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프랑스인들이 데려다준 푸른 니스 ; nice, 2013
"히치 하이킹으로 가려구요."
내심 걱정하며 극구 반대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예상과 달리 파스칼 부부는 환히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잘 생각했어! 프랑스는 히치하이킹 하기 정말 좋은 여행지야."
나탈리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꽂이 가장 위에 놓여있던 먼지 쌓인 앨범을 하나 가져왔다.
"우리가 젊었을 때 히치하이킹으로 다녔던 사진이야. 봐, 멋지지?"
사진 속엔 싸인 카드를 들고 운전자와 함께 환히 웃고 있는 커다란 배낭을 멘 젊은 나탈리 아주머니와 파스칼 아저씨가 있었다. 예상과 너무 다른 반응이어서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가슴속에서 뭔가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20대 초반 무작정 떠났던 유럽여행, 그 시작부터 엉망진창이었는데 그 수준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여행을 출발하는 당일 런던행 비행기를 놓쳐버린 어이없는 사건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 여행에 도전이라는 허울 좋은 구색이 붙어버린 이유는 이 어이없는 시작부터였던 것 같다. 결국 현장에서 130만원을 주고 새로운 티켓을 끊어 비행기에 몸을 싣었었다. 이미 인천공항에서부터 새 티켓을 사는 것을 큰 도전으로 여긴 나에게 더 이상의 도전은 없을 줄 알았다. 히치하이킹 같은 건 이번 여행에 있어서 나의 도전 영역으로 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지 않던가. 뜻대로 되는 일은 없다.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정말로 필요한 것 앞에선 사치스러운 생각이 될 뿐이었다. 추가로 지출된 비행기 값 때문에 예산에 붉은 불이 켜졌던 내게 히치하이킹은 선택의 영역이 아닌 운명이었다.
"찾아보니까 안시에서 니스까지 600km네요. 하루 만에 히치하이킹으로 갈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대략 400km 정도인데, 안시에서 니스까지는 그보다 200km 정도 더 먼 거리다. 히치하이킹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그 거리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돼 다른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길 바라서 한 질문이었다.
"그럼! 한 대여섯 번 정도 갈아타면 될 것 같은데?"
다여섯번? 갈아탄다고? 아, 당연히 한 번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겠구나. 등의 생각을 하는 찰나 파스칼 아저씨는 커다란 지도를 가지고 오셨다. 그리곤 펜으로 하나하나 찍어 경유할 도시들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니스까지의 여정은 히치하이킹으로 확정되었고 부부의 도움을 받아 밤새 여섯 개의 싸인 카드를 만들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파스칼 아저씨가 첫 번째 히치 포인트에 직접 내려다 주었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도로의 갓길이었다. 아저씨는 어리벙벙한 내 모습이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았는지 바쁜 다음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차를 같이 잡아주기 위해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는 쉽게 잡히지 않았고 직감적으로 이 여정이 만만하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쉽지 않네. 이것 하나만 명심하면 돼! 히치하이킹을 할 때 필요한 건 딱 한가지야."
"그게 뭔데요?"
"스마일"
파스칼 아저씬 세상 따뜻한 미소와 함께 작별인사를 하곤 떠났다. 도로 위에는 나 홀로 남았다. 바쁜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 앞에서 쭈뼛쭈뼛 서 있기를 잠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손가락을 치켜들고 입꼬리를 최대한 들어 올려 세상에서 가장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 좋은 미소가 통했는지 생각보다 빠르게 첫 차가 잡혔고, 이 상황이 마냥 신기한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 인생 첫 히치하이킹 운전자분이세요! 영광이에요. 너무너무 신기해요!"
어떤 얘기들을 했는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름을 물어 받아 적고, 창문을 열고 노래까지 불러줬던 것 같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처음 해 보는 그 경험이 내 심장을 뛰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차를 갈아타며 다양한 운전자들과 알아갔고, 그렇게 다섯 대의 차와 마지막으로 한 대의 오토바이를 갈아타고 목적지인 니스에 도착했다. 10시간 끝에 얻은 니스였다.
오후 8시 경이 되었음에도 해가 길어 하늘은 푸르렀다. 니스의 푸른 바다와 하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때 느낀 벅찬 감동을 절대 잊을 수 없다. 만약 버스나 기차를 타고 왔다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오직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만으로 600km를 달려 도착하게 된 곳이었으니 말이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푸른 니스까지 인도해주었던 프랑스 사람들의 온기 만큼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 온기는 퍽퍽한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위로가 된다. 회색빛의 고속도로 아스팔트를 쌩쌩 지나가는 차들이 결코 차갑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사람 좋은 미소 하나면 내 손 잡아줄 이 몇 명쯤 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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