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아침마다 옷 입는 걸로 딸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힘이 든다고 SNS에 푸념을 했지만, 옷에 별 관심이 없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나는 패션쇼를 벌일 만큼 많은 양의 옷도 없고 화려하고 예쁜 옷도 없어서 인지 아이가 5살이 되기 전까지는 옷을 두고 씨름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이나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고, 환경오염에 큰 골칫거리로 떠오른 옷을 원수 보듯이 했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도 최대한 옷을 적게 사서 입었다.
아이의 옷을 사는 기준은 저렴하면서도 편안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는 한 계절 당 4~5벌의 상하복을 열심히 돌려가며 입었다. 나는 한 계절을 바지 두 벌, 티셔츠 몇 개 정도로 났다. 캐주얼한 옷을 입는 회사에 다녀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옷장이 가벼워지니 아침마다 옷을 고르느라 고심하지 않아도 돼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5살이 되면서 점차 자신의 취향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 시작했다. 공룡 그림이 들어간 옷이나,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지 않겠다고 말했다. 남자아이들은 으레 공룡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공룡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를 여러 개 마련해 둔 나는 못 입게 된 옷 앞에 울상이었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설득 가능한 부분인 줄 알았다. 브로콜리나 시금치를 먹지 않으려고 하면 채소를 먹어야 튼튼해진다고 하거나 간식을 준다고 달래서 먹였던 것처럼 옷에 관한 아이의 취향도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걸로 생각했다.
오늘 입을 옷이 이거 하나밖에 없어 입어야 한다고 했고, 나중에는 호들갑을 떨면서 너무 예쁘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이는 원치 않는 옷을 벗어던지고 울면서 저항했고 나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취향은 확고했다. 무지개색과 같은 화려한 색을 대체로 좋아했지만 한 가지 색을 골라야 한다면 항상 핑크색을 골랐다. 그렇게 핑크 수집가가 돼서 집안의 핑크색 물건은 모두 제 물건인양 모았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어느 날은 발레가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굉장히 수줍어했다. 아마 발레를 배우는 친구가 핑크색 레이스가 달린 발레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와서 발레 춤을 추었던 거 같다. 내가 가끔 치마를 입으면 눈을 떼지 못하고 "왜 엄마만 치마를 입느냐"라고 툴툴거렸다. 그때부터 우리 아이가 ‘예쁜 옷’을 좋아한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엄마, 나 치마가 입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보다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다만, 치마를 입고 싶다는 사실보다 '새 옷'을 사야 한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