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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보리 Jan 17. 2021

[식물다방] 식물의 안부를 듣는 일

- 꽃가루 알레르기를 이겨보려고 식물을 키우는 친구와의 이야기

 내 친구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올 때는 꽃이 있는지 확인하고 들어온다. 일반 결혼식장에서 결혼하면 그곳이 곧, 장례식장이 되어버릴 거라는 말을 할 만큼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한 내 친구는 꽃 사진만 봐도 재채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 친구가 자기 나름대로 알레르기를 극복해보겠다면 시작한 일이 있다. 바로 식물 키우기이다. 꽃이 피는 식물은 못 키우겠지만, 초록한 잎이 있는 식물을 본인이 키울 수 있다면 왠지 꽃가루 알레르기도 극복한 느낌이 들 것 같다며 말이다.


(결론은 알레르기는 못 이겼다.)


 그렇게 시작된 친구의 식물 생활.


 남편과도 모두 아는 사이라 자주 집에도 놀러 오는데, 호시탐탐 식물들을 노린다. 우리 집에는 판매나 연출 작업 후에 1-2개 남는 식물들이 꼭 있었기에, 내 친구는 먹을 것을 챙겨 와 우리와 물물교환을 해갔다. 하나를 교환하면, 하나는 덤으로 나가는 인심 좋은 사장(나) 덕분에 내 친구의 작업실은 식물이 넘쳐난다. 작업실은 또 어찌나 해가 잘 들던지, 어느 식물이든 기가 막히게 키워내고 있다.


 하루는 비닐하우스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나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시골이라 신호가 뚝뚝 끊기진 했지만, 내 친구의 근심 어린 표정은 화면에 그대로 보였다. 산세베리아를 수경재배 해뒀는데, 새순이 나오더니 너무 자라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무럭무럭 자랐다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지만, 가끔 사람들은 너무 잘 자라도 감당이 안되어 어려움을 호소하곤 한다.


 그래서 난 해결책을 주었다.


 나 : 새끼(자구)를 떼어내라고!
 친구 : 응? 어떻게?

 

 라며 똘망똘망 하지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친구. 무슨 소리인지 알아도, 내가 그걸 어찌하겠냐며. 당장에라도 이 시골까지 달려올 기세의 친구. 그냥 스스로 해보라는 나의 강권에도 가위가 없어 자를 수 없다는 친구. 그냥 손으로 하라는 나의 말은 더 혼란을 가중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컴퓨터가 고장 나면 받던 원격 서비스가 생각났다. 그 친구에게는 내가 영상으로 보고 있을 테니 시키는 대로 해보라고 했다. 사실 엄청난 일은 아니고 식물의 모체(엄마)에서 새로 나온 그 자구(새끼)를 떼어내기만 하면 되었다. 잘 안 떼어질 것 같지만, 우리는 모든 식물들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식물은 어차피 개체수 증가가 삶의 목적이기에, 새순으로 나온 아이들은 엄마의 몸에서 정말 쉽게 떼어진다. 식물 스스로가 쉽게 떼어져야만 본인의 개체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산세베리아 식집사님들은 자구 떼기를 두려워마시라!!


 자구가 어이없게도 너무 쉽게 분리되던 그 순간, 내 친구의 표정은 유명한 퇴사짤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손바닥만 한 화면 건너에서 내 친구 스스로가 식물 키우기의 레벨업을 했다는 만족감까지 느껴졌다. 나까지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여기에서 전하는 식물을 키울 때 진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식물을 키우는 공간에 잘 드는 햇빛처럼 식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전하는 따스한 칭찬이다.


 여러 개의 비닐하우스에서 식물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화분 하나에서 잎이 나는 일은 흔하디 흔한 아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일은 엄청난 일이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나에게 온 느낌이랄까?

 맙소사. 내가 식물의 이렇게 잘 키웠다니! 무려 새 잎이 나왔어!!



 새 잎 내는 단계 정도는 이제 마스터한 내 친구는, 이번 자구 떼기를 성공함으로써 본인이 식물 키우기에 매우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며, 우쭈쭈를 해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친구의 식물 안부 전하기. 키우기 쉬울 거라고 했던 박쥐란은 살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부터, 내가 줬는지 다른 데서 얻어왔는지조차 모를 수많은 식물들의 생사를 전한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누구에게 자신의 식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고, 어디가 아픈지, 그래서 본인이 어떻게 케어하고 있는지를 말하겠는가. 내가 할 일은 가만히 친구의 식물 이야기를 듣고 칭찬해주고, 마음 아파해 주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근데 이런 식물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내 마음도 따뜻하게 해 준다. 별 걸 다 물어본다고 귀찮은척해도 사실, 답을 잘해줬을 때의 뿌듯함이 있다. 그리고 신나게 또는 진심으로 식물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식물 때문이라도 나를 계속 찾아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


 이 식물다방을 보청기를 끼고 서라도 내 귀가 들리고,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은 이유다. 식물 이야기에 목마른 분들은 식물다방으로 오시라!!




다방면의 식물이야기가 있는 곳, 식물다방에 오신 여려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식물다방 마담보리입니다:)


40년 가까이 식물 농장을 운영하시는 시부모님과 함께 원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직접 길러낸 식물과 트랜디한 식물들을 종로꽃시장에서 판매했습니다. 그러다 제대로 식물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에 2020년 편입을 통해 두번째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현재 열심히 원예디자인 학부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학업을 하면서 동시에 [바이그리너리]라는 브랜드를 통해 카페, 전시, 무대, 웨딩홀, 정원 등 다양한 공간을 식물로 구성하는 일을 합니다.


원예치료사로서는 꿈의학교, 초등학생 스쿨팜 교육과 weeclass청소년, 특수학급 , 어르신 대상으로 식물을 매개로 한 원예치료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의 작가이자, 농민신문의 오피니언 외부 필진으로 활동 중이며,

유튜브 채널 <식물다방 마담보리>를 운영,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고,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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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곁에 있고 싶은 당신을 위한 모든 것, [바이그리너리]에서는

식물 기반의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식물다방]을 함께 운영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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