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침도의학회 #정침요법 #ICMART
오는 9월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ICMART 2024! 학술대회가 개최되기 전, ICMART 2024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력하시는 한의사 분들, 또 학술 연구 발표를 예정하고 계신 한의사분들의 특집 인터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그 다섯 번째 이야기는 대한침도의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계신 유명석 회장님입니다. 유명석 회장님께서는 정침요법을 정립하고 대한침도의학회를 창립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유명석 회장님의 이야기를 독수리가 전해드립니다!
[약력]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북경한장침도 의학연구배훈학교 침도의학종합반 수료
저장성 중의약대학 끈질 침배훈 과정 수료
남경연조직외과학제고반(고급반) 수료
연길 중의약대학 해부연수과정 수료 (2003부터 수 차례)
북경 한장 침도연구원 인증 針刀 傳家 칭호 획득
정침-연부조직침구학회 창립
前 대한침도학회 기획이사, 교육위원
現 대한침도의학회 회장
들어가며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대명한의원 원장이자 대한침도의학회 회장인 유명석이라고 합니다. 2010년부터 한의사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고, 2012년부터 학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공부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 모임을 기반으로 2016년에 대한연부조직한의학회를 만들었고, 2018년도에 대한한의학회의 정회원학회 인증을 받았습니다. 2022년에 지금의 대한침도의학회로 명칭을 바꾸어서 현재까지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Q. 요즘 회장님의 일과나 혹은 일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A. 정신없이 바쁘죠. 진료는 화수금토 4일 하고 있고, 예전에는 월요일에 대학교 강의를 나가기도 했어요. 지금은 강의를 안 나가서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주로 학회 업무나 강의 준비, 혹은 저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9시까지 야간 진료를 하고,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이런저런 약속이나 학회 업무를 하거나 회의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거의 일주일 내내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학부 및 진로
Q. 회장님께서 한의대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사실 내가 원래 대학 학번으로 하면 81학번이에요. 한의대는 96년도에 다시 들어가게 됐죠.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의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고3이었던 해의 8월에 대학 입시 제도가 대학별 본고사 시험에서 학력고사와 내신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내신은 거의 신경도 안 쓰고 국영수만 공부하던 시절이었는데, 갑자기 내신제로 바뀌면서 우리 학교가 엄청나게 손해를 보게 되었죠.
게다가 갑자기 내신제로 바뀌니까 학교 입학 기준이 없는 거예요. 이 점수가 어느 대학의 어느 과를 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가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다 보니까 진학이라는 잡지에서 배정표가 나왔는데, 그 배정표에 따라서 일렬로 세워서 입학을 시켰어요. 그래서 저는 81학번으로 전기전자과를 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저보다 점수가 훨씬 낮은 친구들도 의대를 갔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해서 공학 쪽에서 공부하고 다른 일도 하다가, 어떤 순간에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예전의 꿈을 다시 한번 가지고 시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나이가 많으니까 의대를 가기는 어렵고 한의대를 간다면 충분히 의학 분야에 종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한참 동의보감, 허준 등으로 한의대 바람이 불기도 했고요. 그때는 의대보다 한의대 점수가 더 높기도 했었습니다.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도 다들 전문직 쪽으로 가는 분위기가 있어서, 나도 다시 해보자는 생각을 해서 한의대를 다시 가게 됐죠.
Q. 회장님께서는 학부 때 어떤 학생이셨나요?
A. 나는 원래 고향이 전라도 쪽이니까 편한 데 가서 생활하자는 생각으로 원광대에 지원해서 합격했어요. 그런데 막상 학교로 들어가서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한의대가 아니더라고요. 여러분들도 다 경험하겠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의학인가?’ 같은 생각부터, ‘이걸 가지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같은 고민들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학교 정규 강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학점도 높은 편은 아니었죠. 오히려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러 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그래서 학교 수업에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 대신 나이가 있어서 졸업하면 바로 진료를 시작해야 하니까, 좀 더 실전적이고 실무적인 것을 배우고자 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가지고는 바로 진료를 하기에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찾아서 배우러 다녔죠. 그리고 본과 3학년 때부터는 거의 환자를 진료하다시피 했어요. 우연찮게 주변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약을 써주고 했었는데 효과가 있어서, 본과 3학년 때부터는 좀 바쁘게 생활했어요. 의료봉사를 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찾아오기도 하셔서 경험을 많이 쌓았죠.
