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연구자의 핸드메이드 파우더 스노우보드 제작기 (1-3)
이 챕터에서는 지금까지 제작했던 보드의 프로필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각 보드의 제작 과정에 얽혀있는 내용들과 보드의 스펙에 대해서 정리해놓고자 한다.
가장 처음 만들기위해 시도했던 보드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것저것 주문을 했었다. 당연히 진공을 이용해서 프레스 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는데, 유튜브에서 진공청소기로 만드는 영상을 보고 연구실 청소기를 가져와서 집에서 찍어봤었다. 당연한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진공이 제대로 만들어지지않았고, 당황한 나머지 집안 여기저기에 있는 물건들을 잔뜩 올려서 (나름 강한 힘으로 눌러야 겠다는 생각에) 프레스를 진행했었는데, 결과는 당연히 망했다. 사이드월과 엣지가 첩착이 되지 않아서 다 떨어져서 굳어버렸다. 말그대로 탈 수가 전혀 없는 상태. 결국 그대로 폐기 처리했었다. 그래도 보드의 설계를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지, 다음 보드 제작을 위한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보드.
박사학위 과정은 상당히 긴 기간(나는 6년)이었고, 그 동안 나를 지탱해준 여러 요소들 중 하나는 분명히 스노우보드 였다. 특히 마지막 논문 심사(떨어지면 한학기 더해야된다. 회사도 못들어간다)를 앞둔 나는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안주머니에 팍팍 챙겨넣고 있었는데, 그 때 도움이 되었던 것이 이 보드의 제작 과정이었다. 어떤식으로 만들면 실수하지 않을까, 어떤 방법이 효율적이고 참신할지를 자기 전, 출퇴근할 때, 교수님이랑 미팅 할 때(?) 등의 시간에 생각하곤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보드는 제작에는 성공했지만, 설계상의 결함으로 일본 원정에서 파손되었다. 그 결함은, 코어 우드의 두께 가공 작업에 있어서 노즈를 기준으로 지그를 만들었는데, 노즈와 테일이 대칭이 아니었기 때문에 테일쪽 경사면 가공에 큰 단차가 생겼었고, 그 부분에 힘이 가해져서 부러졌다. (그림 참조).
그래도 처음으로 제작에 성공한 데크였고, 이 데크는 Volcom 일본 투어에 초청 받았을 때 가져가서 매우 행복한 체스트파우더를 만났다.(자랑) 코어는 6.5T의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하였다. 합판의 경우 겹쳐지는 자작 판재의 퀄리티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추천하지는 않는다는 해외 포럼의 글을 확인하였으나, 저렴하게 구할 수 있고, 6.5T 인서트홀의 길이에 딱 맞출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업을 해봤다. 파우더를 타기 위해 제비꼬리 테일을 선택하였고, 노즈를 서핑보드처럼 샤프하게 뽑았는데, 전체적인 형태와 쉐입이 마음에 들었다. 상판에는 탑시트 머티리얼 조금과 애쉬 무늬목을 가공하였다. 데크의 로고 캐릭터 디자인은 @heoheejeong 이 맡아서 해주었고, 그래픽은 시트지 커팅을 이용하여 시공하였다. 캠버는 제로 캠버, 혹은 서프 캠버로 가운데는 플랫하고 양끝이 올라오는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탔을때의 느낌을 기억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생각보다 탄력이 있었고, 좁은 사이드컷 R값 덕인지 깊게 카빙을 하면 보드가 튀어오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합판을 사용한 것은 생각보다 좋은 선택이었던듯 하다. 가볍고 단단한 느낌의 데크였다. 또한 파우더에서 부력이 꽤 받쳐주었고, 의도한대로 테일 부분의 제비꼬리 형상이 보드의 뒷부분을 가라앉혀 안정적인 파우더를 맛볼 수 있게 하였다.
