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연구자의 핸드메이드 파우더 스노우보드 제작기
이 챕터에서는 가장 최근에 만든 보드 No.6, Toomanyexcuses 2에 대한 실제 사용성 및 안전성에 대한 검증과 개선 방향(복선...?)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총 세번의 필드 스터디를 진행하였다. 써놓고 보니 보드에 대한 피드백은 크게 없고 그냥 백컨트리 트립의 준비와 반성만 가득...
첫번째 필드스터디, 혹은 이 보드를 서둘러 만든 목적은 앞서이야기되었지만, 1920 미국(포틀랜드) 여행에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리조트 내 사이드 컨트리를 목적으로 기획했었는데, 당시 포틀랜드에 눈이 많이 안와서 (너무 일찍 가서) 제대로된 파우더를 만나지 못했다. 다만 보드의 기본적인 라이딩 가능성과 정비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다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할듯하다.
가장 최근에 만들었으며, 소프트우드와 하드우드를 섞어 만든 (그나마 좀 보드같은) 코어를 갖고 있는, TME2 (toomanyexcuses2.. 별다줄)를 들고 국내 백컨트리를 나가보기로 했다. 사실 국내에서 파우더를 타러 다니는게 파우더보드를 만든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국내의 몇몇 스팟들을 찾아보았다. (thx to 네이버지도 & windy)
사실 자율출퇴근이 가능한 회사(예이)에서 해보고 싶었던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갑작스레 떠난 밤 여행/캠핑을 갔다가 다음날 점심 전에 돌아와서 출근하기 였다. 그러던 와중 저번달 말 (2020년 1월 말)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왔다는 소식을 듣고 준비를 했다. windy 앱도 보고, snow-forecast 앱도 보면서 어디에 눈이 쌓여 있을지를 예측해보고, 어떻게 접근할지를 고민했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스케줄은 다음과 같았다.
29일 수요일
17:30 : 퇴근 (양재 -> 지산 리조트 이동)
19:00 ~ 21:30 : 지산에서 키커 연습 (그 주 주말에 대회를 준비한다고…)
22:00~23:30 : 지산->휘닉스파크 시즌방 (베이스 캠프) 이동
*진입하면서 태기분교쪽 접근로를 우회하여 적설 상태 체크
30일 목요일
4:00 : 기상
4:00 ~ 5:30 : 휘닉스파크 - 안반데기 이동
5:30 ~ 7:30 : 안반데기 등반
7:30 ~ 8:30 : 보드 타고 내려오기
9:00 ~ 10:00 : 용평 1회권으로 용평에서 타기
10:00 ~ 12:00 : 용평 -> 양재(회사로 직출)
파우더용품 : TME2 보드, 백컨트리 백팩(팥타고니아), 헤드랜턴(혹시나싶어서)
보드 관련 용품 일체 : 보드복, 장갑, 고글 등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약간 망했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보았다... 정도의 투어를 진행하였다. 일단 수요일 밤에 확인한 태기분교 진입로 (양구두미재)에는 눈이 거의 없었다. 다만 매우 추웠고, 잠깐이지만 차를 대놓고 은하수를 봤다.(갬성...) 휘닉스 파크에 있는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목적지로 용평 리조트 근처의 안반데기를 선택했는데, 여기에서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안반데기는 강원도에 있는 배추 고랭지 재배를 하는 마을로, 1000미터 고지가 넘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적설량이 많아서 겨울에 주민분들은 산아래로 내려와서 지내시고, 백패킹, 산악스키 하시는 분들이 종종 다닌다고 들어 알고 있었다. 안반데기에 차로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용평리조트 쪽 (횡계)에서 접근하는 방법, 하나는 강릉 쪽에서 접근하는 방법이다. 