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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남 Aug 27. 2021

7. 마음을 전하는 짧은 글, 척독

_토정 이지함과 고청 서기

불과 수십 개의 단어로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전하는 ‘척독尺牘’이라는 편지가 있다. 보통 편지라고 부르는 것은 서간과 척독 두 종류로 나뉜다. 서간書簡은 사실을 상세히 알리거나 상대를 설득할 목적으로 장황하게 쓴 편지고, 척독은 보낸 이의 심경과 감정을 간결하게 표현한 글이다. 여기 안면도에 사는 토정 이지함이 계룡산 자락에 사는 매우 친한 친구 고청 서기에게 보낸 짤막한 척독 한 통이 있다.     


요새 학문에 진척이 있으신지요? 여기는 자식 놈이 감기를 앓고 있는데 상태가 심해서 걱정입니다. 내일 조카를 데리고 탐라를 가려고 하는데 선생께서 동행할 뜻은 없으신지요? 그래서 편지를 올립니다.  


 무슨 대단한 사연이 적힌 것이 아니다. 내일 제주도에 가려는데 당신도 함께 가겠느냐는 문의 편지일 뿐이다. 그런데 홍대용의 문집 <담헌서>를 보면, 스승 김원행의 가르침을 기록한 내용 중에 위의 편지를 두고 사제 간에 나눈 대화가 있다. 어느 날 스승이 홍대용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글이라며 위의 척독 한 조각을 보여준다. 그러자 홍대용이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외에 나가는데도 반드시 날을 잡고 양식을 장만하느라 법석을 떤다. 그러고도 병이나 어떤 사유를 대며 약속을 어기는 일이 많다. 그런데 토정 선생은 바다 건너 섬에 들어가는데도 자식의 중병은 염두에 두지 않을 뿐더러 천리 길을 가면서 약속을 내일로 잡았다. 

하룻밤 사이에 말과 식량을 어떻게 마련하겠느냐? 하지만 고청 선생은 망설임 없이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입장에서는 두 분의 행동이 물정에 어두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만, 나는 이 편지에서 그 분들의 호쾌한 결단을 보았다.                                              

                     

홍대용의 질문에 대한 스승의 답이다. 그 당시 충청도에서 제주도까지 먼 바닷길을 배를 타고 여행하고 한라산을 오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함께 가자고 편지를 보낸 토정! 이렇다 저렇다 구질구질 따지지 않고 친구 따라 길을 떠난 고청! 토정은 당대의 기인이자 학자였고 고청 역시 학문이 출중해서 세인의 존경을 받던 선비다. 둘 다 세속적 명예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호방한 행동과 걸출한 학문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어쨌든 스승 김원행은 짧은 편지 속에서 옛사람의 호기와 인품을 읽어냈다. 자잘한 일상에 매여 매사 툭 떨쳐버리고 호기롭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말과 행동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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