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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Dec 09. 2018

학교 자원봉사에 동참해 보자

이름도 생소한 Music Monitor가 되어~

새 학교에 적응하면서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엄마들이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매주 혹은 격주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학급 일을 돕고 있었다. 뉴욕 시의 초등학교에선 보통 반마다 담임 외에 보조교사가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를 특별히 요구하지 않았는데, 이 학교는 담임 혼자 모든 걸 주관하고 있었기에 학부모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선생님의 사무적인 업무를 도와 교재를 복사하거나 한 주간 아이들이 공부한 학습지 등과 알림장 등을 폴더에 넣어주는 일이나 수업 중 책 읽기나 문장 쓰기, 컴퓨터 수업 등을 도와줄 수 있다. 같은 반 부모들에게 전달사항을 알리며 참여를 유도하는 학부모 대표 역할을 감당할 수도 있고, 아트 프로젝트나 견학(field trip), 운동회 등 당일치기로 사인업 해서 도울 수 있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부모가 수업 시간에 짜잔 하고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겐 왠지 어깨를 으쓱거릴 수 있는 자긍심이 될 수 있기에 많은 엄마들이 기꺼이 동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학교 일을 돕다 보면 아무래도 영어를 더 쓰지 않겠는가? 집에선 도통 영어 쓸 일이 없으니. 그렇다면 나도?


이사 온 첫해엔 학기 도중에 전학을 왔기 때문에 이미 자리들이 다 차 있었고 나 또한 봉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학교에서 열리는 Book Fair(학교마다 열리는 아동서적 전시회로, 아이들이 좋은 가격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다)에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길래 유심히 살펴보니 반 아이들이 책을 구경하러 갈 때 희망 리스트를 적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시간도 짧고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아 용기 내어 신청 버튼을 눌렀다. 이리하여 어느 날 도서관에 두둥 하고 나타난 엄마를 본 우리 아이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며 내 마음 또한 환해졌다. 1학년이라 아직 앳되고 귀여운 아이들을 가까이 대하며 도움을 건네주는 기쁨도 쏠쏠했다. 다시 반으로 돌아가는 우리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돌아서는데, '이거 할 만 한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하여 작은아이가 새 학년으로 올라갔을 때는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해보고 싶었다. 시간도 맞아야 하고 내 역량과도 맞아야 하기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발 빠른 엄마들로 자리들이 거의 다 채워져 버렸다. 이대로 못하나 싶었는데, 선생님이 이메일로 뒤늦게 요청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뮤직 모니터'(Music Monitor)라는 역할인데, 음악 시간에 아이들을 인솔하여 강당으로 데리고 갔다가 다시 교실로 데리고 돌아오는 가이드 역할이자 음악 수업 동안 아이들이 떠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내 짧은 영어로 할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주저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자리마저 누가 먼저 가져갈까 싶어서 얼른 내가 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선생님도 얼른 고맙다며 수락하는 메일을 보내 주었다. 시간도 딱 좋아서 격주 화요일마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면 됐다. "린아야, 엄마 발런티어 하기로 했어! 음악 시간마다 엄마가 갈 거야." 아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이 맛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거지~


그때 우리 아이가 2학년. 마침 담임 선생님이 엄하기로 소문난 여자 선생님이었다. 공부를 잘 가르쳐 주기는 하나 아이들이 잘못하면 소리도 잘 지르고 부모들에게도 직설적으로 말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선생님과 마주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다소 두렵기도 했다. 첫 자원봉사 날, 학교 사무실에서 등록을 하고 명찰을 붙인 뒤 심호흡을 하고서 교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나를 '미스 P'(Park을 줄여서)라고 소개해 주면서 아이들과 인사를 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나를 향해 뭐라고 휘리릭 말했는데, 내가 정확히 알아듣지 못해 가만히 있자 어느 아이가 대신 불을 켜주는 것이 아닌가. 아마 나에게 불을 켜달라고 했나 보다. 이런... 얼굴이 좀 달아올랐다. 나중에 선생님이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너 영어 할 줄 아냐고. 이번엔 진짜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니, 나 그 정도는 아닌데! 속으로는 흥분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용히 말했다. 할 줄 안다, 하지만 유창하지 않다.. 첫날부터 내 자존심은 완전 구겨졌다. 어쩌겠는가, 앞으로 내 역할 잘해 내는 걸로 만회를 해야지. 


