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슌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un Jan 02. 2023

올해의 목표

2023년, 무얼 하고 싶으세요?

 2023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나는 3년 전부터 새해를 맞이할 때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 달력. 두 번째, 다이어리. 이유는 간단하다. 1년 내내 봐야 하는 것들이니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매일'의 속성을 가진 물건들은 무의식을 쉽게 자극한다. 그래서 매일 보는 것들은 가능한 한 깨끗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어느 시의 유명한 구절도 있지만 미안하지만 물건에 있어선 '예뻐야 자세히 본다, 너도 그렇다'가 나의 입장이다.

 그간 나름의 데이터가 쌓였는지 달력과 다이어리를 고르는 기준도 생겼다. 달력의 경우, 존재감이 강한 일러스트나 지나치게 화려한 디자인이지 않을 않을 것. 신중히 고른 폰트와 컬러여야 하며 종이의 질감과 달력의 전체적인 만듦새 또한 견고해야 할 것.(이는 인쇄물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동시에 매달 넘길 때마다 신선한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할 것.

 다이어리의 경우, 먼슬리와 위클리가 번갈아가며 배열되어있을 것. 달력과 마찬가지로 폰트와 컬러가 신중해야 하며 종이의 질감과 전체적인 만듦새가 견고해야 할 것. 부담 없는 크기와 무게일 것.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이런 달력과 다이어리는 정말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못 샀다, 올해는. 벌써 2023년이 밝았는데 새해를 맞이하는 첫 단추를 끼지 못 하게 된 것이다.

 결국 22년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마음에 드는 달력과 다이어리를 찾게 되었고 그 바람에 뒤늦게 주문을 넣어뒀다. 하나는 일본, 하나는 네덜란드에서 물 건너온단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 하여 2022년의 첫 단추는 작년부터 쓰던 일기장과 이곳 브런치에서 끼워보려 한다.



 원래 계획이란 걸 잘 세우지도, 지키지도 않는 성격이다만 한 해가 끝나갈수록 연초에 세워뒀던 계획 중 몇 개나 이뤘나 체크해보는 재미가 있더라. 아니, 계획이 아닌 목적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계획이라 하면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를 정해놓고 하나씩 실행해야 할 것만 같아 부담을 느끼는데, 목적이라 하면 모로 가도 원하는 종착지에 닿기만 하면 되니 그 부담이 훨씬 덜한 느낌이다. 어쩌면 남들이 말하는 계획이 내게는 목적이며, 그건 내게 지켜야만 하는 약속이 아닌 지도 같은 게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순서를 지키지 않아도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지도 말이다.


 작년,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당장 올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떠올랐다. 그중 대개는 단기간에 할 수 없는 일들이어서 메모장에 깨작깨작 적어놓기만 했는데, 2023년의 시작은 그 리스트를 적어 내려 가는 것으로 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연말에 이 글을 다시 돌아보며 어디까지 오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겠지. 네덜란드에서 오고 있는 그 다이어리에는 나중에 적는 것으로 하자고.




 1. 달력 만들기
 앞서 밝혔듯 달력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롭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벽걸이 달력을 선호하는데, 벽걸이 달력 중에 내가 원하는 디자인과 만듦새의 달력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지난달 도쿄에 갔을 때 100년 넘은 문방구라는 'ITOYA'라는 곳에서 겨우 하나를 찾았는데, '달력 치고는 가격이 좀 센 거 아닌가?'싶어 등을 돌렸었다. 결국 그만한 달력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 한국에서 직구하기에 이르렀지.(배송비만 2만 원이 넘게 나왔다. 하하.)
 차라리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달력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달력 만들기는 매년 하고 싶었던 일인데, 문제는 늘 연말이 되어서야 '아, 나 달력 만들고 싶어 했지'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 적지 않은 품이 들어가는 작업이므로 1년을 작업기간으로 잡고, 연말에는 판매도 하고 주변에 선물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2. 외모와 스타일 가꾸기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보다도 순 자기만족이다.
 외모와 스타일만큼은 웬만큼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속수무책이 되는 것 중 하나인 것 같다. 지인들과 부어라 마셔라 술 마시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에 늘어난 뱃살과 비루해진 비주얼에 후회는 없다만,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고 싶다. 앞서 '예뻐야 자세히 본다, 너도 그렇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달력과 다이어리보다 365일 매일 봐야 하는 얼굴과 몸뚱이는 나 자신이다. 필히 이 입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울러 외모와 스타일로부터 나오는 효용이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의 눈도 즐거울뿐더러(그렇다고 믿으련다^^), 그로 인해 자신감이 생기고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외모도, 스타일도 결국 내 작업의 연장선인 셈이다.