Q. 회장님께서 학부생 때는 어떤 한의사가 되기를 꿈꾸셨나요? 그리고 현재의 모습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요?
A. 의사가 되고자 한 이유 중에는 사회적인 분위기나 예전에 가졌던 꿈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에 더해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타인을 위해 사회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직업적 활동 자체가 사회에 직접적으로 기여를 할 수 있고, 대중들의 삶과 행복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뛰어난 직업이 넓은 의미에서 의사가 아니겠냐는 생각을 해서 한의대를 지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들은 변함이 없고, 좋은 직업, 보람된 직업을 선택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술로 한 사람의 고통을 덜고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보람된 일이 없겠죠. 그런 한의사가 되고자 그때부터 노력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물질적인 욕구나 지식의 한계, 직업적인 제한 같은 것 때문에 이런 생각을 100% 실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그쪽 방향으로 가겠다는 지향점이 분명하게 있다면 나름대로 충분한 성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지금은 지난 20년간의 많은 임상 경험을 통해서 현대의학의 한계를 너무나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가 현대의학에 비해서 더 훌륭한 치료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고요. 이제는 한의학이 현대의학에 뒤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훌륭한 치료 기술을 어떻게 더 널리 전파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물질적이나 명예와 같은 것들이나 사회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것도 한의사로서 살아가는 한 방법일 수 있겠지만, 저는 한의사가 될 때부터 그런 것들은 내가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술로 한 사람의 고통을 덜고 생명을 살릴 수 있고 그것을 전체 인류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중국연수
Q. 회장님 약력을 보니까 중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 연수를 가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지금의 의정 갈등과 비슷한 한약 분쟁이 있었어요. 지금 의대생들이 하는 수업 거부처럼 한의대 학생들도 수업을 거부해서 학년 전체가 모두 1년 유급했죠. 그래서 제가 본과 3학년일 때는 한 학교에 본 3이 100명씩 2개 클래스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수가 모자라서 외부 임상가 들을 일시적으로 강사로 초빙을 많이 했죠. 그분들 중에서 한 선생님이 방제 강의를 하러 오셨는데, 상당히 실전적인 강의를 많이 해주셨어요. 보중익기탕을 쓴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한테 써야 하는지, 어떤 사람한테는 쓰면 안 되는지, 이런 것들을 강의하셔서 저분한테 가서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저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나이 많은 사람들 몇 명이서 그 선생님께 찾아가서 방제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러니까 그 선생님이 ‘방제는 나중에 시간 되는대로 가르쳐 줄 테니까, 이거나 한번 배워봐!’ 하면서 내어 주신 게 <소침도요법>이라는 중국 책이었어요. 주한장 선생이 처음으로 쓴 책이었는데, 그 책을 주시면서 공부를 해보라고 하신 거지요. 읽어보니까 상당히 센세이셔널했어요.
기존에 학교에서 배운 침구학은 기본적으로 경혈이나 경락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여기에 놓으면 다 낫는다는 식이죠. 그렇지만 실제로 해보면 항상 효과가 잘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혈자리 주치만 생각해 봐도 합곡혈의 주치를 살펴보면 사실 안 낫는 병이 없잖아요? (웃음) 그래서 상당히 어려웠었는데, 저 책은 중국 주한장 선생이 완전히 해부생리학에 근거해서 인체 근골격계 질환을 침도를 사용하여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설명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론이 정연하고 실질적이었어요, 그래서 이거는 배워야 하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때 연변에 강철수 선생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이분이 중국 의사 출신이십니다. 중국은 중의사와 의사의 경계가 우리처럼 완전히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중의사도 100개의 양약을 쓸 수 있고 의사도 일정 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침을 쓸 수 있어요. 그래서 그분이 퇴직할 때가 되면서 침도요법을 배우워서 연변에서 침도 치료를 하고 계셨었어요. 그분과 연계가 되어서 그분을 통해 연변에 침도를 배우러 갔습니다. 그런데 침도를 배우려니까 우리가 해부학적인 내용들을 거의 모르는 상태여서, 해부부터 다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강철수 선생님께 해마다 일주일 정도씩 가서 연수를 받았고, 그다음에는 베이징의 한 장침도학원에도 연수가고요. 중국의 유명한 침도 의사들을 찾아서 상하이, 광둥, 선양 등등 많이 찾아다니며 연수를 받았어요.
우리에게 침도의학을 소개해주신 선생님도 강철수 선생님을 통해서 배우셨지만, 당시에는 침도를 제대로 쓰지는 않고 사이즈가 굵은 침을 직접 주문 제작하여 치료를 하고 계셨죠. 그래서 침도를 제대로 배워보기 위해서 중국 연수를 많이 갔습니다. 나중에는 같이 공부하는 학회 회원들이나 한의사들, 학생들을 데리고 같이 연수를 갔고요.
