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슬포슬한 향의 기억

집을 담은 빵집, 반 베이커리 ; chiang mai, 2017

by S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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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란 단어의 감촉


빵이란 단어의 감촉을 얘기해보자. 그것은 포슬포슬한 따뜻함을 품고 있다. 결을 따라 한 움큼씩 뜯어낼 때마다 갓 때운 굴뚝의 연기처럼 풍성한 향기가 코 끝을 데운다. 잘 구워진 것은 노르스름한 빛깔부터 보기 좋은 갈색 빛으로 먹음직스럽게 빛난다. '빵'이라고 한 음절로 끝이 나는 이 단어는 사실 심각하게 귀엽기도 하다. 참으로 귀엽고 따뜻한 단어, 빵이다.


언젠가부터 아침을 거르는 일이 잦아지면서 빵으로 대체하는 날이 많아졌다. 간편하고 맛있고 든든하기까지 하니까. 혹자는 한국인은 무조건 밥심이란 이야기를 하지만, 그 말은 어쩐지 빵심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져 조금 섭섭하다. 이리도 귀엽고 따뜻한 존재가 아침마다 나를 맞이한다는데, 든든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랴. 빵이 주는 온기를 온전히 느끼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매서운 칼바람이 살갗을 할퀴는 한 겨울도 포슬포슬하게 시작할 수가 있는걸.




치앙마이와 빵


여행을 다닐 때면 사실 빵만큼 든든한 존재가 또 있으랴 싶다. 새로운 음식에 호기심이 가득한 한편, 그만큼 두려움도 큰 나는 메뉴판에 빵이 있으면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낯섦 속에서 익숙한 무언가를 마주하는 것만큼 다행스러운 일도 없다.


치앙마이로 떠나는 기내에서 먹은 버터와 딸기잼을 바른 모닝빵에서부터 호스텔 조식으로 나온 바게트와 식빵, 노천의 예쁜 카페에서 먹은 무화과 스콘과 당근 케이크. 치앙마이는 그 시작부터 끝까지 빵을 떼어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팟타이가 입에 물릴 때 즈음 단팥이 가득한 빵을 입에 물었고, 배가 터질 것 같아도 따뜻한 블랙커피 한 잔과 꾸덕한 치즈케이크는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무엇보다 집 바로 앞에 있던 빵집, 반 베이커리 Baan Bakery는 낯선 메뉴들 속 반가운 얼굴인 빵처럼 낯선 치앙마이 생활 중 편안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 곳이었다.




빵은 집의 또 다른 언어, 반 베이커리


치앙마이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매일 아침을 책임졌던 '반 베이커리 Baan Bakery'. 일본인 오너가 운영하는 곳으로 삼천 원이면 신선한 야채와 달걀, 베이컨이 든 맛있는 샌드위치에 커피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두부 식빵'이 기억에 남는다. 정해진 시간에 가지 않으면 금방 동이 나버려 두 번 정도 헛걸음을 하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던 두부 식빵은 그 인기만큼 담백하고 맛있었다.


반 베이커리 하면 또 기억에 남는 것이 계산할 때마다 매번 한국어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해줬던 계산대의 태국 소녀다. 갓 스무 살이 됐을까. 앳된 얼굴로 정성스레 종이봉투에 하나하나 빵을 담아주던 소녀는 나의 방문이 세 번째가 되어서야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늘 시키던 샌드위치를 알아서 눈치 채주던 순간, 이곳이 마치 내 집처럼 편해졌다. 나중엔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슬리퍼 차림으로 들락거리기도 했으니, 이곳은 나의 빵집이며 또 다른 집이기도 했다.


치앙마이에서 떠나기 전 마지막 날, 가족들에게 이곳의 빵과 수제잼을 선물하고 싶어 양 손 가득 빵과 잼, 초콜릿 따위를 바리바리 담아 계산대 위에 올리자 소녀는 오늘이 마지막이냐며, 꼭 치앙마이에 다시 와야 한다고 아쉬운 눈망울로 인사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꼭 집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다시 오리라 약속하고 문 밖을 나서자 오래된 장롱 속에 계절이 지나 입지 않는 옷을 잘 개어넣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이 계절을, 이 옷들을 보내주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정리해서 넣어둬야만 하는 것이다. 별다른 특별한 추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은 늘 지나고 나서야 아리게 다가온다. 반 베이커리 Baan Bakery. Baan은 집을 뜻하는 태국어다. 그러니 집을 떠나는 게, 맞긴 맞았다.


빵도, 집도, 반 베이커리도 다른 모양의 얼굴을 했을 뿐 같은 심장을 지닌 것 같다. 그것들을 떠올렸을 때마다 비슷한 온기가 느껴지니까. 오래된 장롱 속에 집을 담은 이 빵집을 잘 개어 넣어두어야겠다. 다시 꺼내 입었을 땐 포슬포슬한 부드러운 향이 가득할 거야. 특히 오늘같이 추운 날은 이 옷 한 벌이면 따뜻하게 시작할 수가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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