나는 당연히 가기 쉬운 용평 방향을 선택했는데, 알고보니 이쪽은 겨울에는 차량통제를 제한하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안반데기 진입 전 3.5km 에서부터 트래킹을 시작해야한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겨울이라 하더라도 마을에 있는 풍력발전기를 관리해야하는 이슈 때문에 강릉쪽 진입로는 제설작업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새벽 5시반쯤, 일단 안반데기 진입로에 도착을 했다. 해가 뜨지 않아 아직 밤 이었고, 또 눈이 오고 있었다. 매우 고요하고 이뻤…겠지만 아무것도 안보였으니… 그래서 일단 차를 진입로 근처 삼거리에 세워두고, 장비를 챙겼다. 헤드랜턴을 가져온 나에게 박수를… 장비를 챙겨서 가방에 보드를 쟁여메고, 차도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때 이미 눈이 무릎까지 오는 상황이었다. 내가 운전해서 온 도로도 눈이 약간 쌓였는데, 그보다 차량 통제 구역에는 마치 슬로프처럼 깊은 눈이 매끈하게 쌓여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힘들었다. 경사가 세지도 않고, 많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너무너무 힘들어서 앉아서 쉬길 반복했다. 게다가 초반에 발견한 동물 발자국. (지금 생각해보면 고라니 정도 였을 것 같은데…) 몸의 감각은 곤두서기 시작했고, 세네발자국 기준으로 한번씩 주위를 살폈다. (아직 밤이었으니까) 헤드랜턴에 비치는 안광이 있지않을까 싶어서 살펴봤고, 만약 멧돼지가 나타난다면 어떡할지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설상가상이라는 말 그대로,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이 정말로 펑- 펑- 하고 오는데, 헤드 랜턴을 착용한 상태에서 움직이다보니 시야 범위 안에 떨어지는 눈들에 빛이 반사되면서 가시거리가 극도로 짧아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에너지바와 음료를 마시면서 올라 가다가도 중간에 쉬면서 다시 경계모드. 그러다 문득 지도를 봤는데, 한 시간 동안 체력을 다 쓰고 900m를 올라왔다. (이게 무언가…)
결국 위험하면 포기하겠다고 여자친구에게 약속해놓았던 것을 기억하고, 포기에 대한 합리화를 완성하면서 내려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눈 위에 보드를 놓고 바인딩을 채우려는데…
...차도에는, 반사판이 있다. 가로등이 없어도 불빛에 전반사를 일으키는 작은 반사판들이 설치가 되어있다. 그래서 나도 그걸 보면서 길을 찾아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저 멀리 앞에 생각보다 작은 반사판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움직였다.
사실 그때도, 저건 반사판이 눈에 묻혀서 조금만 보이는 것이며, 많은 눈과 헤드랜턴(광원)의 이동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거라고 생각했다.(과학적인 접근...캬)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못했다.(인문학적 삼각형 추리) 결국 천천히 그 반사판과 대화를 하면서, ‘나는 여기에 놀러온거야, 너희를 해하려 온게 아니야. 너를 존중할게, 프로텍트윈터예아!’ 뭐 이런 식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바인딩을 채우는데, 쌓인 눈때문에 바인딩은 왜 이리 안 묶이는지. 라쳇에 스트랩이 안들어가서 계속 헤맸다. 그 와중에도 3초에 한번씩 고개를 들어 그 친구(반사판?)을 확인. 갑자기 뛰어오면 어떡하지. 옆에 있는 가드레일을 뛰어넘으면 되려나... 결국 바인딩을 묶고 서둘러 올라온 길을 내려왔다.
아참 이게 괴담 쓰는게 아니라 보드 리뷰였지…
백컨트리를 위해 만든 보드로는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프트 우드 코어를 더 많이 사용해서 가벼웠고, 어느 정도 탄력도 받쳐주었다. 다만 탔던 길이 중간중간 경사가 낮은 부분들이 존재해서, 풍성한 경험을 하기 어려웠다. (그럴 생각도 없이 후다닥 내려왔으니…) 차에 타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래 이래서 차를 사야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멧돼지 정도는 차로 이길 수 있겠지. 눈이 점점 많이 왔고, 하나의 생각이 또 들었다.
'... 이정도면 용평도 파우더겠는데..?’
