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1 아빠생활 시작
등교 1일 차 에피소드
아이가 어제 초등학교 입학식을 했고, 오늘 정식으로 등교를 했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초등학생이 생긴 것이고, 덕분에 내게도 학부형이란 타이틀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복이 따라서 아빠로서 육아휴직이라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여건이 안된다고 누군가는 생각할지도 모르나 어쨌든 내 스스로는 가능한 상황이라고 생각해 버림) 이해해 주는 여러 선후배 동료들의 격려와 응원을 뒤로하고 집에서 며칠째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사실 초등학생이 되는 건 아이인데, 아무래도 적응 훈련은 아들과 아빠가 같이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장선생님 말씀이 '아무개 교육학자가 연구해 봤더니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는 부모의 일곱 배만큼 불안해한다'면서 '학교를 믿고 불안해하지 말라' 하시던데, 학교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생소하고 낯선 생활에 던져진 나 스스로에 대한 불안함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그렇게 심각한 정도도 아니고, 어떻게든 하면 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있지마는, 그래도 적당한 긴장은 엄연히 있다.
아이는 그간 주변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입학축하를 수없이 듣는 동안 어리둥절한 듯 별 감정표현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 나에게 본인의 걱정거리를 처음 물었다.
"아빠, 근데 1학년 2반 교실은 어떻게 찾아가?"
"음.. 아빠도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들어가는 길에 물어볼 선생님이랑 어른들이 엄청 많을거야. 너가 1학년 2반 아무개라는 것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될 거야"
아빠와는 교문에서 헤어져야 한다고 하니, 크나큰 학교에서 교실이라는 걸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막상 등교를 코앞에 두고 너도 이제 걱정이 되나 보지.. 싶다가 문득, 아이는 그냥 단순하게 당장 할 일만 걱정하는데 어른이란 아빠는 막연한 미래를 둘둘 말아 눈앞에 끌어다 놓고 걱정을 만들어서 하고 있다 싶어 또 아이에게 한수 배운다는 생각에 이마를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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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하고 담임 선생님 손을 줄줄이 잡고 나오는 아이를 마중하러 학교 교문으로 갔더니, 입가에 짜장소스를 묻히고서 아빠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아빠! 학교 식판이 해군 식판만 해! 엄청 커!"
"우와 그래?"
"응! 그리고 그거 다 먹었어!"
아이는 요즘 군인에 빠져있어, 유치원 졸업식에서 장래희망이 군인이라고 발표도 했다. 아빠가 해군을 다녀왔다고 하니, 자기도 해군이 되겠다나.
그러던 참에 몇 주 전 한강에 있는 서울함공원에 놀러 갔다가 거기 전시된 해군들 식판을 보면서 아이가 엄청 놀라 했다.
"무슨 식판이 저렇게 커? 설마 저걸로 진짜 밥 먹어?"
"그럼, 해군 아저씨들은 힘이 세야 해서 저 식판에 밥이랑 반찬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어~"
"히익?"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해군식판을 오늘 초등학교에서 마주한 것이고, 실제 거기다 밥을 담아 '다' 먹었다는 것 아닌가. 아이에겐 얼마나 자랑스럽고 신나는 이야기인가. 아마 빨리 집에 가서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어 참기 힘들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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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선 하굣길에 집 앞 놀이터에서 놀다가 같은 반 새 친구도 만나고, 집에 와선 아빠, 할머니(영상통화), 퇴근한 엄마까지 첫 등교에 대한 폭풍질문 세례도 세 번이나(힘들다며 칭얼댔지만) 잘 견뎌냈다.
역시 아이는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자라 있고,
뭐든 척척해낼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또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