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타임 Apr 06. 2021

"치마 입어도 괜찮아"

남자아이에게 치마를 사줬다

여자 옷은 남자보다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바지, 치마, 원피스, 뷔스티에, 멜빵, 후드티, 하이힐, 펌프스, 운동화, 가죽, 벨벳 등 거의 모든 소재와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취향에 맞게 입을 수 있다. 


하지만 남자는 훨씬 제한적이다. 대부분 티셔츠와 바지, 운동화이고, 가끔 셔츠나 펌프스를 신기도 하지만 자주 입지는 않는다. 나는 우리 아이가 남자라는 성별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걸 몹시 억울해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치마가 입고 싶다고 했을 때 사실 약간 흥분했다. 나도 드디어 예쁜 옷을 입힐 수 있다니! 


얼마나 입을지도 모르는데 바로 사기는 아까우니 우선 키즈카페의 공주 원피스 코너에서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혀줬다. 아이는 신이 나서 사진 찍는 나를 향해 꽃받침하고 예쁜 척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짧은 머리와 드레스가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예쁘다고 최대한 리액션을 해주었다.


그다음에는 딸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동생에게 작아져서 입지 않는 조카들 원피스가 있는지 물어봤다. 동생은 별말 없이 친정에 몇 개 갖다 놓겠다고 했다. 그 뒤에 친정에 가서 원피스를 아이에게 입혀줬고, 낡아서 늘어난 옷이었는데도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고 뱅그르르 돌면서 치마를 만끽했다. 늘어난 어깨끈을 대충 동여맨 옷을 입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나은 옷을 입히고자 당근 마켓을 뒤졌다. 다행히 5천 원 정도로도 깨끗하고 예쁜 원피스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레이스가 둘러져 있고 비즈로 영문자가 수놓아진 연두색 치마를 사줬더니 얼마나 기뻐하던지 지금도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치마도 사줬으니 전부터 신고 싶어 했던 보석이 달린 구두도 사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참 당근마켓에 빠져서 이것저것 사들이던 때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빨간색 구두를 아이와 함께 골랐고 집안에서만 얌전히 신기로 합의한 후 아이 발에 구두를 신겨줬다. 


치마와 구두를 신고 기뻐하는 아이에게 “네가 원한다면 유치원에 입고 가거나 밖에 입고 나가도 된다”라고 했지만 아이는 밖에서는 입지 않겠다고 했다. 


내 말은 진심이었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아이가 밖에서는 입지 않겠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는 안도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도 일반적이지 않은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치마를 입고 
평소 자신을 여자 같다고 놀렸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아이에게 인도나 인도네시아, 스코틀랜드에서는 남자들도 치마를 입는다고, 치마는 여자들만 입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치마를 입는 남자를 본 적이 없어서인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이전 02화 "엄마, 저도 치마가 입고 싶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