Q. 어떤 방법으로 중국으로 연수를 가셨나요?
A. 강철수 선생님이 연변의과대학 부총장 출신이에요. 그래서 그분이 다 섭외를 해 주시고 본인이 와서 강의해주기도 하셨어요. 한 장침도학원 같은 곳은 연수 프로그램이 있어서 거기에 참가했고요. 상하이나 선양, 광둥 같은 곳은 직접 찾아갔습니다. 한국에서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거나, 아니면 책을 갖고 가서 ‘이런 책을 쓰셨다던데, 이 책을 보고 직접 배우러 왔습니다.’ 하고 찾아가고는 했어요. 이런 분들 모두 특정 분야에서 어느 정도이상의 성과를 이루신 분들이라 한국에서 찾아왔다고 하면, 흔쾌히 맞아주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치료 이론과 술기를 최대한 가르쳐주려고 해 줘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요.
Q. 보통 한의대를 졸업한 후 부원장이나 수련으로 바쁠 텐데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연수를 가셨나요?
A. 연수는 주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 갔어요. 저 같은 경우는 나이가 있어서 졸업하고 부원장 취직을 했는데 3일 있다가 쫓겨났죠. (웃음) 너무 나이가 많으니까 대표원장님보다 내가 더 원장님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그래서 대표원장님이 부담스러워해서 그만두게 되었고, 그리고는 내가 어디 한의원에 가도 마찬가지겠다 싶어서 바로 개원을 했습니다. 개원 이후에는 주고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 연수를 갔었습니다.
Q. 중국에서 연수를 받으시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경험이 궁금합니다.
A. 보통 한의사가 침 치료를 한다고 하면 혈자리의 배 오를 어떻게 할 것인지, 혹은 특정 경혈에 침을 놓고서 어떻게 기를 조절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배웠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충격을 받았던 건 것은 중국에서 침치료를 할 때는 이런 것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중국의 일반 중의원에 가면 혈자리 배오 같은 개념이 거의 없어요. 거의 다 아시혈을 사용합니다. 물론 삼음교 같은 경혈에 자침 하기도 하지만 경혈의 성격을 따지는 것이 거의 없어요. 예를 들어 족삼리가 소화기에 좋으니 족삼리에 자침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근골격계 질환 같은 경우에는 거의 다 아시혈을 중심으로 치료합니다. 그걸 보고 나서 학교에서 배웠던 침구학의 기본 개념이 깨진 거죠. ‘이렇게 침을 놓을 수도 있구나’ 하고요.
심지어 침을 50개, 60개도 놓는 경우도 있었고, 은질침이라고 두께가 1.5~3mm 정도 되고 길이가 315Cm~30cm에 이르는 침을 사용하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침에 대한 인식이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사암침에서 정형수경합이나 목화토금수를 따지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침 치료를 제법 많이 했는데, 사실 뚜렷한 효과를 본 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약간 회의감을 갖고 반신반의하던 상태였는데, 중국에 가서 보니까 그런 것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치료를 하고, 치료를 잘하기도 하고요. 대단히 엄중한 질환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치료하는 것을 보면서 침에 대한 인식 자체가 깨져버렸어요. 지금은 침도의학이 보편화되고 한의계에도 많이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달랐어요. 우리가 침도를 배우러 간다니까 어떤 교수님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위험한 것 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침에 대한 학문의 시야가 너무 좁아요. 조선시대로만 가더라도 구침이 라거나, 64 침이라거나, 아니면 삼릉침, 길이가 30~40cm 되는 망침, 피침과 같은 다양한 침이 있었어요. 우리의 선배 한의사들은 비록 지금처럼 명확한 해부학적인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다양한 침을 가지고 종기를 째기도 하고, 근골격계 질환들이 있으면 관절에 찌르기도 하면서 치료를 했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현대 한의대에서 가르치는 것은 호침의 치료법뿐이지요. 다양한 침치료의 역사적 전통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끊어지고, 호침 하나만을 유일한 침치료 도구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에요. 우리가 한의대 과정에서 배우고 있는 침구학이 너무 제한되어 있고 너무 좁아져 있습니다. 선배 한의사들이 고대시대부터 수천 년 동안 써왔던 침구학은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양방에서 수술하는 것과 같은 시술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러한 역사적 전통이 일제의 한의학 말살 정책으로 다 끊어진 상태에서 남아있는 게 호침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래서 마치 호침이 침구학의 전체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고요. 중국에 가서 그런 시선이 많이 깨졌어요.