세번째로 만들었던 보드는, 아직 탈 수 있는... 보드다. 이 보드는, 합판이 아니라 집성목을 이용하여 코어를 만들어보고자 진행했던 나무로, 애쉬 집성목을 이용하여 코어를 제작하였는데, 특이점은 사이드월이 없다. 애쉬 나무의 경우 하드우드이며, 습기에 강하기 때문에 사이드월을 안 넣고, 추후에 스테인 등의 코팅을 이용하면 어떨까, 그럼 좀더 작업이 쉬워지지않을까하는 마음에서 설계를 했었다. 엣지를 붙이기 좀더 쉬운 디자인을 고민했었고, 결과적으로 옛날에 타던 데크인 APO 데크의 헤드 쉐입과 비슷한 형태가 나왔다. 후반부 보드의 아웃라인을 잘라내는 과정에서 실수로 테일부분을 잘못 건드려서, 결국 비대칭 테일로 완성된 보드이다. 최종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스테인을 칠하기 위해서 나무를 샌딩하는 과정에서 무늬목이 파여서, 안쪽에 시공한 검은색 카본이 보이는데, 마치 나무 옹이 처럼 보인다고 주장해보자. 사이드월의 경우, 큰 무리는 없어보이는데 아무래도 스테인 코팅이 벗겨지는 경향이 군데군데 보이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 보드는 전체적으로 하드우드 코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보드가 조금 무겁고 단단한 편이다. 이 보드의 경우 졸업을 마무리하면서 대전과 휘팍을 왔다갔다하면서 만들었는데, 겨우 완성하여 작년 니세코 원정에서 테스트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작년 니세코 일정에 눈이 안와서 너무 아쉬운 보드이다.
네번째 보드는, 얼마전 제작을 시도하였고 제작실패한 데크이다. 서울에도 올라왔고, 취직도 하였고, 파우더 스노우보드를 타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터라, 직장인의 자본력과 여유로 한번 만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진행을 했다. (사실 그렇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듯…) 같은 메이킹 활동을 하고 있는 동료와 함께 진행했는데, 학교에서 진행할 때는 학교 작업실과 빈 방에서 새벽에 몰래몰래 작업이 가능했다면, (아마도) 유해한 가루가 나오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작업을 평일 저녁에 손쉽게 집에서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CNC는 사당에 가서 맡겨 받아오고, 금속판 레이져 가공은 분당을 다녀왔으며, 소리가 나고 먼지가 많이 나는 작업은 부모님 집 (양평) 작업장에서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보드를 레이어링 하는 건 친구 집 옥상 작업실에서 진행했는데, 주말 저녁에 이걸 진행하다보니 결국 문제가 생겼다. 코어와 보드가 오차 없이, 되도록 정확하게 쌓여야 의도한 바인딩의 위치, 그리고 나무로 된 코어가 드러나지 않는데, 코어의 위치를 잡겠다고 붙여놓은 ABS 블럭을 부족하게 설치하여, 레이어링 작업에서 코어가 중앙에서 약 5cm 가량 뒤로 밀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해가 빠르게 지는 탓에 마음이 급해졌고, 에라모르겠다 잘 찍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진행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노즈의 하얀 부분이 원래는 보드 밖으로 나와 있어야하는데… 결과적으로 나무 코어가 보드 밖으로 돌출 되었고, 인서트 홀의 위치도 정렬이 어긋났다. 그래도 만든 김에… 싶어서 타봤는데, 테일프레스 오른쪽 날개부분이 휘어졌다. 이것은 코어의 선택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암시하는데, 이 데크의 경우 소프트 우드, 중국산(!!) 오동나무를 코어로 선택했다. 7T라서 두께에 대한 별도의 가공이 필요없었고, 가격이 워낙 저렴했기 때문에 선택했는데, 스폰지처럼 약하고 부드러워서, 코어로서 좋은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게다가 테일쪽이 짧은 상황에서 굳이 2mm 까지 테일의 두께를 줄였는데, 그것 역시 보드의 강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섯번째 보드는, 같이 보드를 타러 다니는 여자친구의 보드를 만들기로(시기가 맞아서 어쩌다보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네번째 보드를 제작하면서 같이 진행을 했었는데, 여자친구가 작업하고 있는 캐릭터에서 디자인을 가져와서 보드의 아웃라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탑의 디자인은 본인이 직접 진행하였다. 전체적인 스펙은 라이더님께서 이미 타고 있는 버튼 여성용 데크인 데자뷰에서 가져왔다. 셋백만 조금 더 주어 노즈가 길게 하였다. 데크의 코어는 하드 우드인 애쉬 우드 코어를 사용하였다. 때문에 조금 무겁지만, 부러지거나 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 데크는 거의 처음으로 그래픽을 시공해보았는데, 보통 X자 배너에 쓰이는 PET지 인쇄+ 코팅을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는 많이 아쉬웠는데, 그래픽은 사진과 같이 잘 나오지만 끝부분 코팅이 점차 벗겨져서 필름이 드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탑시트 재료를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상당히 고민이 된다. (사실 인쇄된 탑시트를 다른 부품 주문 시에 같이 주문해도된다. 혹은 베이스 재질로 해도 된다고 한다.)
