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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Feb 20. 2024

계란찜 위의 인생

나에게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가족이 한명 있다. 어쩌면 나도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 있고 당당하다면 타인의 그런 감정에 쉽게 영향받지 않을 테니까.


내 마음이 많이 단단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계란찜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젓가락만 꽂아도 쑥 하고 들어가버린다.


내가 이 모양으로 사는걸 간신히 참고 있다는 말을 아빠로부터 들었을 때, 나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를 마주했을 때, 사실 그날 잠을 잘 못잤다. 계란찜 표면에서 밑바닥까지 순식간에 하강하는 기분이었다. 나 자신에게도 내가 죽었어야 했는지, 지금 살아있는게 잘못된건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만큼 아직 약하다.


출근하면 어느정도 잊어버리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조금 다운된 기분으로 지내긴 하지만. 영화를 한편 더 봐야겠다. 현실을 잠시 잊어버리게. 시간 낭비 그만하고 뭘 공부할지도 찾아본다. 이렇게 나를 지키려고 애쓴다.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울증의 깊은 늪에 다시 빠지지 않을 거라는걸 안다. 이 절망감이 다리로 내려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걷고, 눈에 필터를 뒤집어씌우기 전에 뭔가 힐링되는걸 봐야한다. 그러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부서졌지만,

조용히, 열심히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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