중국 연수를 통해서 우리가 침 치료를 하는데 더 강하고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들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런 것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해부학 공부를 다시 엄청나게 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한의대에서 해부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짧은 기간에 인체를 한번 열어보고 이게 어떤 신경인지, 혈관인지, 근육인지 구별하는 정도로만 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통 명사의 ‘의사’로서 역할을 하려면, 인체에 대해서 정말 잘 알아야 해요. 침이 들어가는 깊이와 방향을 따져서 내가 어떤 구조물을 만나게 되는지, 그 구조물을 만났을 때 침이 어떤 작용을 하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아주 정밀하게 알고서 치료해야 합니다. 기라는 개념에만 가로막혀 있다 보니까 내가 찌를 때 얼마나 깊게 찔러야 되고, 침이 들어가서 어떤 구조물을 만나게 되고 어떤 작용을 하게 될지는 전혀 모르면서 침치료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생기는 문제인데, 이러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까 치료 기술이 발달이 안 돼요. 항상 답보 상태에서, 사암침이 유행했다가 사라지고, 동씨침이 유행했다 사그라들고를 반복하는 상황밖에 안 되는 거죠. 중국에 연수를 많이 다니게 된 이유가, 중국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열려 있기 때문이에요. 중의사가 침도 치료 말고도, 더 강력한 침이나 아주 특이한 치료 도구들도 사용해서 치료를 하거든요. 물론 중의사들이 리도카인을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침이라고 하는 도구가 굉장히 다양한 질환에, 무궁무진한 치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새롭게 인식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침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에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Q. 그렇다면 중국에서의 침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은 다양한 침을 치료에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다양한 형태의 도구를 침구 치료에 활용하고 있는 것도 있고, 중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침치료 이론의 영향도 큰 것 같아요. 중의사 중 상당수가 우리가 가진 경락, 경혈학적 개념뿐 아니라 해부생리학적인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근육, 신경, 혈관의 문제를 찾아 공부하고 치료에 활용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치료 효과가 굉장히 좋아지는 것 같아요.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치료 도구들을 침도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모아, 중국 전통 의학의 대표적인 치료법으로 내세워 세계적으로 전파하려 노력하고 있거든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면 기존의 호침으로는 치료할 수 없던 범위까지 치료할 수 있고, 어떤 부분에서 있어서는 서양의학보다도 훨씬 뛰어난 치료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어요.
정침요법
Q. 회장님께서는 중국 연수 경험과 독자적인 공부를 바탕으로 정침 침구 요법을 정립하신 걸로 압니다. 정침요법을 탄생시키신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A. 중국에서 연수하며, 경락경혈학적 관점이 아니라 해부생리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침 치료를 했을 때 더 훌륭한 치료 효과를 발휘하고, 더 광범위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해부생리학적 관점에서 침 치료법을 임상에 적용하게 되었고, 이를 정리하여 정침요법이란 이름으로 정리하며 강의를 시작했죠. 2010년부터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진료와 학회 일로 너무 일이 많아 2019년 10기까지 강의한 뒤로는 중단되어 있는 상태예요. 침도요법이 아닌 정침요법이라고 별도의 이름을 붙였던 것은, 이론의 바탕은 침도요법이지만 침도가 아닌 다양한 치료 도구들을 모두 포괄하고, 기존 침도요법 이론으로 부족한 부분을 추가로 정립하여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호침을 이용하더라도 해부생리학적 관점에서 치료하면 더 효과가 좋다고 본 것이죠.
Q. 정침 침구 요법은 무엇이며, 기존의 침술과 다른 점이나 특장점은 무엇인가요?
A. 우선 기본적인 치료 이론 자체가 다른 면이 있어요. 기존 경락경혈학적인 관점에서는 침의 치료 기전을 기의 조절로 설명해요. 그렇다 보니 경락이 중요해지는 거죠. 경락은 단순히 인체의 특정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락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연결되는 장부까지를 포괄하여 설명하는 것이지요. 특정 장부나 경락의 노선에 있는 특정 구조물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락에 있는 특정 혈위에 침을 놓으면 그 자극이 장부나 다른 조직에 영향을 미쳐 치료가 된다, 즉 경락과 장부의 기를 조절하여 치료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침 요법에서는 질환을 해부생리학적으로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어떤 근육이나 인대, 조직, 장부에 문제가 있는지 분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직이나 신경을 자극할지 선택해서 그것을 타깃으로 직접적으로 치료하는 것이죠. 근육학, 조직학, 생리학, 신경생리학, 신경해부학, 신경외과학적 관점을 총망라해서 문제점을 찾아 진단하고, 그 진단에 따라 어떤 조직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확인하여 그에 맞는 치료점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게, 그렇게 치료점들을 찾다 보면 대부분은 결국 우리가 경혈이라고 하는 지점들과 거의 유사해져요. 그래서, 결국 경혈이라는 것은 옛 선배들이 수천 년 동안 사람을 만지고, 누르고, 침을 놓아 보는 경험을 통해 ‘이 질환에는 이 혈자리에 침을 놓는 게 효과가 있더라’라고 정리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지요. 다만, 현대처럼 해부생리학적 지식이 발전되지 않은 상태여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그 기전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보니 기를 조절한다는 식으로 당시의 과학적 수준에 근거해 설명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아직까지도 일반 한의학자들이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인 거죠. 앞서 말했듯이, 치료점들을 우리가 쭉 찾아보면 결국 예전에 선배들이 경혈점이라고 해놨던 혈자리들이 대부분 치료점이 돼요.
