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익숙한 것을 찾아서

이방인의 땅에서 찾은 나의 집 ; okinawa, 2017

by SHUN

낯선 설렘


새로운 것이 주는 자극을 즐기는 편이다. 상황, 장소, 사람, 음식, 물건 뭐가 됐든 새로운 것이 주는 에너지가 좋다. 그러나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마주하는 일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같은 소심(小心)인들은 행동하기 앞서 생각만 수천번이기에 낯선 무언가에 손을 뻗기 위해선 늘 비슷한 피곤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다행인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이런 피곤함을 감수할 일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먹어보고 싶은 맛보다 이미 먹어본 맛이 더 많아지고, 용기와 도전에 몸을 던지기보다는 편리와 안정에 기댈 수 있길 바란다. 편지의 낭만은 알지만 문자가 편하고, 새로운 만남을 꿈꾸지만 지금껏 만들어놓은 울타리를 벗어나긴 두렵다.


그럼에도 낯선 무언가가 주는 설렘은 세상이 변해도,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때 보면 사람들에겐 제 가슴마다 사라지지 않는 딴딴한 어떤 알맹이가 있는 것 같다. 변화가 주는 편리함 속에서도 굳이 불편함을 찾아 나서려는 걸 보면 말이다. 그 해 여름, 그 무더위를 해치고 굳이 오키나와에 방문했던 나처럼.




낯설지만 익숙한 것을 찾아서


생애 처음 여행을 떠났던 때, 나는 별다른 준비가 없었다. 처음이라는 날것이 주는 생생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저것 미리 준비하고 예견하며 그 피로를 어떻게든 사전에 방지하려 한다. 날것이 주는 생생한 에너지는 얻되 그것을 얻기 위한 피곤함은 감수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턴 가본 도시를 또 찾거나 그 근방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처음 보는 음식보단 늘 먹던 것만 시키게 되었다.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를 때야 아는 게 없기에 무작정 지르고 보지만, 몇 가지 맛을 본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안전한 선택지 하나 정도 두기 마련이다. 낯설지만 익숙한 것을 찾아서.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이 여행을 하는 방식이랄까, 요즘의 여행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이방인의 땅에서 찾은 나의 집


오키나와는 낯설지만 익숙한 곳이었다. 여러 차례 다양한 도시를 여행하며 이미 방문한 적이 있는 일본이라는 곳, 다녀왔던 주변 사람들과 매체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은 곳이어서 익숙했고, 난생처음 가는 곳이면서도 기존의 일본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라 낯설었다. 그래서 그해 여름 여행지는 오키나와로 결정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에어비앤비는 숙박 공유 서비스로, 일정 금액을 받고 호스트가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숙소로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참 많이 이용했다.


그곳은 조용한 마을에 위치한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집이었다. 더위가 식지 않은 늦은 밤, 나이가 많이 드신 노부부가 나를 반겼다. 미소가 따뜻한 할머니의 이름은 케이코, 과묵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이름은 세이키라고 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케이코 할머니, 세이키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온 손주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삐그덕 대는 계단을 올라가 도착한 내가 쓸 방은 원래 케이코, 세이키 부부의 아들이 쓰던 방이라고 했다. 아들은 결혼과 동시에 나가서 살고 있다고 했다. 오래된 이 집의 나이만큼이나 집과 함께 성장했을 노부부의 아들을 떠올렸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 그리고 결혼을 하기 전까지 그의 사계절을 품었던 그 공간에 몸을 뉘이자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쌓여있던 긴장이 녹아내렸다. 낯선 땅에서 나의 집을 찾은 것이다.


나의 집에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있는 곳이었다. 따뜻한 아침 식사, 언제든 편히 내려마실 수 있는 시원한 아이스커피, 선선한 바람 아래서의 수박 한 입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 만화책 한 권, 뜨거운 목욕 후의 차가운 맥주, 무엇보다 케이코 할머니와 세이키 할아버지의 섬세한 배려와 사랑이 느껴지는 익숙한 공기. 낯선 곳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고선 이리도 익숙한 온도에 몸을 맡기려는 게 참 아이러니 하지만 어쩌면 나는 낯섦 속의 이 익숙함을 찾기 위해 낯선 세상에 자꾸만 발을 들이려 하지 않나 싶다. 세상 어디에든 내 한 몸 데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단 기쁨으로, 그곳이 오키나와의 이름 모를 한적한 마을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오키나와에 무엇을 두고 왔는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련다. 이방인의 땅에서 찾은 나의 집을 두고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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