 3. 책 많이 읽기
 이곳에서 자세히 밝히긴 어렵지만 작년에 어떤 일로 인해 스스로의 독서량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숏폼 콘텐츠에 중독됐던 자신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시기라 그 충격이 더했던 것 같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인데 인스턴트 콘텐츠만 소비를 하다 보니 나의 작업도 유치해지는 것 같았고, 주변인들과 대화를 할 때도 예전보다 생각이 짧아졌단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 충격 이후 읽고 싶은 책을 잔뜩 구입해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제는 긴 호흡의 콘텐츠(책, 영화, 드라마 등)를 소비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 감각을 올해도 계속 가져가고 싶다. 연말에 올 한 해 읽은 책이 총 몇 권인지도 카운팅 해보고 싶기도 하다. 이런 과정이 창작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4. 다섯 번째 책과 <엄떠때> 원고 완성
 작년에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뭔가 생각났을 때 바로바로 쳐내야 했다는 것이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할 수 있는 쪽으로 쳐내고, 못 할 것 같으면 못 하는 쪽으로 쳐내고. 너무 많이 계획하고 미루다 보니 부담만 쌓여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것을 하게 된다. 클라이언트와 구두로 약속만 해놓고 아직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벌써 몇 개인가.
 엄마와의 여행기를 담은 <엄떠때>도 그러하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필요 없는 곳에 힘을 많이 준 느낌이다. 1년짜리 프로젝트라면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이 일을 쳐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 출간 예정인 다섯 번째 책도 그러하다.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미루기보단 내가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게 내 방식의 '쳐내기'다.

 5. 아직 가보지 않은 여행지 가보기
 매년 세우는 목표 중에 하나는 안 가본 도시 세 군데 여행하는 것이다. 그간 오랜 코시국으로 이 목표를 지우고 살았는데, 올해부터는 다시 재개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미 함께 여행해봤던 사람 말고 새로운 사람들과 떠나는 여행도 기획해보고 싶다. 아님 오랜만에 혼자 멀리 떠나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인 외로움과 맞서보고 싶다는 게 그 이유이다.
 아직 안 가본 곳 중에 가고 싶은 곳은 미국, 터키, 독일, 포르투갈 정도. 아직 함께 여행하지 않은 사람 중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아빠, 대학 친구들, 조카들, 매형 정도.

 6. 영어 공부 하기
 아직까지 동기부여가 크지 않아 마음에 확 와닿진 않는데, 앞으로 여행을 더 많이 다니게 될 테니 그때를 위해서라도 틈틈이 영어를 해결해놨으면 한다. 특히 스피킹 위주로. 올 연말에는 외국인과 자유 토픽으로 삐그덕 대지 않고 매끄럽게 대화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7. 개인 전시회 열기
 작년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진행하고 싶다. 작년에 상상마당에서 전시하면서 생긴 목표인데, 내가 작업한 글과 그림으로 전시장 전체를 채우고, 관련하여 굿즈나 행사도 진행해보고 싶어졌다.
 이걸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첫 번째, 큰 공간을 메울 수 있을 만한 개인 작업물이 충분해야 하며, 두 번째, 그 개인 작업물들을 틈틈이 아카이빙 해놔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준비해놓아도 충분히 해 볼만할 듯하다. 올여름이나 가을을 예상해 본다.

 8. 동기들과 연말에 공연하기
 작년에 뮤지컬과 동기들과 얘기하다 '내 꿈 중 하나는 너희들과 대학교 1학년 때처럼 공연 하나 올리는 거야'라는 이야기가 신호탄이 되어, 연말 즈음 본격적인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연말을 목표로 작품을 하나 정해 공연 하나 올려 보자고.
 공통된 의견은 이왕 할 거면 우리끼리 추억팔이에서 그치지 않고 한 번 제대로, 멋있게 해 보자는 것. 이제는 각자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이지만 우리의 전공이었던 뮤지컬과 지금 하는 일의 장점들을 최대로 끌어모아 멋진 공연 한 편 올려보는 게 목표다. 이것까지 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2023년일 것 같다.

 9. 이 모든 목표를 위해 돈 많이 벌기
 돈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1~8번까지 적어놓은 올해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충분한 돈을 벌고 싶다. 또 그런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국한되지 않고 좀 더 반경을 넓히고 싶기도 하다.





 오늘 같은 작업실을 쓰는 동료 누나로부터 뜬금없이 '너희는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는 철학적 질문을 넘겨받았다. 이 글을 적다 보니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의미는 목적을 향해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온다 믿어. 지금까지도 그런 믿음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

 연초부터 삶의 의미나 목적을 상실했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어떤 거창한 의미를 위해 살아가기보단, 우리가 정한 지도 위의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면 될 뿐이라고. 그게 사는 거라고.

 다들 마음 정중앙에 멋진 지도를 새겨넣는 2023년 연초가 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대화하면 안 되는 카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