대망의 여섯번째, 지금까지 만든 최근의 보드는, 네 번째 보드의 재현이다. 미국으로 보드를 타러가기로 마음을 먹고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간에 맞춰 진행하느라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보드의 경우 정말 마음을 다잡고 만들었던 보드라, 다섯번째 보드와 함께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지산에서 테스트 라이딩을 갔을 때, 사이드 월과 엣지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의도적으로 고속으로 쏘고 내려오다가 힐 엣지로 급정거를 했는데, 아이스에서 튕기면서 몇 번 강한 충격을 받았었다. 아마도 너무 약한 오동나무 우드 코어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벌어지는 경우는 없었어서 당황했었다. 문제는 이 상황이 출국 3일전에 발생한 것이라는 것. 궁여 지책으로 다시 에폭시를 채워 넣고 클램프로 조여서 보드를 수리하고자 했으나, C 클램프를 구하지 못해서, 여전히 살짝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내가 선택했던 것은 벌어진 곳의 두 군데에 구멍을 뚫고, 접시 머리 나사로 베이스부터 박아서 데크를 조이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수리되었고, 미국에서도 문제없이 라이딩 가능했다. 다녀와서는 C클램프를 이용하여 다시 수리하고, 구멍 난 베이스는 리페어 캔들로 수리 해놓은 상태이다. (맨 위의 사진은 수리 전의 상태이다)
데크는 150.3cm, 셋백 3cm, 오동나무와 애쉬 우드를 섞은 우드 코어를 사용하였다. 이전 보드에서 오동나무 코어가 갖는 내구성에 대한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오동나무를 CNC 맡길 때 애쉬 우드를 같이 맡겼다. 그래서 전체적인 틀은 오동나무로 되어있고, 중간에 애쉬로 된 4cm 정도 두께의 스트립이 들어가 있다. (그림참조).
데크의 성향은, 짧은 테일로 인해 트리런 시에 방향전환이 용이하였고, 미디엄에서 소프트 정도의 플렉스를 갖는 보드로 여겨졌다. 이전에 만들었던 데크들이 하드우드 집성목을 통짜로 이용한 코어를 썼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탄력이 강한 느낌은 아니었고, 편안하게 파우더를 크루징 할 수 있는 보드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 제대로 된 파우더를 못 만나서 추측 해보자면..)
무게도 상당히 가벼워서, 파우더 원정, 백컨트리에 용이하게 활용 할 수 있겠다 싶은데…(눈이 안온다)
일단 지금까지 만든 보드는 이만큼이 있다. 이중 아직 갖고 있는 보드는, 2~6번. 사용가능한 보드는 3,5,6번이 되겠다. 사실 샌딩하고, 나무 경사면 가공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방식으로 보드를 만드는 것을 생각중이다. 이게 가능하다면 사실 설계만 제대로 되면 한방에 찍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고민중. 게다가 스플릿 보드를 만들 수 있는 키트를 파는 곳도 확인하였기 때문에... 좀더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아마 다음 보드는 스플릿보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