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1부와 2부로 구분이 되어있지만 큰 이야기의 줄기는 끊기지 않고 계속됩니다. 2부에서 더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바로 흑인과 백인 사이에 존재하는 높은 벽이죠. 그 벽을 스카웃과 젬의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모두가 못 사는 시기이지만 그 안에서 나뉜 계층 중 스카웃과 젬은 백인 중에서도 나름 엘리트 층에 속하는 집안의 아이들입니다. 흑인 캘퍼니아 아줌마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환경 속에서 백인 중심의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왔던 것이죠.
그러던 중 아이들은 캘퍼니아 아줌마가 다니는 교회를 따라가게 됩니다. 흑인들을 위한 교회는 처음 가본 아이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평소엔 백인 말투를 쓰던 캘퍼니아 아줌마는 흑인들을 만나자 갑자기 그들과 같은 말투를 쓰는 모습, 찬송가를 부르는 시간엔 한 명이 책을 보며 선창 하면 나머지가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놀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찬송가를 선창하는 것은 다른 이유도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만으로도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죠. 교회에서는 가해자로 지목받고 있는 톰 로빈슨의 가족을 위한 헌금이 진행되고 10달러가 모이기 전까지는 교회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극단적인 조건 속에서 아이들도 헌금에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
드디어 톰 로빈슨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 날, 스카웃과 젬, 딜은 어른들 모르게 법정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노인들의 대화를 통해 애티커스 핀치, 즉 아버지가 원해서 톰을 변호하게 된 것이 아님을 듣게 되죠. 법원에서 임명해서 변호한다는 것입니다.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먼저 원해서 맡은 변호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차례가 돌아온 일에 대해 받아들이고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웅적인 캐릭터가 아니 때문에 독자들이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지고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 아이들은 좁은 2층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흑인들 사이에서 재판을 보게 됩니다. 1층에 앉아있는 백인들 사이가 아닌 흑인들 사이에서 재판을 보며 흑인들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부분입니다. 흑인 교회에 간 경험과 재판 과정을 관찰하는 두 사건은 아이들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판 심문 과정을 보면 누가 봐도 톰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12명의 배심원들의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웰의 손을 들어줍니다.
재판 과정 중 검사에 대한 딜의 반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막 대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딜의 마음을 사람들이 절반이라도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핀지 변호사님은 메이예라와 이웰 영감을 반대 심문하실 때
그런 식으로 대하진 않으셨어.
그런데 그 사람은 그(톰)를 계속해서 '젊은이'라고 부르며 비웃고
그가 답변할 때마다 배심원들을 휘둘러보고 ...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패소했다는 결과를 들은 젬은 분노합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침착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라는 듯이 말이죠.
2심을 준비하는 중에 소식이 들려옵니다. 탈옥을 시도하려던 톰이 총에 사살당했다는 것입니다. 2심에서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톰의 마지막 선택이었죠. 재판에서 이겼음에도 밥 이웰은 애티커스 핀치에게 침을 뱉고 톰의 아내를 위협적으로 따라가는 등의 행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젬과 스카웃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빠,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네 나이 때에는 말이야.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다면, 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지?
스카웃, 이제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부 래들리가 지금까지 내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말이야,
아저씨는 집 안에 있고 싶기 때문이야.
대망의 마지막 사건은 핼러윈데이 날 일어납니다. 핼러윈 행사가 끝난 늦은 밤, 밝은 불도 없는 거리를 젬과 스카웃이 걸어가다가 누군가 뒤쫓아 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결국 붙잡혔고 젬은 스카웃을 구한 후 그 누군가와 몸싸움을 하다가 팔 한쪽이 부러지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알 수 없는 누군가 젬을 둘러업어 집까지 데려다줍니다.
경황이 없는 스카웃은 젬 방에 들어와서야 찬찬히 그 아저씨를 보게 되고 한 마디를 건넵니다.
헤이, 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부 래들리를 맞이하는 스카웃. 아빠는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며 젬이 이웰을 죽인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합니다. 제가 만약 젬이었다면 정말 서운했을 것 같네요.
부 래들리를 집까지 안내하며 스카웃은 한층 더 성숙해집니다. 이 소설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 아저씨는 우리 이웃이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비누로 깎은 인형, 고장 난 시계와 시계 줄, 행운을 가져준다는 동전 두 개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가져다주셨다.
이렇게 선물을 받으면 이웃 사람들은 답례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껏 그 나무에서 얻은 것들을 도로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슬펐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스카웃은 몸을 돌리며 부 래들리의 시각에서 밖을 바라봤을 때 보였을 장면들을 계절의 흐름에 따라 떠올리게 됩니다. '관점의 전환=입장의 전환=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래들리 아저씨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집을 향해 가는 동안 나는 나이가 부쩍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아마 대수를 빼놓고는 이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별로 많은 것 같지가 않았다.
1부에서 아버지는
라고 말합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인 '타인에 대한 이해'를 주인공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타자에 대한 이해를 중심 주제로 내세우며 여러 사건들을 통해 주인공인 어린아이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 관용, 사랑'을 배우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우선 앵무새는 부 래들리 또는 톰 로빈슨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엽총을 주며 '다른 새를 죽이는 것은 몰라도 앵무새를 죽이면 안 된다'는 아빠의 말을 바탕으로 볼 때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면 죄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부 래들리와 톰 로빈슨은 마을 사람들의 근거 없는 루머, 흑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차별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앵무새에 대입될 수 있습니다.
초반부에 젬과 스카웃이 젬의 팔이 부러진 사건을 언급하며 나누는 대화를 보면 사건의 시작은 딜이 여름방학 때 놀러 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부 래들리를 집 밖으로 끌어내려는 시도와 후반부 재판이 연결되어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편견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꼬집어 비판하며 두 사건을 관통하는 '타자에 대한 이해'라는 중심 주제를 제시하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