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교장선생님, 왜 하얀 옷을 입으셨어요!"
계단으로 올라서는데 3학년 지환이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때서야 어제 현서와 지환이가 교장실 앞에 멈춰 서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교장선생님, 내일은 까만색 옷을 입고 오셔야 해요. 왜냐하면 자장면 먹는 날이니까요. 흰색 옷을 입으면 안돼요."
아무 생각 없이 골라서 입고 온 옷이 하필이면 흰색이었다.
"아이쿠! 잊어버렸어. 어떡하지? 큰일 났네."
난처한 얼굴을 했더니 지환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날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으면서 흰옷에 까만 점이 튈까봐 온통 신경을 써야 했다. 급식식단표를 다 꿰고 있는 학생들의 배려 깊은 말을 까먹은 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과 교직원들도 희비가 엇갈렸다.
"이럴 줄 알고 나는 까만 색 옷을 입었지요." 라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어떡해! 난 밝은 색 옷을 입었어."라며 아이들의 충고에 부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탄식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교직원들의 그런 반응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웃으며 한 마디 더한다.
"오늘은 조심해서 드세요. 다음엔 꼭 까만색 옷을 입으셔야 해요."
"그래, 그래. 알았어. 고마워. 다음에도 꼭 미리 알려줘."
우리는 아이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다음에는 꼭 까만 옷을 입으리라 결의에 찬 다짐들을 보여줬다.
선생님들의 옷까지 미리 걱정해주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관심과 표현에 경청하고 진심으로 호응해주는 교직원들 모두가 즐거웠던 점심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표현을 참 잘 한다. 금요일 오후에는
"교장선생님, 행복한 주말되세요.", "내일은 제 생일이라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요." 등
다채롭게 표현하며 주말인사를 하고 간다.
체험학습을 갈 때는 2층에서 배웅하는 선생님을 향해 "예쁜 지혜선생님~ 다녀올게요."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조회대 앞까지 배웅 나온 다른 선생님들께는 "인자하신 지연선생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신나게 출발한다.
외부강사 특별수업이나 체험학습을 가서도 아이들의 긍정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는 남다르다. 남의 얘기를 경청할 줄 알고 어른들과 대화할 때도 자기 생각을 편하게 말한다. 감동의 순간에는 와아~하고 감탄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선뜻 손을 들어 질문을 한다. 설사 그 질문이 하찮거나 엉뚱해도 비난하거나 싫은 표정을 짓는 아이도 없다.
시골 아이들의 경우 순하고 착한 반면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에 서툰 경우가 많았었는데 관기 아이들은 스스럼이 없다. 도시 아이들보다, 다른 학교보다 더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 오랜 교육경험으로 봤을 때 유독 눈에 뛴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 관기에 오니 선생님들이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밝고 활기차요. 아이들도 할 말 다하고 정말 밝고 예쁘네요." 새로 부임하신 주무관님이 신기해하며 느낌을 말씀해 주셨을 때 나만의 생각이 아님을 확신하고 뿌듯해 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은 배움의 순간이다. 교사의 표정, 언어 그리고 교직원들과의 상호작용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겐 학습 환경이고 중요한 학습매체이며 그 자체가 배움이다. 우리 아이들의 밝고 활기차며 적극적인 태도는 어디에서 왔겠는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보살피는 교직원들의 긍정에너지가 뿜뿜 뿜어져 나올 때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었을 테지. 내가 오늘도 우리 교직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