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적응
한 달 전,
다니던 요가원 선생님께 한의원을 추천받았다.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곳.
내가 이곳으로 들어설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던 곳.
허리가 아파 방문해보니
‘와.. 여긴 찐이다’
2대가 운영하는데,
사극 속 의관이 치료하는 것 같은(?)
그런 조선시대 느낌의 한의원이었다.
침을 맞으며 누워있으니
만족스럽다 못해 뿌듯하기까지 했다.
‘나 이 동네에 진짜 스며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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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된 뒤 총 7번의 이사를 했고
새로운 동네에 5번 적응해야 했다.
아이가 없을 땐
적응하는 일은 즐거움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낯선 길을 걷는 일은 긴장됐지만
이내 적응했고,
맛집 찾기에 실패할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일은 좀 더 많은 피로와 부담감을 불러왔다.
어린이집 찾기, 소아과 찾기,
아이와 갈 만한 식당 찾기..
올 3월
태어나 단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곳으로 이사 왔다.
아는 것도, 아는 사람도 하나 없어
어색해서 싫었던 아파트 단톡방까지 들어가 정보를 얻었다.
적응은 점차 즐거움보다 귀찮음으로 변해갔다.
그런데 그 한의원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큰길에 간판을 보고 찾아가는 병원이 아니라
뒷길 구석에 있는 병원을 알게 된 것은
묘한 뿌듯함을 줬다.
돌이켜보니
구로에 살 때도,
지나다니던 길에 있던 평범한 식당이
알고 보니 살구 밀크티 맛집이었다는 사실을
동네 토박이 친구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웃기지만,
동네 친구를 사귀어 그 친구와 살구 밀크티를 나눠 마시고 있는 그 시간에
난 이 동네에 진정 스며들었다 느꼈다.
‘동네 친구가 생겼어....!
그리고 이 밀크티 진짜 맛있다....!‘
영등포에 살 때도
편의점 지하에, 간판도 잘 안 보이는 그런 호프집을 알게 됐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던 곳인데
무려... 슈 바이 학센까지 파는 찐 혜자 맛집이었고
남편과 난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모든 메뉴를 섭렵!
사장님과 사담 나누는 단골이 됐다.
나중엔 사장님께 주방장과 싸운 하소연까지 듣는 사이가 됐을 정도..?
허름한 호프집이
알고 보니 그 동네 맛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난 비로소 스며들었다고 생각했다.
곱씹어보면
동네에 스며들었다는 건,
내가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됐다는 것보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마냥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한 번쯤은 아는 이를 만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괜시리 긴장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
침을 맞으며 들었던 그 마음도,
좋은 한의원을 알게 됐다는 사실보다
병원을 추천 받으며 일상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갈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빨리 낫자고 말하는 한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비로소 스며들었다 느꼈던 것 같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더 이사를 다니게 될지 모르지만
어서 진짜 토박이가 될 동네를 찾고 싶다.
여기저기 인사 나눌 이가 많은 그런 곳으로.
우리 세 가족이 완전히 스며들 곳은 어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