그렇게 용평에 도착하니 어스름하게 해가 뜨기 시작했다. 용평은 9시부터 오픈을 하는데, 도착에 도착하니 7시반 이었기 때문에 한숨 자야겠다 마음을 먹고 차에 누웠다. 그리고 해가 뜨고 날이 밝아오니 (낮이 되었습니다), 잠은 달아나고 다시 가보고 싶은 어리석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까지 왔는데… 초반 경사부분만 타러 다시 가볼까’
어차피 15분 거리라, 마음을 먹고 가니 금방이었다. 다만, 이제는 눈이 상당히온 상태라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건드리면 바로 드드득… 결국 도로 차를 세우고 급하게 스노우체인을 걸었다. 체인을 걸고나니 오오오.. 눈길을 달리는 이 안정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시 도착한 안반데기 진입로는 너무도 평화로웠다. 숲길 사이로 난 차도, 그리고 펑펑 내리는 눈들. (밤보다는 조금 눈발도 약해졌던 것 같은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른가. 다시 장비를 챙겨서, 초반의 경사가 급한 500m 정도만 올라가서 내려왔다. 파우더 자체는 깊었는데, 조금 무거운 눈이라 보드가 퍽퍽 파묻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적당히 만족하며 내려왔다.
'자 그럼 이제.. 출근 전에 용평에서 한런만 하고 가자!'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 나...)
결과적으로, 제대로 눈이 온 곳에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백컨트리 트립에 대한 준비가 미숙한 부분이 있어서 반성할 요소가 많았다. 호기롭게 가방과 보드를 챙겼지만 폴대를 깜빡한 것이 몸에 심한 무리를 주었고, 체력적으로 한계도 많았다. 설피라도 신었으면 좀더 편하게 올라갔겠지만... 백컨트리는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로 구성된 활동인데, 열심히 내려올 마음에 올라가는 부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시도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한줄요약: 폴(스틱)을 사자!
1차 스터디를 다녀와서 반성회를 해보았다. 몇가지 이슈가 될만한 점들이 있었는데, 먼저 지형에 대한 파악이 부족했다는 점. 고산 지역인데다 눈이 많이 와서 차량 운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리고 장비의 측면에서는 설피나 스틱 등의 백컨트리 트래킹 장비의 부족함을 느꼈다. 스틱이라도 있었다면, 체중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면서 올라갔을텐데, 그냥 올라가려니 보통 힘든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일단 스틱을 주문했고, (가볍고 저렴한 NH 제품(농협x) 설피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했다. 그러나 설피는 국내에서 구입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판매처가 적다) 가격이 비싸서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네이버 지도를 켜놓고 안반데기 로 들어가는 여러 루트를 검색하고, 등고선을 분석했다. (등산로 옵션을 켜면 등고선과 등반 가능한 루트가 함께 나온다. 또한 cctv를 선택하면 국내 이곳저곳의 도로 위 cctv를 확인하여 적설량을 예측해볼 수 있다.
또한 동행을 구해서, 함께 움직여서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자 했다. 2:1이면 고라니는 싸워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준비한 것이 안반데기 리벤지 였다. 용평까지 차량운행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그리고 지난번에 차가 밀리는 경험을 하고 나니) 이번에는 기차+카쉐어링 서비스를 이용했다. 스노우체인을 안걸고 갈 수 있는 루트를 짜보았다.
2월 8일 (토요일)
4:30- 5:30 : 양재 - 청량리 (일주차 13000원)
5:30 - 7:00 : 청량리 - 강릉 KTX
7:30 - 8:30 : 강릉 - 오목골 등산로진입구 도착 (평창라마다호텔) - 그린카 이용
8:30 - 11:30 : 고루포기산 등반
11:30- 2:30 : 안반데기 보딩 + 점심(라면!)