우리 학회 저널을 보면 혈자리를 해부생리학적으로 하나하나 새롭게 분석하는 작업들이 실려 있어요. 족삼리를 찔렀을 때 어떤 구조물을 찌르게 되고 어떤 신경과 혈관을 건드리게 되는지, 그 자극은 어디로 전파되어 어떤 효과로 이어지는지 등을 정리하고 있죠. 이렇게 기존 혈자리와 침치료 이론을 재해석하는 것이 침구치료 이론을 새롭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정침요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신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A. 우리 한의원에는 대부분 난치 질환 환자들이 오는데, 양방병원에서 치료를 못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중증 환자들도 많이 와요. 또 디스크나 척수증, 척추관협착증처럼 양방에서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고 진단해서 수술 날짜를 잡아두고 오는 환자들도 대다수죠. 다들 올 때는 “치료하면 나아요?” 하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오지만, 한두 달 치료하고 나아서 돌아갈 때는 다들 감사하다고 감사 인사를 적어두고 가죠.
우리 한의원의 경우 디스크나 협착증 같은 근골격계 환자들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경우이고 어렵지 않게 치료하는 수준에 있어요. 다른 질환들로는, 자식들도 전혀 못 알아보고 대화가 안 되던 치매 환자가 좋아져서 아들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거나, 말을 하려 하면 혀가 마비되며 밖으로 튀어나오는 농설(弄舌) 환자가 치료되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된 경우도 있고, 또 눈동자의 움직임이 마비된 환자나 30~40년 된 안면마비 환자를 치료한 경우 등도 기억에 남지요.
30대 중반의 남성 환자와 같은 경우, 3층 높이에서 일하다 떨어져서 척추가 골절된 환자가 있었어요. 수술은 해서 뼈를 접합하기는 했지만 통증 때문에 거의 일상생활을 못한 채 피폐한 상태로 계속 누워서 지내고, 진통제와 술로 통증을 잊으며 살아오던 분이었죠. 그런데 침도 치료로 완치돼서 사회에 복귀하게 되고, 몇 년 전에는 냉장고를 메고 다닐 정도로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런 환자들이 대부분이에요.
이런 걸 보면 정확하게 진단하고 침을 정확하게 사용해서 치료한다면, 침치료가 서양의학적 치료보다 훨씬 더 뛰어난 치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직 학생 신분이라 임상을 해보지 않아서 실제적으로 느껴지지 않겠지만, 이러한 일들은 사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우선 사회적으로 볼 때 굉장히 적은 비용으로 사람들을 생활할 수 있게 하고 노동력을 재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죠. 시설적인 측면에서도 양방에서 수술하려면 MRI를 비롯한 진단 기기를 갖춰야 하고 수술을 위한 수술방과 다양한 시설을 작춰야 하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에 있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침 하나만으로 치료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또 개인의 삶을 회복시켜 준다는 관점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인체에 수술자국이나 흉터 같은 위해를 거의 남기지 않으며, 강력하지만 인체에 부작용이 따르는 화학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서도 그런 질환들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뛰어난 거죠.
침치료가 비주류 보완 의학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의 주류 의학보다 사회경제적으로 훨씬 더 좋은 치료라는 것은 인류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이러한 것들이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고 보편화되지 않아 사회적으로 제도화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치료의 기술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기존 의학보다 훨씬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해외에서 도침시술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A. 외국인들은 굉장히 좋아해요. 한국의 경우 의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아프면 쉽게 병원에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국가만 해도 병원에 한 번 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예약하려면 3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병원비도 엄청나게 들죠. 그러하다 보니 중증 질환을 제외한 일반적인 질환이나 통증 질환의 경우 해결 방법이 거의 없어요. 서양의학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진통제를 투여하거나 진통 주사를 놔준다거나 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오피오이드 과다 사용으로 마약성 약재들이 확산되게 되고 사회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인체 몇 군데에 침을 놓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질환과 증상이 크게 개선되는 걸 보여주면 서양의사들이나 환자들은 엄청 신기해하고 좋아하지요.
