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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를 가로지른 향기의 얼굴

19세기 모던의 '질서'에서 20세기 포스트모던의 '해체'까지

by 이지현

우리가 공간에 향을 흩뿌리는 행위는 단순한 후각적 경험을 넘어선다. 그 미세한 향기 입자 속에는 한 시대가 무엇을 열망하고, 무엇을 애써 감추려 했는지 알려주는 보이지 않는 코드가 숨어 있다. 향의 역사를 따라가는 여정은 곧 시간 여행과 같다. 모든 것을 명확한 이분법으로 나누고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모던 시대를 지나, 그 모든 경계를 허물고 다원성을 예찬한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가 향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종종 가장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치부되던 후각은, 역설적으로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문화적 기호 체계로 작동해왔다. 향수는 그 시대의 가장 내밀한 욕망과 불안을 담아내는 액체화된 문화적 텍스트로 기능한다. 따라서 특정 향의 유행과 소멸을 추적하는 일은 당대의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 방울의 향수는 당대의 철학, 예술, 기술, 그리고 사회적 위계를 압축하여 담고 있는 가장 섬세하고도 강력한 증거물인 셈이다.




모더니즘 시대의 질서: 문명과 위생의 향기


모더니즘 시대의 핵심은 한마디로 '정리'와 '구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학적 이성의 힘을 굳게 믿었던 당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혼돈에 명확한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다. 변덕스러운 자연보다 인간이 구축한 예측 가능한 문화가, 통제 불가능한 감정보다 냉철한 이성이, 부패와 오염의 가능성을 품은 것보다 위생적인 순수함이 더 우월한 가치로 여겨졌다. 이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사회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며, 특히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상자 안에 모든 것을 분류해 넣었다. 이성, 문화, 공적 영역, 정신은 남성성의 범주에, 감성, 자연, 사적 영역, 육체는 여성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향수 역시 이 거대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문명인의 표상으로 작동했다. 향기는 더 이상 개인의 쾌락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소속을 증명하는 보이지 않는 신분증이었다.


악취와의 전쟁과 부르주아의 후각적 구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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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알랭 코르뱅이 그의 저서 『악취와 향기』에서 상세히 묘사했듯, 19세기 유럽 사회는 그야말로 '냄새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발생한 각종 오물과 악취는 단순히 불쾌한 감각을 넘어, 질병의 근원이자 빈곤과 도덕적 타락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하수도 시설의 부재, 비위생적인 주거 환경, 공장 매연이 뒤섞인 도시의 공기는 부르주아 계급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 부르주아 계급은 후각을 통해 자신들을 타 계급과 구별 짓고자 했다. 땀과 노동의 냄새가 밴 하층 계급, 그리고 식민지의 '타자'들에게서 나는 이국적이고 강렬한 체취는 모두 통제되지 않은 동물성의 표식으로 간주되었다. 동시에, 사향(musk)이나 영묘향(civet)처럼 강렬한 동물성 향료를 과시적으로 사용하던 구시대 귀족들의 퇴폐적인 취향과도 선을 그어야만 했다. 그들의 선택은 잘 가꿔진 정원처럼 깨끗하고 상쾌하며 정돈된 꽃향기나 시트러스 향조였다. 이는 자신들의 공간을 악취로부터 보호하는 물리적 방어막이자, 자신들의 도덕적, 계급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방어막이었다.


