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얘기를 듣는 사람의 변명
엉뚱할 수도 있겠으나, 누구나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쁜 사람이 된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모두 어련히 갖고 태어나는 것이라 그렇다. 피곤하고 무리한 약속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공연히 남을 왜곡시켜 소문 내기도 한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약은지 싶을 때마저도,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가끔 이해되기도 한다. (항상 그렇지는 못하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은 못 된다. 이어지는 약속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누군가 나를 찾으면, 내 쉼을 미뤄둔다. 더 나은 평가를 받고 싶으면 내가 더 잘 해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혼자 감당하지 못할 일을 떠맡은 사람을 보면 몰래 함께 했다. 부당한 일에 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 대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내가 착한 줄 알았다고 했다. 절대 착해서는 아니었다. 그런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타고난 성격 탓이었다.
그러나 나 또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쁜 사람이 된다. 내가 착한 줄 알고 그 착한(줄 알았던) 마음을 이용하려고 할 때는 절대 얄짤없다. 그런 사람들은 이용하려는 목적을 잘 숨겨서 티가 안 나는 줄 알지만, 실제로 그런 부정적인 의도를 가진 말과 행동은 미묘하게 티가 나기 마련이다.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겠으나) 그런 의도가 느껴지면, 나는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쁜 사람이 된다.
금전적인 이유로 약속을 잡아 불러내거나, 단순한 시기와 질투심으로 괴롭힘을 일삼거나,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일을 떠넘기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넘어갈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런 행동 따위를 참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 착한 줄 알았는데 보통이 아니구나?
'착하다'는 단어를 '바보 같다'는 의미로 쓰는 사람들이었다. 착한 줄(바보 같은 줄, 어리석은 줄, 멍청한 줄,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는 줄) 알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데 나를 이용하려 했지만, 알고 보니 난 착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 속셈이 드러나면 꼭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나 또한 나 자신을 지켰을 뿐인데도.
두루 알려져 있듯이,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좁은 마음 탓에 참지 못하는 이기심이 있다면, 그리고 방식을 기준으로 이기심을 나누어 본다면,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혹은 그렇지 않아도 타고난 능력으로) 타인을 갉아먹으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이기심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착한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보통이 아닌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