대한침도의학회 (대한연부조직한의학회)
Q. 대한침도의학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침도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학회이고, 대한연부조직한의학회로 활동해 오다가 2022년에 대한침도의학회로 명칭을 개정해 활동하고 있어요. 현재 활동 회원은 300명 정도 돼요. 우선 한의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학회원들을 대상으로 학술대회도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 6월에는 ‘제1회 국제침도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죠. 앞서 말한 해외 강의도 해오고 있어서 미국, 캐나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과도 교류하고 있어요.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교포를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했는데, 그곳에서도 자체적으로 학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어요. 또 연구 사업도 하고 있는데, 연 2회 저널을 출판하고 있어요. 45개의 대한한의학회 회원학회 중 KCI에 등재된 학회의 저널은 몇 개 안 되는데, ‘대한침도의학회지’는 작년에 KCI 후보지로 등재되었지요.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신생학회이지만 KCI 후보지로 등재되었고 아마 내후년이면 정식 KCI 등재지가 될 걸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Q. 대한침도의학회를 만드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학회를 만들겠다고 하니 다들 반대했어요. 심지어 아는 양방 의사분의 경우 학회 만들려면 돈도 많이 들고, 몸도 상하고 노력도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굳이 뭐 하려 하느냐고 하기도 했어요. 또 같이 공부하는 한의사 선생님들도 우리끼리 공부하고 치료 잘하면 되지, 굳이 학회를 만들 필요가 있냐고 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제가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제가 볼 수 있는 환자 수는 정해져 있어요. 제가 9시 반에 출근해서 8시까지 쉬지 않고 치료해도 환자를 60~80명밖에 못 보거든요. 그렇다면 제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보편화하지 않는다면 일반 대중들은 전혀 혜택을 볼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선 그런 생각에서 학회를 만들어 우리 치료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고, 확산시켜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다른 이유로는, 주변에 유명한 한의사분들이 있잖아요? 어느 한의원에 가면 애를 잘 낳게 해 준다더라, 하는 식으로 널리 유명한 한의사분들이 있어요. 그 한의사분이 어느 계기로 유명해졌든지 간에 그 한의사는 유명해져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겠지만, 그분의 치료 이론이 확산되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그 효과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한의학의 위상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건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임상에 나가서도 꼭 가지셔야 할 자세인데, 누군가가 아무리 돈을 잘 벌다고 하더라도, 혹은 아무리 치료 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이 뛰어난 것으로는 한의학의 전반적인 위상이 올라가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다리나 허리가 삐끗해서 우리 한의원에 와서 두세 번 침치료를 받고 다 나았던 환자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다른 한의원에서 두세 주 동안 치료받아도 아무 소용없다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그곳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효과가 없어 우리 한의원으로 다시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어떤 한의사 한 명이 아무리 치료를 잘한다 하더라도 한의학과 한의계의 전반적인 위상이 올라가지 않고, 한의학의 파이가 커지지는 않아요. 그렇다 보니 어떤 한의사가 아무리 치료를 잘하더라도 그 사람의 수준에서 끝나버리고,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그냥 묻혀버리고 말게 되지요. 그런데 한의학을 발전시키고, 한의계 파이를 키우려면 허리가 삐거나 무릎을 다쳤을 때 정형외과를 가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의원을 먼저 찾게끔 만들어야 해요. 또 어느 한의원에 가더라도 이런 질환은 침 맞으면 낫는다라는 인식이 국민 전반에 확산되어어 있어야, 사람들이 다쳤을 때 정형외과가 아니라 한의원에 먼저 침 맞으러 오지 않겠어요? 이렇게 해야 한의계의 파이가 커지고 주류 의학으로서 자기 영역을 확고하게 가질 수 있는 거죠. 저 혼자 아무리 치료를 잘해준다 하더라도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는 있어도 한의학이 전체적으로 발전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아까 말한 것처럼 이 치료법을 한의계 전반에 확산시키고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싶어요. 의료시설이 없는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도 침통 하나만 가져가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잖아요. 침 하나로 체한 사람의 체증을 금방 풀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획기적인 무기들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다면 개인 영달의 문제가 아니라 한의학 전체가 발전하는 길이고 한의학 영역이 확장되어 주류의학의 한 영역으로 확고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려면 혼자서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학회를 만들고 운영해 오게 된 거죠.