자연의 정복: 합성 향료와 추상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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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시대의 질서에 대한 열망은 화학 기술의 발전과 만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19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된 유기화학의 성과는 향수 산업에 혁명을 가져왔다. 이전까지 향수의 원료가 변덕스러운 자연의 산물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면, 이제 실험실에서 원하는 향 분자를 합성하고 대량 생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1882년 겔랑이 합성 향료 '쿠마린'을 사용하여 만든 '푸제르 로얄'의 등장은 그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는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예측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모던 시대의 꿈이 후각의 영역에서 실현된 순간을 의미했다. 더 이상 희귀한 꽃이나 동물의 희생에 의존하지 않고도, 순수하고 안정적인 향을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닐라 향의 '바닐린', 제비꽃 향의 '이오논' 등 새로운 합성 분자들이 연이어 개발되면서 조향사들의 팔레트는 무한히 확장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향수의 대중화를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방을 넘어선 추상적인 향의 창조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이성으로 자연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려는 모더니즘 예술의 정신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샤넬 No. 5: 새로운 여성성의 후각적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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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에 세상에 나온 샤넬 No. 5는 모던 시대 향수가 도달한 정점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대부분의 향수가 장미나 재스민처럼 특정 꽃의 향을 충실히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는 합성 향료인 '알데하이드'를 전례 없이 대담한 비율로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후각적 경험을 창조했다. 그 결과, 자연의 어떤 꽃에도 비유할 수 없는 서늘하고 깨끗하며 살짝 금속성의 뉘앙스를 풍기는 추상적인 향기가 탄생했다. 이는 마치 잘 다려진 리넨이나 고급 비누를 연상시키는, 기능적이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향수병 디자인 역시 당대의 모더니즘 건축처럼 모든 장식을 덜어낸 기하학적 형태로, 내용물의 혁신성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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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No. 5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승마와 운전을 즐기는 '가르손느(garçonne)' 스타일의 새로운 여성을 위한 향기였다. 이 새로운 여성상은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고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공적인' 창조물이었다. 자연스러운 여성성이 아닌, 이성적으로 구축된 새로운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샤넬 No. 5의 추상성은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




모더니즘의 마지막 불꽃: 80년대 파워 드레싱의 향

1980년대는 경제적 풍요와 개인의 성공 신화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신자유주의의 바람을 타고 월스트리트는 탐욕과 야망의 상징이 되었고, '성공'은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전문직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다. 어깨를 과장한 '파워 수트'가 그들의 시각적 갑옷이었다면, 강렬하고 확산력 높은 향수는 보이지 않는 후각적 갑옷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의 향수들은 더 이상 개인적인 공간에서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공적인 공간을 장악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자신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섬세함이나 미묘함보다는 대담하고 압도적인 향이 미덕으로 여겨졌으며, 향수는 한 사람의 야망과 성공을 대변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향기는 개인의 후각적 영토를 선포하고 확장하는 무기였으며, 그 향의 반경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영향력의 반경과 동일시되었다.


후각적 갑옷: 디올 쁘아종과 입생로랑 오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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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출시된 디올의 '쁘아종(Poison)'은 80년대 향수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독'이라는 도발적인 이름부터, 튜베로즈와 스파이스, 플럼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어둡고 관능적이며 폭발적인 향기는 당대의 다른 모든 향을 압도할 만큼 강력했다.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이 향수를 뿌린 손님의 출입을 금지할 정도였으니,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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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생로랑의 '오피움(Opium)' 역시 마찬가지다. 동양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차용했지만, 그 본질은 스파이스와 레진이 만들어내는 강렬하고 중독적인 향으로, 뿌리는 사람의 존재를 공간에 확실히 새겨 넣었다. 이 향수들은 단순한 액세서리를 넘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성들의 자기주장이자 후각적 무기였다. 이 시기에는 조르지오 비버리 힐즈처럼 하나의 향수가 도시 전체를 뒤덮는 듯한 현상도 나타났다. 이는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명확한 자기표현과 개성의 확립이라는 가치가, 자본주의적 욕망과 결합하여 가장 화려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발현된 마지막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균열: 경계의 해체와 다원성의 발현


모던 시대가 공들여 세워놓은 단단한 규칙과 경계들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상적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던 사상은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근본적인 회의, 즉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절대적인 진리나 완벽한 이성의 존재를 의심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남성/여성, 문화/자연, 고급/저급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들이 사실은 한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성된 장치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 결과,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지배하던 공간에서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다원적인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중심과 주변의 위계는 해체되고, 원본과 복제의 구분은 모호해졌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향수 시장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향수는 더 이상 하나의 거대한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개인들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수많은 작은 거울들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거대 서사의 퇴장과 작은 이야기들의 속삭임: 니치 향수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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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키려는 거대 자본의 '백화점 1층 향수'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그 자리를 저마다의 독특한 철학과 서사를 담은 '니치 향수'가 채우기 시작했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거대 서사의 종언'을 이야기했듯, 향수 시장에서도 모두를 위한 하나의 향기라는 거대 서사는 힘을 잃었다. 대신, 특정 도시의 잊힌 골목길 냄새(딥티크), 할머니의 정원에 대한 추억(아닉 구딸), 혹은 소설의 한 구절에서 받은 영감(라티쟌 파퓨머) 등, 니치 향수는 더 이상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많은 '작은 이야기'를 가진 개인들의 섬세한 취향과 기억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는 향수가 더 이상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획일적인 상징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구축하는 매우 사적인 도구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제 브랜드의 명성보다 향수가 들려주는 독특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대량 생산된 기성품이 아닌 자신만의 후각적 서명을 찾아 나선다.


