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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abutomby Jun 25. 2020

Sustainability. Powder surf

보드 연구자의 핸드메이드 파우더 스노우보드 제작기

Episode 5: Sustainability (Powder surf)


공유 목공방의 최소 계약은 3개월 이었다. 보증금 30에 월 16만원. 돈 걱정 없이 매년 신상 보드와 보드복을 구입할 수는 '없었던' 사회에 갓 나온 대학원생에게는 사실 큰 지출이었고, 큰 결심이었다. 때문에, 매일 공방에 나가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렇게 표현해보지만 사실은 마음이 급하고 생각난걸 빨리 해버려야하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감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 2개월, 스플릿 보드를 제대로 만들었다. 설계부터 공법까지 모든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설계하고 제작하였다. 물론 glitch는 언제나 존재하고, 다시한번, 좀더 제대로 개선해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하지만... 


아마추어 레벨의 보드제작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데크를 몇장 찍어낸 몸이 아닌가. 그러한 마음에서, 영밀레니얼 다운 행보를 선택하였다. (사실 회사에 와서 밀레니얼과 젠지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다.) 인스타 계정을 멀티로 파서, 보드 제작과 관련된 내용을 포스팅 하기 시작했다. (@petamind_snow 팔로우 부탁드려요...?)  그러면서 다른 아마추어 보드 제작자들과 소통을 하기(나를 알리기) 시작했는데, 나의 관찰 상으로는- 이 세계 (아마추어 보드 제작)에 한가지 개념이 더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스노우보드가 다 스노우보드지.. 같은 느낌이겠지만, 나와 같은 휘팍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르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파크, 트릭, 파이프, 해머(라이딩), 알파인 등이 다 다른 보드이고 다른 개념이다. 이런 개념의 세분화는 백컨트리의 세계에서도 있었고, 작년 파우더 워크샵에서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이 세분화는 어디에서 보드를 타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리조트 내의 파우더를 즐기느냐, 스키장이 아닌곳에서 보드를 타려하느냐에 대한 개념이었다. 이번에 알게된 개념은, 무엇을 타느냐.. 에 대한 내용이다. 이번 7편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스노우 서프(Snowsurf)이다. 간단히 정리해서, 스노우서프, 파우서프는 파우더 라이딩 시 바인딩 없이 서핑을 하듯 보드를 타는 개념이다. 그게 될까 싶은데, 영상으로 보면 다들 잘 탄다. (될 것 같긴 하다). 일반 보드에 비해 길이도 짧고, 엣지나 사이드월도 적용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가공이 쉽겠구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몇 일 관찰/리서치를 하면서, 공방에 못 나가는 동안(=회사 일을 하는 동안) 이거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서 계속 들었다. 원래는 1~2mm의 베니어 판재를 10개 정도 겹쳐서, 마치 스케이트보드 만들 듯이 제작을 하는데, 국내에서 베니어 판재를 보드 사이즈로 구하기는 매우 어렵고(불가능) 가능한 것은 구하기도 쉽고 작업도 쉬운 자작나무 합판이다. 자작나무 합판은 4mm로 나오고, 1mm 판재 3개가 교차되어 붙어있다. 


디자인은 이곳 저곳을 참고해서 진행하였으며, 다음과 같다. 이번 제작의 목표는 최대한(뭔가 기시감이 드는데) 품을 안들이고 스노우 서프를 만드는 것이며, 되도록이면 나무 이외의 재료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

일단 보드의 설계는 역시나 일러스트로 작업하여, 본을 만들고, 이대로 수작업으로 커팅하였다. 사이드컷 역시 정확한 수치보다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슥슥.. 눈으로 보기에 최대한 자연스럽고 귀여워보일 수 있도록. 부력은 높되 짧아서 움직이기 쉽도록. 스케이트보드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귀엽게...! 140cm짜리 짧뚱하고 두꺼운 스케이트보드와도 비슷한 파우더 보드 쉐입을 그렸다.