Q. 대한침도의학회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A. 창립총회를 했던 것도 기억에 남고, 연구를 진행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아마 한의계에서 처음일 거 같은데, 학회 차원에서 다수의 임상 한의사들이 참여하여 작성한 논문이 SCI(E)급 저널에 게재되었거든요. 대부분의 한의학 논문들은 교수님들이 중심이 되어 몇몇 수련의들이나 대학원생들과 함께 논문을 써서 발표하는 형식인데, 그렇다 보니 많은 한의계 논문들이 임상과 굉장히 떨어져 있고, 실제적으로 한의학의 근거로서 기능하는 논문들이 많지 않아요. 수없이 많은 한의학 논문이 나와 있지만 정작 어떤 질환에 대해 그 질환의 치료 효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객관적인 논문들은 그다지 많지 않거든요. 질환이나 치료의 한의학적 기전을 밝히거나, 대규모 연구를 통해 한의학적 치료의 효과성을 입증하는 연구들이 거의 없어요. 실제적인 임상에서의 효율성이나 효과성을 입증하는 논문들이 거의 없고, 증례 보고, 문헌 고찰, 문헌 연구 논문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늘 한의학의 과학화, 객관화 이야기를 하지만 서양의학 의사들에게 인정을 받기가 어려운 현실이지요.
그래서 학회 소속 25개 한의원의 한의사들이 모여 약 3천 케이스를 바탕으로 오십견 치료를 대상으로 한 침도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논문을 쓴 적이 있어요. 논문이 게재되었을 때 몇몇 사람은 굉장히 좋은 논문이라고, 한의계 논문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셨지만,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어서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임상의들이 중심이 되어 임상 치료 술기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대규모로 입증하는 논문을 썼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많이 인용되고 있어요.
또 다른 일로는 지난 6월에 ‘제1회 국제침도학술대회’를 개최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대한한의사협회나 대한한의학회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는 하지만 단일학회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더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단일학회 차원에서 5개국에서 해외 연사를 초청하고 대규모로 학술대회를 진행했죠. 한의계 내지는 한의학회에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나가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Q. 한의원과 학회장 활동까지 하시려면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 것 같은데,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A. 제가 정지하거나 머물러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천성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발전하려 노력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요. 저 개인의 차원에서는 그런 천성의 영향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침이나 약 같은 한의학적 치료 방법들이 굉장히 뛰어난 치료 효과와 경제적 효율성을 갖고 있음에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현재 상황의 영향도 큰 것 같아요. 이런 잠재력이 널리 알려진다면 우리나라 국민들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건강에 정말 좋은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이를 더 확산시키고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큰 원동력이 되는 거죠.
ICMART 2024
Q. ICMART 2024에서 하게 될 강연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이번에 우리 학회에서는 네 가지 세션을 진행합니다.
우선 Acupotomy(침도) 세션에서 “어깨 통증에 대한 침도 치료의 효율성과 안전성”과 “경도인지장애에 대한 침도치료를 중심으로 한 한의복합치료 연구“를 발표하고,
라이브 세션에서는 “초음파 유도하 경추 침도 치료 프로토콜”과 “두통 치료 증례 70건을 바탕으로 침도의 두통 치료 효과”를 발표하고 직접 시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이번 ICMART 행사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참여하는 침구 치료 의사와 한의사, 그리고 연구자들 앞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치료 기술을 선보이게 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ICMART 2024 세션일정
13:00 - 14:30 Acupotomy (Session 4-5)
13:00 - 14:30 K-Medicine Live (Session 2-5)
14:50 – 16:20 K-Medicine Live (Session 2-6)
Q. 한국의 침구치료법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갖는 특장점/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일단 중국과 비교해 보자면, 우리는 한의학적 이론에서도, 실전에서도 굉장히 정밀합니다. 중국에 가서 정형수경합이나 혈자리의 성질을 말하면 엄청 놀라거든요. 실전적인 부분에서도, 중국의 침도요법은 리도카인 등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다소 파괴적이고, 정밀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중국은 거의 병원 안에 침구과, 침도과가 따로 있어서 그런 시설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응급조치 같은 걸 할 수 있죠. 반면에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만큼 정밀하게 발달돼 있고 구체화돼 있죠.
Q. ICMART 2024에서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A. 첫 번째로는, 해외 침구학의 흐름, 해외 침구학의 연구동향 등을 파악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나 중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 미국들도 본인들의 의료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동양의학, 그중에서도 침구학에 대해 굉장히 많은 연구를 하고 관심을 많이 갖고 있거든요. 이런 경향이 계속 이어지면 10년 20년 뒤에는 의사들이 한의학의 영역으로 넘어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의학의 영역을 해부생리학까지 확대시킬 필요가 있기도 하고요. 이번 ICMART를 통해서 그런 동향들, 세계적인 연구의 흐름들을 파악하는 데도 많이 도움이 될 겁니다.
