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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남 Sep 26. 2021

8. 조선의 브로맨스들

_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

브로맨스는 brother와 romance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로 남성 간의 뜨거운 우정과 유대를 의미한다. 추사는 평생을 함께한 친구가 여럿 있는데 먼저 추사와 초의의 진한 우정을 살펴보자.

당시 서른 무렵의 초의는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 말사의 이름 없는 스님에 불과했으나 추사는 조선에서 손꼽히는 명문가 출신의 국제적인 명사였다. 두 사람은 동갑으로 유불과 승과 속의 경계를 넘어 정이 매우 깊었다. 엄격한 신분 계급이 존재하던 조선 사회에서 추사와 초의가 친구 사이였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아래 두 편의 글은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다.      


인편으로 편지를 받으니 선사가 사는 산중이나 내가 사는 이곳이 전혀 다른 세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하늘을 이고 그리워하면서도 어찌해서 지난날은 그처럼 격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세밑 추위가 기승을 부려서 벼루 물과 술을 얼리고도 남을 정도랍니다. 선사가 사는 남쪽은 들판에서도 이런 일은 없겠지요.... 그런데 새로 딴 차는 왜 돌샘과 솔바람 속에서 혼자만 즐기면서 먼 곳에 있는 사람 생각은 하지 않는 것입니까? 서른 대의 매를 아프게 맞아야 하겠구려.     


두 사람의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차였다. 스님이 보고 싶지 않다든지, 밀린 차만 보내달라든지 하는 추사의 말은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 같아서 웃음을 자아낸다.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없구려. 산중에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혹시 나 같은 속인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뜻인가요? 나는 이처럼 간절한데 그대는 그저 묵묵부답이니. 머리가 허옇게 센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갑자기 이처럼 하는 까닭이 무엇이오? 아예 절교하자는 말인가요?... 지난 두 해 동안 밀린 차 빚을 한꺼번에 갚되 다시는 지체하거나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마조 스님의 꾸지람과 덕산 스님의 몽둥이를 맞을 것이니 이 꾸지람과 이 회초리는 비록 백천겁이 지나도 피할 길이 없을 것이오.    

 

추사가 유배온 지 3년째 되는 해(1842년), 아내 예안 이씨가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이듬해 봄 초의가 추사를 위로하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와 제주에서 반년을 같이 지낸다. 그때의 기쁨을 추사는 <초의에게 주다>라는 시에서 '한 침상에서 다른 꿈 없는 것이 좋기만 하다'라고 노래한다. 가지 말라고 만류하지만 육지로 돌아가던 초의가 말을 잘못 타서 살이 벗겨진다. 그 소식을 들은 추사가 위로 겸 처방을 내려주는데 이때도 추사는 장난기가 발동하는가 보다.     


크게 상처를 입지는 않았는가? 내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행동을 했으니 어찌 그에 대한 앙갚음이 없겠는가. 사슴 가죽을 아주 엷게 조각을 내고 그 상처의 대소를 헤아려서 적당하게 만들어 쌀밥풀로 되게 이겨 붙이면 제일 좋다고 하네. 이는 중의 가죽이 사슴 가죽과 통하는 데가 있다는 것일세. 그 가죽을 붙이고 곧장 몸을 일으켜 꼭 돌아와야만 하네.     


과천으로 돌아와서도 추사는 초의를 그리워하며 '보고 싶으니 빨리 오라'는 편지를 띄운다.     


요즘 송나라 때 만든 소룡단이라는 차를 하나 얻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보물입니다. 이렇게 볼만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런데도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추사는 권돈인이나 조인영처럼 유학자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닌 이름 없는 선승을 왜 친구로 사귀었을까? 신분이나 권세의 유무보다 뜻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추사가 죽고 2년 후, 초의는 홀로 찾아와 '42년의 깊은 우정을 잊지 말고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 오랫동안 인연을 맺자'라며 통곡의 제문을 바친다.

이참에 나에게도 뜻을 같이 할 브로맨스나 워맨스(woman romance)가 있는지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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