선생님이 먼저 뮤직 모니터 역할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시범을 보여 주었다. 음악 수업에 쓸 명찰을 나누어 주고 아이들을 인솔하여 강당에 데려간 뒤 남녀 순으로 섞어서 앉힌다. 음악 수업 동안 아이들 옆에 앉아 있다가 떠드는 아이가 보일 경우 불러내어 뒤에 따로 앉힌다. 한 마디로 못 떠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정렬하여 교실 앞으로 돌아간 후 아이들에게 굿바이 인사를 한 후 아이들 명찰을 다시 반납하면 내 임무는 끝. 


두 번째까지는 선생님이 직접 인솔해 준 뒤 그 다음부터는 내가 다 주관해서 인솔해 보았다. 처음엔 앉히는 것도 오래 걸리고, 아이들 조용히 시키며 줄 세우는 것도, 떠드는 아이들을 지적해서 경고 주는 것도 내 마음이 약해서 쉽지 않았지만, 점차 익숙해져 갔다. 수업 중에 애들을 못 떠들게 하는 게 주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고질적으로 떠드는 몇몇 남자아이들이 늘 나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다. 물론 여자아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중 내게 몇 번 지적받았던 어느 여자아이가 우리 아이한테 너네 엄마 눈을 보면 무섭다고 말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을 땐 마음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나도 애들 칭찬하고 격려하는 좋은 역할만 하고 싶다고! 못 떠들게 감시하고 벌주는 역할, 사실 썩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왕 맡은 것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감당하고 싶었다.


젊고 발랄하며 귀여운 음악 선생님은 가끔씩 내게 또 다른 미션을 주기도 했다. 수업 태도가 좋은 애들을 골라서 추천해 달라거나 손 든 아이들 중에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르라는 부탁 등이었다. 애들 감시하기도 바쁜데, 잘하는 애들까지 골라야 해서 눈동자를 마구 굴리며 진땀 흘린 적도 많았다. 사실 그 일은 아이들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일도 해서 한편으로는 기쁘고 재미있기도 했다.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나와 자꾸 눈을 마주치는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게 보이던지. 어느덧 아이들은 내가 편해졌는지 나한테 자기 짐이나 겉옷을 맡기거나 자기 명찰을 고쳐달라고 내밀기도 했다. 수업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자꾸 나한테 물어봐서 곤란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업하느라 바빠서 볼일이 급한 아이들 손에 응답하지 못하는 선생님을 위해 어느 날은 내가 아이들 대신 물어봐 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조용히 빨리 다녀오라고 손짓하기도 했다. 


처음엔 내 역할에 적응하면서 아이들을 지켜보느라 수업 내용엔 잘 집중할 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선생님 말이 더 귀에 들어오더니 어느덧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계속해서 불렀던 노래가 내 입에서도 흥얼흥얼 새어 나왔다. 아이가 집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를 나 또한 함께 흥얼거릴 수 있다는 것이 색다른 기쁨으로 다가왔다. 담임 선생님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있었다. 처음엔 그저 무섭고 엄하기만 한 선생님인 줄 알고 겁먹고 긴장했는데, 계속 대하면서 선생님의 활기차고 재미있으면서 세심한 모습도 많이 발견하였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했다. 같은 반에 다른 반 선생님 딸이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도 가차 없이 면박을 주는 모습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우리 아이도 선생님을 무서워하면서도 존경하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학년이 훌쩍 지나가 뮤직 모니터로서 내 역할도 마침내 끝나게 되었다. 아이들을 잘 인솔하고 감시해야 하는 역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름 즐기면서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스러웠다. 무엇보다 학급에 참여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된 것 같아서 감사했다. 선생님은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엄마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두 번에 걸쳐 예쁘게 포장한 향초와 작은 그릇, 사탕박스를 선물로 주었다. 그중에서도 선생님과 아이들 사인이 일일이 담긴 작은 카드가 특별히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매번 시간을 정하여 빠지지 않고 학급 일에 참여하는 것이 엄마들에겐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심을 하고서 차곡차곡 걸음을 내딛노라면 어느덧 흐뭇한 보람이 남게 된다. 아이가 일 년 동안 배우며 성장하는 사이, 엄마도 이 작은 봉사를 통해 조금 더 배우고 단련받은 느낌이다. 그래, 해보지 않았기에 어려워했던 일 하나를 해내면서 내 안에 그만큼 자신감도 더 자라났으리라. 괜히 작은 일도 겁먹게 되는 이민 생활엔 특히 더 용기가 많이 필요하니까. 내 영어도 그만큼 더 늘었을까? 글쎄, 그건… 영어를 조금 더 쓰고자 하는 용기만큼은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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