퇴근하면서 목재소에 들러 4mm자작나무 한판 (1440*2440)을 구입했고, 400*1500 세장과 나머지로 재단해 달라고 부탁 드렸다. 이렇게 3만8천원으로 코어와 베이스, 사이드월, 탑시트, 엣지에 필요한 부품이 모두 준비되었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좀 뻥이고, 베이스를 코팅할 에폭시와 색을 입힐 스테인, 지난번에 만들어놓은 몰드도 함께 활용하였다)

이 자작나무 합판 세장이 재료의 거의 대부분이다.

프레스는 지난번 스플릿보드를 만들때 사용하였던 몰드를 그대로 활용하였다. 다만 보드가 짧으므로, 밑의 파츠를 옮겨서 다시 고정하였다. 프레스는 목공본드를 이용하여 작업하였는데, 아래와 같이 듬성듬성 프레스를 눌러주니 아무래도 중간에 접착제가 뭉치거나, 들뜨는 부분이 생기는 듯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장의 겹쳐진 자작나무 합판 위에, 가져온 본을 붙인다. 본은 프린트도 심지어 아니고 이면지를 모니터에 대고 그려서 붙였다... 반쪽만 만들어서 양쪽으로 뒤집어가면서 그려주었다.


이게 될까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갑자기 등장하는 완성된(아님) 보드...

육절기(골절기)를 이용하여 모양을 따내고, 밴드 샌더를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다듬어주었다.

이때부터 조금씩 신이 나기 시작했다. 아우 이뻐라...


뽀얗고 귀여운 형태가 훌륭하다.


바닥면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일반적인 스노우보드는 바닥이 플랫하다. 조금 특이한 보드들의 경우 트리플 베이스, 3D베이스 등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좀더 부력을 주거나, 역엣지가 덜걸리게하는 방식을 선택하곤한다. 그럼 이친구는 어떻게 해야할까. 서핑보드니까, 눈이 깊은 곳에서 붕붕 뜨려면 아무래도 스푼 형태의 베이스가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밸트 샌더를 집어 들었다.


합판을 사용하는 경우에, 합판은 나무의 결방향이 번갈아서 겹쳐져있다. 때문에, 사선으로 갈아내면 하얀 나무와 갈색 선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베이스 면을 샌딩하는 과정에서 훌륭하게 나타났다.


이때쯤.. 아, 이건 이거구나. 이쁘겠구나!

합판의 이러한 단면이 가공 방법에도 큰 도움을 주었는데, 어느정도 균일한 곡률을 가질 수 있도록 기준점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모양 자체가 굉장히 이쁘다는게 포인트. 합판 한장당 1mm이므로, 마치 등고선처럼, 베이스의 형태를 짐작하거나 수정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마치 등고선 같은 그런...


이번 보드에는 스테인으로 색을 넣어보는 작업도 생각을 해봤다. 별도로 그래픽을 넣기 애매하니, 스테인을 이용하여 자연스러운, 서핑보드 스러운 나무색을 내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인터넷에서 스테인을 세개 주문했는데, 공방에 도착하니 공방장님이 스테인 색을 보고 빵 터지더라.


운명인가 집착인가 습관인가. 나는 이쁘다고 생각한 세가지 색을 골랐을 뿐인데.


그렇게 스테인을 입힌 보드는 다음과 같았다.


보드가 얼추 완성이 되었는데, 나는 여기서 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보드의 바닥면이 현재는 나무+스테인으로 되어있는데, 이위에 바로 왁스를 두텁게 발라줄 것인지, 아니면 에폭시를 코팅하듯 덮어줄 것인지, 혹은 우레탄 바니쉬 (니스)를 칠할 것인지 였다. 일단 왁스칠만 하기에는 내구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왁스는 벗겨져 나갈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 니스는 괜찮겠다. 가격도 저렴하고, 작업도 쉬운 편이니... 싶었는데, 니스를 칠하니 스테인의 색이 확 변했다. 따라서 니스도 아니고... 그래서 집단지성을 좀 활용하고자, 다른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아티클의 본 내용이 너무 늦게나왔다는 생각이든다.)