젠더의 수행: CK One과 성별 없는 향기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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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적 해체의 흐름 속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것은 성별의 구분이다. '꽃향기는 여성, 우디 계열은 남성'이라는 모던 시대의 굳건한 공식은 정면으로 도전을 받았다. 1994년 캘빈 클라인이 출시한 'CK One'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용하는 최초의 유니섹스 향수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젠더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정신을 후각적으로 구현했다. 케이트 모스를 필두로 한 깡마른 몸과 무표정한 얼굴의 모델들이 등장하는 흑백 광고는 80년대의 건강하고 글래머러스한 여성상에 대한 완벽한 안티테제였다. 이는 젠더가 타고난 본질이 아니라, 옷차림이나 말투, 행동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수행'된다고 본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제 향수는 '나는 여성/남성'이라고 증명하는 고정된 신분증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오늘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선언하며, 매일 새로운 정체성을 연기하고 실험하는 유동적인 무대 소품의 역할을 수행한다. CK One의 깨끗하고 누구에게나 어울릴 법한 시트러스-티 향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강요하기보다 사용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할 수 있는 비어있는 캔버스와 같았다.


안티-퍼퓸의 도발: 향수라는 개념에 대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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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향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향수라는 개념 자체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바로 '안티-퍼퓸(Anti-Perfume)'으로 불리는 조류의 등장이다. 일본 브랜드 꼼데가르송의 '오 되르 53'은 향수병 안에 뜨거운 전구, 타는 고무, 복사기 토너와 같은 도시의 인공적인 냄새들을 담았다. 이 향수는 전통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이나 '유혹'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복사기 냄새'라는 후각적 사실을 제시할 뿐이다. 프랑스 브랜드 에따 리브르 도랑쥬의 '세크레시옹 마니피크'(멋진 분비물)는 더욱 급진적이다. 피, 땀, 침, 정액과 같은 인간의 체액 냄새를 향으로 만들면서, 모던 시대가 그토록 감추고 지우려 했던 '더러운 것', 즉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아브젝트(abject)'라고 명명한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아브젝트는 주체와 객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우리에게 원초적인 혐오감을 주는 것들이다. 이 향수들은 후각을 통해 우리 안의 억압된 동물성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깨끗함과 더러움의 경계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기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20세기 말, 새로운 후각적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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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80년대의 과잉과 화려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니멀리즘과 절제가 문화 전반의 주요한 흐름으로 부상했다. 패션에서는 장식을 덜어낸 단순한 실루엣이 유행했고, 음악에서는 복잡한 구성 대신 단순한 비트가 반복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향수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80년대의 무겁고 확산력 강한 향수들 대신, 물처럼 맑고 투명하며 공기처럼 가벼운 향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는 후각을 통해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온과 단순함을 찾으려는 당대인들의 욕망을 반영하는 현상이었다. 또한 에이즈(AIDS)에 대한 공포와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깨끗함'과 '자연'이라는 가치가 다시금 중요하게 부상했다. 향수는 더 이상 자신을 과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정화하고 위로하는 내밀한 수단으로 그 역할이 변화했다.


미니멀리즘과 투명함: 90년대의 아쿠아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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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9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후각적으로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바로 '아쿠아 노트(Aqua Note)'의 등장이었다. 1992년 출시된 이세이 미야케의 '로디세이(L'Eau d'Issey)'는 '물과 같은 향수'라는 컨셉으로, '칼론(Calone)'이라는 합성 분자를 사용하여 이전에 없던 맑고 시원한 물의 향을 구현했다. 멜론과 연꽃의 뉘앙스가 더해진 이 향기는 마치 깊은 산속의 계곡물이나 새벽이슬을 머금은 풀잎을 연상시켰다. 이 향수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90년대 향수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아쿠아 디 지오' 역시 지중해의 바다와 바람을 연상시키는 상쾌한 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향수들은 80년대의 무겁고 불투명한 오리엔탈이나 플로럴 향조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하며, 깨끗하고 단순하며 자연과 가까운 삶을 지향하는 90년대의 가치를 후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이는 비록 고도로 계산된 합성 분자의 결과물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의 회귀를 꿈꾸었던 시대의 열망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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