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남 Mar 14. 2022

27. 글 쓰는 일의 어려움

_이수광, 홍길주

등단 55년을 맞은 한승원(82) 작가가 “나는 시 한 편, 소설 한 편 쓰는 일을, 이 우주에 꽃 한 송이로써 장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또 시를 쓴 지 30년이 지났으니 사물만 보면 싯귀가 술술 떠오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박목월 시인은 “늘 막 등단한 신인 같은 심정이다.” 그렇게 대답했다. 원로 작가들의 표현에서 글 쓰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조선의 지식인들은 산문을 쓰고 시를 짓는 행위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주홍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자문"을 만들었는데 수염과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얘지고 집에 돌아와서는 두 눈의 시력을 잃고 죽을 때까지 마음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고 한다. 사령운은 반나절 동안 시 100편을 지었는데 갑자기 이 12개가 빠져버렸다. 맹호연은 고민하면서 시를 짓다가 눈썹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위상은 "초사" 7권을 저술하고 나서는 심장의 피가 모두 말라 끝내 죽고 말았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저술(著述)’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표현한 글로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싶다. 연암 박지원이 글쓰기를 병법의 이치에 비유한 것도 매우 흥미롭다.     

 

글자는 병사와 같고, 글의  뜻은 장수와 같고, 제목은 맞서 싸우는 나라와 같다. 옛일을 인용하는 일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일과 같고, 글자를 묶어 구를 만들고 다시 구를 모아 장을 이루는 일은 대오를 짜서 진을 치는 일과 같다. 또 운율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일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두르는 일과 같다.     


그런데 조선 지식인들은 글쓰기의 어려움을 말한 것 못지않게 ‘글쓰기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내용이 ‘현대의 글쓰기 작법’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놀라울 정도다. 그 중요한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1) 평범함 속에 훌륭한 글이 있다

문장은 반드시 새롭고 기이한 생각이나 색다른 말로 꾸며야 훌륭하다면 훌륭한 글을 평생 동안 몇 편이나 지을 수 있겠는가?.... 대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지은 훌륭한 글을 보면서 이 글에 나타난 생각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인데 왜 이런 훌륭한 글을 짓지 못하는 것일까, 갸우뚱하면서도 크게 감탄한다. 그러나 감탄만 할 줄 알고 자신은 훌륭한 글을 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사물과 대상을 상식과 다르게 바꾸어 생각해보거나 미루어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루어 헤아려 생각하는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면 다른 좋은 표현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_홍길주 "수여연필"       

(2) 글은 복잡하지 않고 간략해야 한다.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한 점도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면 무엇에 쓰겠는가? 이 때문에 공자는 "서경" 중에서 필요 없는 글을 몽땅 들어내고 단 100편만을 취했다. 이것은 복잡하고 번거로운 것을 버리고 간결한 요점만을 얻고자 한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_정조대왕 "홍재전서"      

(3) 글쓰는 재료를 언제 어디서든지 모아라

 어렸을 때 문장에만 정신이 팔려 가슴속에서 갑자기 기이한 문장을 한두 구절 완성하거나 이따금 사물과 마주하여 문장을 짓는 데 쓸 만한 기묘한 비유나 빼어난 말을 얻기라도 하면 종종 작은 쪽지에 기록해서 상자 속에 간직하곤 했다..... 항상 책자 하나를 만들어 ‘글 재료文料’ 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생각이 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쓸 만한 글을 짓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둬서 뒷사람에게 넘겨주려고 했다.   _홍길주 “수여방필”     

(4) 글 고치기

구양수는 글을 지으면 가장 먼저 벽에 붙여놓고 시간이 나는 대로 고쳤다고 한다. 마지막 완성 단계에 이르러 처음 쓴 글자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또 노직은 말년에 들어서 예전에 자신이 지은 글을 많이 고쳤다고 한다. 이처럼 글 고치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더 나은 글을 쓸 때 도움이 된다.  _이수광 “지봉유설” 중 ‘문장 文’     

(5) 왜 시간이 흐른 뒤 글을 고칠까?

 김일손은 글을 지을 때 미리 마음속으로 생각해 두었다가 단숨에 써서 글을 완성했다. 일단 완성한 글은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상자 속에 던져두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 뒤에 글을 꺼내어 고쳤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김일손은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 글을 지을 때는 마음속에 사사로운 뜻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글의 결점과 병폐를 보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이야 공정한 마음이 생기므로 좋은 문장과 함께 그 글의 결점과 허물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_유몽인 “어우야담”      

(6) 글에 대한 비평을 받아들이는 자세

이규보는 "다른 사람의 시에 드러난 결점을 말해주는 일은 부모가 자식의 흠을 지적해 주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조자건은 "사람이 쓴 글에 병폐가 없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이 내 글을 비평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비평을 듣고 글이 좋지 않으면 반드시 고쳐서 바로잡곤 한다."고 말했다.       _이수광의 "지봉유설" 중 ‘문장 文’      

중요한 자료 모으기부터 간결하게 표현하기, 퇴고하기 등. 그뿐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다 쓴 글을 일정 시간 동안 묵혀둔다는 내용도 있다. 게다가 글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고깝게 듣지 말라는 고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모두가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기준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다.           


이전 22화 26. 살아남은 자의 슬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