두 번째로는, 인맥이에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고 상호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죠.
Q. ICMART 2024에 참가하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으신가요?
A. 침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침을 어떻게 연구를 하고 있고 실제 진료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배우는 데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것들을 알고, 안목을 길러놔야 내가 어떤 방향으로 진출을 하거나 연구를 해볼 수 있겠다는 목표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한의계에 굉장히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있는데, 그 인재들이 장기적인 비전, 계획들을 제시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환자들 보는 걸로 국한되고 있어요. ICMART를 통해 자신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후배들이나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매번 ‘해외에 나가라’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전제 조건이 있어요. 우리 것을 배워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기존의 학교에서 하는 것들만 갖고 해외에 나가면 다 실패하거든요. 우리나라는 그래도 한의사나 한의학적 치료에 대해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만, 외국은 백지상태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침치료를 받냐 주사 치료를 받냐 이런 것에 대한 선입견이 없고, 그저 치료를 잘해주면 가는 거예요. 한 번 치료받는데 40,50,100불 이렇게 내고 침 맞았는데 효과가 없으면 안 가거든요. 그래서 외국에 진출을 많이 하시는 건 좋은데, 자신의 무기를 확실히 가지고 가야 해요. 그러면 정말 엄청난 시장이고, 어마어마한 발전 기회를 가질 수 있어요.
대만도 공통 질문
Q. 인생의 그래프를 그렸을 때 가장 뿌듯했던 순간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였고, 그때의 극복방법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가장 뿌듯했던 건 한의원을 개원했던 것, 그리고 학회를 만들어서 정회원학회로 인정받았을 때예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학회를 운영하다 보면 사람들끼리 의견이 충돌되고, 갈라지기도 하고 그런 상황들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네요.
그런 문제 상황이 닥쳤을 때 극복 방법이라고 한다면, 일단 인정하는 태도라고 봐요. 내가 가지고 있는 현실, 내가 처하고 있는 현실이 어떠한가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고 인정하는 거죠. 그게 인정이 안 되면 굉장히 어려워요. 학회 운영을 하다 어떤 사람이 비난을 한다던가 내가 생각했던 거와 다르게 일이 벌어진다던가 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상황, 그리고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해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생각을 해야지, ‘학회 회원인데 왜 말을 안 따라?’ 하는 순간 같이 갈 수가 없게 되거든요.
내가 처해진 상황에서 어떤 게 잘 되고 있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안 되는 상황에서는 그걸 인정하고 확인하는 순간 극복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봐요. 그래서 일단 처해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게 되면 거기서부터 해답은 금방 나올 수 있는 거니까요.
Q.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시야를 넓게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생들이 역량이 굉장히 뛰어난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어요.
또, 해외에 진출하거나 학술대회에 참가할 때 언어적인 한계가 굉장히 장애가 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없어요. 그래서 일단 시야를 넓게 갖고 언어공부도 다양하게 했으면 좋겠고요.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질환에 대해 공부를 할 때,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이 아닌 스스로 정리해 두는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에 임상에 나와있는 우리 학회, 한의사 선생님들 보면 학생들이 너무 공부를 안 한다고 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좀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공부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좀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장단기 목표가 궁금한데요, 앞으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A. 이건 개인적인 목표는 아닌데, 한의학이 변혁적으로, 새롭게 업그레이드를 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기존의 경혈이나 경락학적인 개념들, 음양오행뿐만 아니라 해부생리학적인 개념까지도 포괄하는 의학으로 변화되어야 된다고 생각돼요. 그래야만 한의학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되고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런 데 기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 의학이 아마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굉장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치료들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겠죠.
의술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고 하는 서양도 일반 대중들의 삶에 들어가서 보면, 통증 케어나 치료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소염진통제를 먹게 되고, 마약에 손대게 되고 이런 현상도 생기게 돼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이런 노력들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싶네요.
단기적으로는 일단 우리 학회의 학술지가 SCI나 KCI급으로 올라가게 만드는 게 목표고, 그다음에 장기적으로는 침도의학이 한의학의 하나의 파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인정할 수 있게끔 제도화하는 것이 목표예요. 더불어 미국이나 캐나다나 유럽의 의사들하고 교류를 통해 어떤 기구나 역할을 만들어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의학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회장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정말 뜻깊었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저희가 어떤 방향으로 공부하고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 내어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신 회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Interviewer. 독수리, 유니콘, 낙타
Editor. 독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