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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Jan 12. 2022

한의사 출신 국회사무관, 정재호 사무관님

#국회사무관 #입법조사관 #입법고시 #한의사

 


2022년 대만드의 첫 공식 인터뷰를 하러 모인 곳은 바로 국회의사당입니다! 국회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시는 정재호 사무관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그 어렵다는 입법고시에 합격한 사무관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국회 국방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재호 사무관입니다. 상지대 한의대 10학번이고 전남에서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대구에서 요양병원 야간 당직의로 일하다가, 2021년 입법고시에 합격해 지금은 국회에서 신입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현재는 근무하면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병행 중이에요. 어떤 방향으로 인터뷰에 응할까 하다가 딱딱한걸 별로 안 좋아해서 조금은 재미있고 솔직하게 해보고자 해요.     


정재호 사무관님 반갑습니다 :)


Q. 요즘 하루 일과일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상임위원회(국방위)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 일정이 예상되지는 않는 편이에요. 의원님들이 상임위 회의 일정을 잡으시면 거기에 따른 검토 자료를 만드는 거라 스케줄이 일정하지 않아요. 지금은 여유가 있는 편인데 11월이 정신없이 바빴어요. 국회 상임위원회는 국회 본 회의나 11월 예산 시즌에 정말 바빠요. 당시 신입사원이던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벽에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고 정신이 없었어요. 지금은 10월에 있었던 국정감사에 대한 결과보고서를 쓰고 있어요. 

업무 외적으로는 시간이 남는 걸 못 참는 성격이라 새벽에는 골프레슨, 저녁에는 테니스 레슨을 받고 집에 와서는 간단한 맨몸 운동 등을 하며 지냅니다. 12월까지는 대학원 수업도 있어서 과부하가 걸렸었어요. 지금은 대학원 방학해서 너무 좋네요.(웃음)     


Q. 한의대에 진학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정말 솔직히 말하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경제적인 측면이 좋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진학했어요.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로 대학 진학에서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20살에 깨달은 것이 세상에 믿을 건 저 밖에 없고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된다는 것이었죠. 당시에도 행정고시에 관심이 많았는데 고시낭인이 되는 것은 두려웠어요.

당시 문과생으로 재수가 끝나고 정시 원서접수 시즌이었는데 의대 다니던 친구가 문과 교차로 한의대에 갈 수 있다고 추천해줬어요. 친구 말을 듣고 알아보니 한의사가 고소득에 안정적인 전문직이라는 메리트가 너무 매력적이었요. 대학교 6년을 모두 학자금 대출로 다니면 빚이 상당히 생기겠지만 졸업 후 ‘상환능력’이 너무 좋았죠. 계획을 세운 게 일단 한의대에 가서 한의사 면허를 받고 모든 대출을 갚을 때까지 일하자.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고, 실패하면 한의사로 돌아오자 였어요.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Q. 학부 시절 선생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과 생활에 충실했어요. 두 가지 루트를 세워서 과외 같은 알바를 많이 하면서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갈지, 아니면 한 번뿐인 대학생활 후회하지 않게 재밌게 보내고 대출은 미래의 한의사가 된 나에게 맡길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어요. 대학교에 오니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친해지면서 같이 무언갈 하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학생 때부터 고시 공부했으면 어떨까 싶긴 하지만 그러면 후회했을 거예요. 과에서 단체생활을 하고 리더 역할도 하면서 배운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단대 학생회, 예과 학생회, 과대표, 클래식 기타 동아리 회장, 야구동아리 회장, 축구동아리 등등을 했어요. 얼마나 과생활말고 할 게 없었으면 이렇게 많이 했나 싶기도 해요.(웃음) 재밌었어요. 선배들이 나오라고 하면 아무 말없이 나오고 술도 잘 못 마시는데 억지로 자리 남다가 쓰러지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학교 공부는 중간에서 중하 정도였어요. 가끔씩 교수님들한테 엉뚱한 질문을 하는 학생이 저였어요.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공부든 운동이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시험기간엔 열심히 했죠. ESTJ라 원칙과 정의를 중요시하고,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총대 매고 말한 적도 많았던 것 같아요. 스스로 매우 날카로운 사람이라 남들 상처도 많이 줬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학교 사람들은 제가 둥글둥글하고 이미지 관리를 많이 해서 적이 없는 스타일이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웠어요.  