한 제작자는 니스칠을 하고 왁싱을 했다고 했고, 또 한 제작자는, 인스타 DM으로 토론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 하였고, 장문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분의 의견으로는, 에폭시는 몸에도 안좋고 환경에도 안좋다. 사실 작업하려면 베이스 재료가 되는 판을 붙여주는게  나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플라스틱과 에폭시는 환경이 좋지않고 몸에 좋지 않으니, 우리는 이것을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것 이었다. 


사실 이런 방식의 보드를 제작하게된 이유도, 에폭시와 유리섬유 작업에서 오는 어려움과 민감도, 유해성 때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말에 십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However), 나는 이 보드의 완성도 자체도 중요하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에폭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 순간 다음 작업을 하고, 작업을 인스타에 올리는 행위들이 조금 불편해졌다. 나는 분명히 환경을 생각하고, 신경을 쓰는 사람에 속해 있는데, 내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도덕적인 작은 성에 결함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인스타에 올리면서도 그분의 눈치를 조금 보게되기도 하고...


사실 나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논의했던 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선택적 도덕성'이라는 개념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하고 싶어하고, 도덕적인 범위에서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데, 그 과정과 방식에 있어서는 모두가 취사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용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직접 고르고 원하는 도덕적인 규범을 지킨다. 일회용 랩은 자주 쓰지만 카페에선 텀블러를 쓴다던가하는 것들을 생각하면된다. 어떻게 보면 위선적이고 가식적이어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항상 일어나는 현실이고 당연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국이 터지면서 일회용기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위에서 말한 불편함이 싫지만은 않았던 것이, 그 불편한 감정이 결국 내가 선택하는 도덕적 행동의 범위를 넓히는 트리거가 되고, 행동을 바꾸는 첫걸음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이만큼 환경에 유해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조금 더 신경을 써야지, 일회용기에 들은 회사 밥을 받지 않는다던가, 페트병에 붙어있는 비닐을 항상 뗀다던가 하는 식으로 배상하고자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삶에 대한 도덕적 기준(환경에 국한되었지만)을 살짝은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글을 한개 더 파서 좀더 제대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다시 보드 얘기로 넘어가겠다.)


그런 심적 고통과 부담, 서스테이너빌리티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보드는 다음과 같이 결과물을 내주었다.

이번주터는 실크스크린 작업도 병행하여, 보드에 찍어주었다!

20/21 POWDER SURFBOARD LTD. EDITION

Moderately handmade snowboard (적당히 손으로 만든 스노우보드)


또한, 형태를 좀더 과감하게, 리버스 사이드컷을 가진 서핑보드 쉐입의 보드도 만들어보았다.

사실 이 보드는 선물용으로 만든건데, 너무 이뻐서 못주겠고... 한대 더 만들어서 줄 생각이다. (아마)


강렬하게 핫핑크로 마감하였다.


너무 귀여운 투샷. 이름은 각각, Surfer's shorty와 Nature's Shorty이다.



이러한 형태의 베이스도 없고, 사이드월도, 엣지도 없는 보드가 눈에서 어떻게 타질지, 특히 정설된 슬로프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 궁금하다. 사실 파우더 눈에서야 좋겠지. 잘 타지겠지, 하지만 거기선 무얼 타든 재미있을 것이고, 내가 손으로 깎아낸 이 보드가 어떻게 반응할지 상당히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게다가 이 보드의 경우 재료비가 그렇게 크게 들지 않았고, 만드는 과정에서오는 어려움이나 유해함이 적어서, 앞으로도 종종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보드였다.


곧, 겨울이 오고 눈이 오면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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