2:30 - 4:30 : 고루포기산 하산
4:30 - 5:30 : 오목골 - 강릉 (카쉐어링 반납)
5:30 - 7:00 : KTX 귀가
파우더 장비 : TME2 데크, 3단 접이식 스틱,
보드 장비 일체
파타고니아 캐필린 써멀 내의 - 버튼 AK 자켓/ 울양말
오목골에서 고루포기산 까지 올라가는 길은 상당히 험한 길이었다. 눈이 워낙 많이 와 있어서, (기본적으로 무릎깊이 였으며, 깊은 곳은 허벅지 까지) 다만 등산로를 따라서 러셀 (눈을 다지며 길을 만듬)이 되어 있어서 편했다. 보드 부츠가 등산화와 비슷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별도의 아이젠 없이 올라가는 것이 가능했다. (아이젠이나 스노우슈즈가 있었으면 부분부분 더 편했을 것 같긴 하다) 또한 스틱을 구매하면서 스노우 바스켓이라는 제품을 별도로 같이 구매했는데, 이 스노우바스켓은 스틱의 짚는 부분을 넓게 만들어서 눈에 덜 빠지게 해준다. 눈이 깊은 곳에서 큰 의미는 없지만 안정성이 1정도 향상되는 것 같았다.
총 등반 시간은 약 3시간 정도 걸렸는데, 중간에 매우 좋은 트리런 스팟을 발견해서 30분정도 놀았던 부분을 감안하면, 약 2시간 반 정도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이 트리런 스팟은, 적설이 무릎 위까지 쌓여있었고, 경사가 적당한데다, 나무도 생각보다 듬성듬성 있었다. 게다가 북사면이라 해를 적게 받아 눈이 녹지않고 유지가 되어 트리런에 최적인 모습을 보였다.
고루포기산 정상에서 안반데기로 넘어왔는데, 상당히 인상 깊은 경치를 만났다. 경사진 배추밭에 눈이 무릎 높이로 쌓여있었는데, 기온이 오르면서 어느 정도 파우파우 한 느낌을 제공하고 있었다. 경사는 다양하게 있었는데, 우리가 탔던 밭은 휘팍의 스패로우나 펭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호크 정도 경사를 갖고 있는 곳도 있어보였다. 또한 풍력 발전소에 접근하는 도로는 제설이 되어있어서 오르기가 훨씬 쉬웠다. 체력의 한계로, 한사람당 약 5~6런 정도 (1런 20초) 타고 돌아왔는데, 사실 매우 만족스러운 2분이 아니었나 싶다. 다 타고나서보니 전체 안반데기 밭의 한 5%도 안되는 영역에서만 놀고 온것을 나중에서야 확인했다. (다음에 다시 꼭 가봐야지)
사실 이번 트립은 말이 필요없었다. 준비부터 실행까지 모든 부분이 좋았다. 렌트를 선택해서 기차를 타고 간 것 부터, 등반 코스에서 만나는 트리런과, 안반데기의 파우더까지... 너무 만족스러워서 또 가려고 준비를 잔뜩하고 있다. 체력의 안배를 위해서는 등반을 줄이고 차량진입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 트리런을 못할 수 있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고루포기를 올라가서 들어가는 경우, 등반 코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등산객과 접촉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초반에 올라갈때는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었는데, 나중에 내려올 때는 거의 한 무리의 등산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 경우 등반로를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감안해야할 것이다. (트리런 코스의 경우 러셀 경로에서 벗어난 곳이라 비교적 안전하게 즐길 수 있었다) 생각나서 적어보는 등산객 아저씨 아주머니들 레파토리: 보드를 가지고 올라왔어요!?-> 탈데가 있어요!? ->대단하네 젊은양반들이->멋있다 화이팅이에요햣햣햣
보드의 느낌은 매우 좋았고, 파우더에서 다이나믹하게 턴을 하면 에어턴이 될 정도로 가볍고 반응이 빨랐다. (사실 다른 파우더 데크를 타본 경험이 없어서 이게 좋은건지는 잘모르지만.. 생각한대로 잘 움직여줘서 만족했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보드를 벗으면 파우더에서 기동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 아무래도 설피가 있어야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스플릿 보드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잘랐다.
<계속>
4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