        

Q. 입법고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입법고시 시험 일정이 통상 행정고시보다 한 달 정도 앞서는데, 동일한 과목, 시험 방식 등이 같다 보니 행정고시 수험생들 다수가 입법고시도 지원하게 돼요. 원래는 행정고시를 보고 보건복지부에서 일하고 싶어서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국회에서 일하게 되다니 한의대생의 나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에요.

4가지가 있었어요. 첫째,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사익뿐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싶다. 대한민국을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둘째, 조직생활에 모든 걸 바치고 싶다. 과생활 하는 게 즐거웠고 조직생활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거대한 핵심 조직에 제 모든 걸 쏟는 워커홀릭이 되고 싶었고 조직으로부터 인정받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어요.

셋째, 세상 돌아가는 일을 최전선에서 느끼고 싶었어요.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적, 정책적 결정은 행정부처나 국회에서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사회에 파급되어갑니다. 다이나믹하고 가장 최신의 정보를 접하며 살고 싶었어요.

넷째, 20대 때 어딘가에 올인해보고 싶었어요. 4,50대가 되어서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어느 하나에 올인해 본 적이 없었구나’ 하면 굉장히 실망스럽고 후회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 일을 찾던 중에 고시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 중 하나니까, 여기에 한번 쏟아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했어요. 설령 실패해도 한의사라는 정말 좋은 직업이 있다는 것에 리스크가 적었어요. 아마 가장 리스크가 적은 대한민국 고시생 중 하나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멋진 야경의 국회의사당 모습입니다.


Q. 국회에서 입법조사관으로서 어떤 일을 담당하시나요?

연수가 끝나고 입직한 지 이제 3개월 차라 말을 조심하게 되는 부분 양해 부탁해요. 한의대 예 1이 한의대 공부를 다 설명할 순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입법고시 출신 공무원의 업무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볼게요. 국회 입법고시 합격자들은 5급 사무관으로 시작을 해요. 크게 2가지 루트가 있는데, 일반적인 국회 자체 운영, 본회의 운영지원 등을 위한 라인 조직 (의사과 기획조정실 인사과 국제국 등)과 소관 법률안과 예산·결산 심사 업무를 지원하는 상임위원회(법사위 기재위 예결위 등등)로 나뉘어요. 2~3년 주기로 순환보직을 하면서 30년 정도를 근무하는데 입법고시로 국회 입직한 공무원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장점이 있어요. 30년 세월 안에 의료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관을 담당할지도 모릅니다. 

상임위원회 입법조사관(3~5급) 일은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위원회 업무를 지원하면서 입법부로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으로 의원실 보좌관과는 다릅니다. 법률안 및 예산·결산 검토 지원과 상임위원회 운영 지원이 상임위원회 입법조사관이 하는 일이에요. 먼저 법률안 및 예산·결산 검토 지원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모든 법률안 및 각 부처의 예산·결산은 국회상임위원회를 거치게 돼요. 상임위원회 소속 공무원이 이와 관련된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면, 부서장이신 수석전문위원 및 전문위원이 회의에서 검토보고하십니다. 그리고 상임위 위원님들이 이를 참고하여 심사에 활용합니다. 이렇게 상임위에서 심의될 의안에 대한 기초 토대를 마련하는 걸 법률안 및 예산·결산 검토 지원이라고 보시면 돼요. 특히 예산·결산의 경우 소관 행정부처 내부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파헤쳐야 하는데, 매우 힘든 일이라 끈기 있게 파고들어야 해요. 더불어 상임위원회 운영 지원을 위해, 상임위에서 열리는 모든 회의,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등을 지원하는 것 또한 입법조사관의 일입니다.


