽글이 달린 티셔츠라든지, 핑크색으로 LOVE라고 쓰인 옷, 하트 스팽글 옷 등을 사주었다.


아이한테 먼저 보여주고 "입을 거지?"라고 재차 확인한 후에 사줬는데, 막상 옷을 보자 아이는 기뻐했지만, 유치원에는 입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사주기 전과 말과 달라진 것이다. 아이는 집에서만 입겠다고 했다. 속이 상했지만(또 옷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설득해서 그럼 주말에 입자고 했다. 아이는 못 이기는 척 승낙했다. 그러다 주말에 유치원 친구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아이는 하트 스팽글 옷을 입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이를 설득해서 입혔고, 아이의 친구는 다행히 그 옷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아이에게 "윤호가 이 옷을 보고 놀리지 않았지? 이 옷을 입어도 괜찮아, 아무도 놀리지 않을 거야"라고 다시 얘기해 주었다.


그 뒤로 아이는 약간 자신감이 생겨 하트 스팽글이 달린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갔다. 물론 썩 내켜하는 것 같지 않았다. 사실 가슴에 커다랗게 하트 스팽글이 달린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갈 수 있었던 건 우리 아이에게 종종 여자아이 같다고 놀리던 아이가 다른 유치원으로 전학을 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치마에 대한 욕구가 핑크와 스팽글 따위로 채워지길 바랐다.


아이는 가끔 치마가 입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계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을과 겨울, 봄까지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런데 여름이 다가오자 이제 적극적으로 치마가 입고 싶다고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문득 "아빠는 왜 내가 치마 입는 걸 싫어해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어릴 때는 남자와 여자가 아주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고 가르쳤어. 예를 들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것은 여자의 일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하면 안 된다고 했어. 그리고 남자는 항상 바지를 입어야 하고, 머리를 기르거나 멋을 부릴 수 없었고 울어도 안된다고 가르쳤어. 아빠는 그런 생각으로 40여 년을 살았기 때문에 남자아이인 네가 치마를 입는다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거야.”라고 말해주자 아이는 이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이어서 "남자는 바지만 입어야 하고, 멋을 부리면 안 되고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아빠도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하잖아. 그게 이상한 게 아니잖아.”라고 하니 아이는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더니 “그런데 엄마는 내가 치마 입는 걸 왜 싫어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엄마는 여자만 꼭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간단히 말했다. 사실 나도 왜 싫어하지 않는지 잘 모른다. 경험상 남자아이가 치마를 입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남자 어른보다 여자 어른이 훨씬 더 관대하게 바라본다는 걸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알 뿐이다. 


남편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도 남편에게 '남자는 이래야 해'라고 이야기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남편의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유난히 냉담하고 차별적이었고,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거나 라면이라도 끓이려고 하면 왜 애들을 시키냐고 어머니를 나무랐다. 덕분에 남편은 집을 떠나기 전까지 설거지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남의 성역할이 완벽하게 구분된 환경에서 자랐기에 남편에게 젠더리스(genderless)와 같은 개념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남편은 아이의 취향을 인지하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핑크색에 하트 무늬가 들어간 목욕탕 슬리퍼를 사 오기도 하고, 하트 모양으로 스팽글이 달린 옷을 입었을 때는 예쁘다고 한껏 칭찬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남편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아이도 아빠가 자신을 존중해 준다는 걸 알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치마가 입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하고 싶은 100가지 욕구 중 한 가지일 뿐,
가장 큰 것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하면 좋겠지만 못해도 괜찮은 것이다.
어쨌든 변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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