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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타임 Apr 06. 2021

핑크의 역사

핑크는 남성스러운 색이었다

시대에 따라 의복의 사회적 의미나 색에 대한 정의가 계속 달라져 왔다. 오늘날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핑크와 치마를 여성이 독점한 건 그리고 오래되지 않았다.


아래의 사진을 보자. 여자아이로 보이는가, 남자아이로 보이는가. 놀랍게도 사진 속 주인공은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1844년에 찍은 사진으로 당시에는 남자아이들도 치마를 입고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저 당시만 남자들도 치마를 입었던 건 아니다. 기원전 3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허리부터 발목까지 오는 천을 하나 둘렀다. 인류 최초의 옷이 치마였다. 그러다가 말을 타는 기마 문화가 퍼지면서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전쟁은 남성들에게 바지만 입는 문화를 남겼다. 반대로 여성은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바지를 입었다. 


머리도 잘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는 남성도 머리를 길러서 상투를 틀었고, 60~70년대에는 장발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용모단정을 이유로 거리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두발을 단속했고 오늘날 남성의 머리는 짧은 머리로 정형화됐다. 


남자의 색, 핑크

1918년 미국의 여성 월간지 <더 레이디스 홈 저널>에는 "핑크는 강렬한 칼라라 남자아이에게 더 적합하고, 블루는 부드럽고 앙증맞아서 여자아이들에게 잘 어울린다"라고 나와 있다. 이보다 앞선 1887년 <뉴욕타임스>에는 "분홍은 대개 남자아이의 색으로, 파랑은 여자아이의 색으로 간주되지만 어머니들은 그 문제에서 자신의 취향을 따르면 된다"라고 쓰여 있다. (개빈 에번스, <컬러인문학>) 지금과는 바라보는 시각이 천양지차다. 


핑크를 떠올리면 순수하고 연약하고 귀엽고 포근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핑크는 피를 상징하는 레드에서 기원한 색으로 힘과 권력, 혹은 귀족들만 향유할 수 있는 부를 나타내는 색이었다. 서양에서는 바로크 시대 왕위를 계승할 때 왕자가 핑크색 옷을 입었고, 가톨릭 사제는 사순절에 귀족들이 기증한 핑크색 천으로 만든 제례복을 입었다.


오늘날과 같은 핑크에 대한 인식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의 낙관주의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 이후 밝고 화려한 색상이 주목을 받았고 핑크는 마케팅의 도구로 적극 활용된다. 특히나 여성의 화장품 시장에서 핑크색 제품이 히트를 치면서 핑크는 여성의 색이라는 공식이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컬러인문학>)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마케팅의 승리였다.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초반에는 여자아이는 핑크, 남자아이는 파랑이나 무채색만 입는 걸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컬러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오히려 여성이 핑크를 독점하고 있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색상은 수세기 동안 아니 인류 역사 내내 남성이 독점해 왔는데, 오늘날 유일하게 여성이 독점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피와 힘, 권력을 상징하며 남성의 전유물이던 붉은색은 이제는 붉은 립스틱, 빨강 원피스, 빨강 하이힐과 같이 섹시한 여성을 상징하는 코드로, 핑크색 드레스, 핑크색 물건은 사랑스러움을 표현하는 색으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선택받고 있다.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낮아서 여성들이 선호하는 핑크색도 폄하되는 게 문제지 핑크는 잘못이 없다. 예를 들어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더 올라가는 일이 생긴다면, 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핑크는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아닌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태도나 직업 등에서 여전히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는 의식이 만연한 만큼 여자아이들에게는 여성이라는 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핑크색 입히는 걸 줄이고, 남자아이들에게는 직업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 의식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핑크색도 적극적으로 입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젠더 고정관념없이 자란다면, 체육과 수학을 잘하고 과학자가 되고 싶은 여자아이는 기량을 숨기지 않고 뽐낼 수 있을 것이며, 요리를 좋아하고 보호본능이 강한 남자아이는 사려 깊은 사람으로 성장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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