  

Q. 긴 시간 동안 주변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힘들 때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막상 고시 공부를 해보니 ‘상대적 박탈감’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동기들이 연애 여행 스포츠 취미생활 등을 즐기면서 전문직으로서 20대를 재미있게 보내는 것을 보니 너무 부러웠어요. 졸업 후 새로운 인간관계는 공부에 방해되니 의도적으로 차단했고 기존의 인간관계도 줄어들었어요. 왜 나는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한탄을 많이 했어요.

전남 진도에서 공보의를 하면서 친구들 만나려면 5시간이 걸렸어요.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친구들과 술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그리고 제가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이에요. 매일은 아닌데, 아침에 전날 일을 최소 한 줄이라도 쓰자는 생각으로 써요. 어떤 일이 있었고 이러이러했다고 쓰죠. 공부가 힘들 때에는 과거에 고양감 있을 때 쓴 일기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어요. 과거의 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습니다. 

         

Q. 한의사로서 입지가 현재 직무에 어떤 도움이나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한의사로서의 전문성이 국방위원회 법률안 및 예산·결산 검토 지원 등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잘 모르겠어요. 만약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했으면 의료법 관련 법률안을 검토할 때 전문성이 도움 되었을지 몰라요. 순환보직이다 보니까 30년 공직생활 동안 의료인 전문성이 발휘되는 시간은 언젠가 꼭 올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신입사원이라 모든 것이 낯선 상황인데 조직 내에 저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는데 한의사가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한의사 출신 국회사무관이 제 꼬리표예요. 그러다 보니 조직 내에서 기억하기 쉽게 돼서 좋아요. 한의사라는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어려운 시험을 쳐서 국회에 들어온 것을 공직에 대해 진정성 있다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 기쁩니다. 그리고 면허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퇴직 후에는 한의사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국회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장기 혹은 단기 목표와 계획이 있으신가요?

단기적으로는 조직 내에서 1인분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신입사원인걸 감안해도 업무에 미숙함이 많고, 제가 글을 잘 못 써요. 여기 와서 많이 느끼고 있는데, 문체를 어렵게 써서 지적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글쓰기를 잘하고 싶고, 특별히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기보다는 우수한 선임들을 보고 배우며 조직에서 1인분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1인분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국회 업무를 하면서 만나는 다양한 직군의 분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국회 운영과 관련하여 정무적 판단능력도 길러졌으면 좋겠어요. 또 오랜 시간 근무하게 되더라도 국회가 내 집 같고 조직 구성원들이 가족처럼 소중하다는 생각이 항상 들면 좋겠어요. 

은퇴 후에는 한의사로서 소소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임상적 측면에서 저는 다른 한의사들에 비해 매우 뒤처져 있죠. 하지만 제가 한의사로서 작게나마 도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고 해요. 현재 열린 의사회에 가입했는데 주말에는 정기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한의사로서의 삶도 이어나가고 싶어요. 은퇴 후에도 이어지게 하고 싶죠.      


Q. ‘의료는 법과 제도라는 말에 깊이 공감이 됩니다한의사가 제도적으로 영역을 넓히고 나아가 주도권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저 개인적으로는 한의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공직에 진출한 한의사가 한의사만을 위한 정책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국민을 위한 방향과 부합되는 게 아닌 이상 말이죠. 

일단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의원 밖으로 나가는 한의사가 많아져야 해요. 이렇게 해야 제도적 영향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네트워킹’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공직에 나간 한의사가 특정 의료 파트를 담당하는 게 아니면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은 의료 파트를 맡은 공직 한의사가 아무런 네트워크 없는 허허벌판에서 홀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매우 어려워요. 한의사들이 종류에 관계없이 다방면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이런 한의사들이 쌓일수록 네트워크가 복합적으로 연결되고, 어느 순간 ‘기회의 창’이 열렸을 때 효과를 보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희 책 제목과도 같은 말인데요!


의사의 경우 정치, 공직, IT, 블록체인, 각종 사업 등 다양하게 진출해 있어요.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청의 경우 의사가 굉장히 많아요. 주로 특별채용 루트인데 이런 루트를 만드는 것 또한 정치, 의사협회, 정부 등 네트워크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런 루트를 통해 유입이 늘면 늘수록 네트워크는 단단해지고 제도화는 공고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국회사무처는 공채시험을 치르지 않고는 채용되기가 매우 어려워 의사든 치과의사든 약사든 경제학 행정법 행정학 같은 논술시험을 쳐야 하다 보니 국회사무처에 네트워크를 만들기 어려워요. 현재 국회사무처 소속 의사나 치과의사는 단 1명도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는 한의사를 위해서 일하는 공직자가 아니에요. 타 전문직종에 비해 한의사가 상대적으로 제도적 영역이 좁은 거 같아 드는 생각을 말하는 것뿐인 걸 감안해주세요.          


Q. 인생의 UP & DOWN, 선생님의 삶의 신조가 궁금합니다.     

먼저 DOWN은 고시공부를 하던 2018년이었어요. 막상 해보니 공부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리고 제가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제 자신에게 실망하고 시험도 떨어졌죠. 공보의를 진도에서 하면서 누굴 만나러 가기에는 너무 멀고 새로운 인간관계도 자제하다 보니 너무 외로웠어요. 주위에서는 다 연애하고 여행 가고 취미생활에 빠져있고, 대학 때 친했던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는 거 같고 새로운 인간관계 만드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게 되고. 소중한 20대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아서 힘들었어요.     

UP은 2021년 최고의 UP인 입법고시 합격이죠. 입법고시가 행정고시보다 경쟁률이 높은데 저는 행정고시는 떨어지고 입법고시를 붙었어요. 동기들은 모두 행정고시도 합격하고 국회로 왔는데 저 혼자만 입법고시만 붙었었어요. 시험운이 너무 좋았어요. 매슬로우 욕구단계에서 최고 단계가 자아실현이죠. 수험기간 5년으로 조금 늦긴 했지만 학생 때 계획한 플랜에 올인해서 성공했다는 데에서 최고의 쾌락을 느꼈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젊은 시절 어떤 일에 제 모든 걸 쏟아서 성공해봤다는 그 경험이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영광의 합격 후 임용장 수여식 모습입니다.


덜 후회하는 선택을 하자는 게 제 삶의 신조예요.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가 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후회하는 선택지는 있는 법이에요. 저는 날아가버린 20대 한의사의 화려한 삶이 후회되긴 하지만 4,50대의 내가 너는 젊을 때 왜 모든 걸 쏟아부어보지 못했냐 하는 그런 후회는 안 하게 되었어요.     

하나 더하자면 질투는 저의 힘이에요. 여기서 질투는 적의라기보다는 경쟁자나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과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감정이에요. 저는 속이 좁아서 질투를 통해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나도 저걸 갖고 싶다 해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가져야 적성에 풀려요. 능력이 없으면 어떻게든 그 능력을 만들어서 가진다 이렇게 목표를 달성해 온 것 같아요. 뭔가 이상적인 동기를 기대하셨을 수 있겠지만, 이런 긍정적인 질투와 소유하기 위한 노력이 저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Q. 다시 한의대생으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가요?

소개팅이나 연애 이런 걸 정말 많이 하고 싶어요. 지금도 여전히 거절당하는 걸 두려워하는 성격이라 돌아가도 큰 변화가 없을 거 같긴 해요. 그런데 20대 때는 좀 심하게 그런 성격이었어서 후회도 좀 되고 어느새 33살이 되어버렸어요. 고시공부를 빨리 시작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 시간에 20대에만 할 수 있는 여러 경험을 깊이 있게 하고 많이 느끼면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Q.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앞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임상에 나가려는 경우는 다른 분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실 테고, 임상 외에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한의대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몇 개 있어요. 

첫째, 임상 한의사를 안 하더라도 반드시 ‘한의사 면허’는 획득하고 다른 길을 찾으세요. 다른 길을 가면서 깨달은 사실이 외부에서 바라볼 때 한의사는 정말 너무 좋은 직업이고 한의사만 한 직업이 정말 별로 없는 것이에요. 한의사 면허가 직접적으로 쓰이지 않더라도 본인의 ‘브랜딩’이 되고, 다른 길에서 설령 실패하더라도 ‘플랜 B가 한의사’라는 말도 안 되는 리스크 관리가 돼요. 100세 시대에서 평생직업이란 없습니다. 일단 면허를 받은 후에, 다른 길을 가더라도 언제든지 한의사로 돌아올 수 있는 장치는 마련하는 것이 좋아요.     

둘째, 다른 길을 선택할 때 ‘등가교환’과 ‘리스크 관리’를 항상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저는 20대 한의사로서의 사회경험, 연애, 여행 등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수험공부와 맞바꿨죠. 공보의 이후에 요양병원 야간 당직의를 할 때에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당직을 하면서 쪽잠을 잤어요. 그러고 오전 9시부터는 바로 독서실에 갔다가 저녁 6시에 다시 병원으로 출근하는 그런 삶을 2년 가까이했어요. 붙어서 해피엔딩이지만 안 됐으면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몇백대 1짜리 시험인지라 누구나 열심히 하면 붙을 수 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요. 고시공부는 매우 불확실한 선택이죠.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저는 플랜 B가 한의사였고, 직장과 병행하면서 수험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리스크는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었지만 기회비용 측면에서는 제20대의 시간을 등가 교환한 셈이에요.     

셋째, 공직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고 싶어요.  jaeho1638@naver.com으로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공채시험이 아닌 진로는 사실 잘 모르지만, 공채시험인 행정고시 등의 공부방향이나 전략, 업무 등은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공직 도전은 포기해야 할 것이 많아요. 도전에 앞서 소중한 20대의 시간들, 공직에 나간다면 한의사로서 전문직의 삶을 포기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인터뷰에서도 아낌없이 알려주시는 중인 정재호 사무관님!


Q. 앞으로 공직자로서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국회공무원은 창조보다는 감시, 견제하는 일을 해요. 대한민국이 크게 나아가는 길이 있을 텐데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데 보탬이 되는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보다 입법부의 역할이 커지고 있고 국회공무원의 업무 범위와 역할도 증가하고 있어요. 대한민국 정치라는 큰 흐름 속에서 어깨가 무겁고 사명감도 막중합니다. 인을 치료하는 한의사가 반드시 한약과 침을 사용해서 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 법과 제도를 통해 인, 그리고 사회를 치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건의료 쪽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면서 인과 사회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대만드의 공식 질문입니다! <대신만나드립니다>가 다음에 만나봤으면 하는 분이 있나요?

정예원 선생님을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요. 펑크락밴드 기타리스트예요. 대학교 1년 선배인데 본인 꿈이 락스타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졸업 후에 홍대에서 밴드 생활을 하면서 한의사를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공연 사진을 보면 비주얼이 압권인 멋진 선배님입니다.



국회의사당 근처 카페에서 맛있는 저녁과 함께한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식사와 인터뷰 내내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  한의대생들이 겪는 여러 고민을 먼저 겪어본 선배님의 말씀인지라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중간중간 개인 질문도 재치 있게 받아주며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재호 사무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본 인터뷰는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진행되었습니다.)


Interviewer. 코카스파니엘 기린 참새

Writer. 코카스파니엘 &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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