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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보리 Jan 21. 2021

[식물다방] 식물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

- 3살부터 고3까지, 아이들은 식물을 통해 사랑과 책임감을 배웁니다.

 나의 첫 번째 식물일은 아이들과 함께 였다. 고등학생이지만,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 일반 학급이 아닌 특수학급에서 학교 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원예수업을 진행했다. 말은 뭔가 대단한 걸 하듯이 원예치료 수업이라고 했지만, 나와 아이들은 그저 식물을 만지고 즐기고 수다를 떨었다. 대략 1시간 반의 수업이 끝나면 교실은 난장판이 되지만, 그만큼 나와 아이들은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고1 때 만났던 친구가 이제는 학교를 졸업했다며 졸업 사진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요즘 아이들은 졸업사진도 흑역사 없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며 빨간 립스틱 하나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문득 내가 이 친구와 국어나 수학,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였다면, 관계가 이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업 평가가 전제되는 수업과 달리 식물로 하는 수업에는 답이 없기에, 오직 칭찬만이 오간다. 우와~ 너무 멋지게 심었다. 우와~ 어떻게 이렇게 심을 생각을 했어? 우와~ 이렇게 잘 키웠단 말이야? (죽였더라도) 우와~ 키우기 어려운 식물이었는데, 다른 사람에 비해 엄청 오래 키운거야! 또 하나를 배웠겠는데?라는 식으로 칭찬 잔치가 펼쳐진다.


 식물을 키우는 것 자체가 생존과는 별개인 취미로 하는 일인데, 굳이 취미 파트까지 혼나가면서, 악착같이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에게 식물을 가르치는 일이나, 어른에게 식물을 가르치는 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이 식물을 매개로 한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부터 식물을 기르며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식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옆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자신 있게 식물을 키워나갈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정말 학교에서 식물을 실물로 배운 것은 초2 때인가?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을 배우다가, 집에서 강낭콩의 싹을 틔워 오는 것이 과제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아니, 근데 강낭콩 싹 틔우는 것도 벼락치기로 해보려다, 망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몇 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의 취향이 반영되어 학교에 동양란만이 한가득 했던 기억은 있다. 결국 그때에는 내가 내 책상에 앉아 꼬물꼬물 온전히 내 식물을 화분이란 것에 심어본 기억은 없다. 우리 때는 학교에서 식물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선생님의 입장이 된 요즘의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상추를 심고, 꽃다발도 만들어보고, 공기정화식물도 직접 화분에 심어 본다. 아이들은 분갈이를 처음 해보는 어른들과 같이 겁을 먹지만, 이내 자신과 식물을 동일 시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식물과 같이 자라게 된다.


 종로 꽃시장에서 일하다 보면,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용돈을 들고 식물을 사러 온다. 매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고는 고른 식물. 어른들처럼 모던한 토분이 아닌 빨간색 혹은 샛노란색 화분을 골라 자신의 식물이 심기는 과정까지 꼼꼼하게 챙겨본다. 언젠가는 엄마가 케어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나는 형태로 식물의 주인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한동안 그 식물은 아이가 줄 수 있는 모든 관심과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아이는 화분에 흙에, 식물 무게까지 꽤 무거웠을 본인의 초록 분신을 양손으로 소중하게 들고 갔다. 그 뒷모습은 모두를 흐뭇하게 웃게 만들었다.


 그렇게 식물이 익숙해진다면, 한 진중한 고등학생 형처럼 분재를 사러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고3이라던 그 사춘기 소년은 분재를 키우고 싶다며, 멋스러진 진백 분재를 골라갔다. 공부하다 집중이 안될 때마다 식물을 들여다볼 거라고 한다. 나는 그 소년에게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분무하라는 tip과 공부도 파이팅하라고 식물 옆에 놓을 작은 피규어를 하나 선물해줬다. 그 소년은 이제 성인이 되었겠지. 얼마나 마음이 바른 청년이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는 최연소 고객을 만났다. 2021년 올해, 3살이 된 고객님. 남편의 친한 친구분이 집에 둘 수 있는 식물을 부탁하셔서 여인초를 추천해드렸다. 그리고 배송 후에 날아온 후기 샷은 여인초와 집의 인테리어가 아주 찰떡처럼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찰떡같은 후기가 남아있었다.


 3살이 된 딸이 여인초의 이름을 붙여줬는데, '꿈'이라고 한단다. 여인초를 너무 좋아서 해서 자고 있는 동안에도, 꿈에서도 만나야 한다고 꿈이라고 지어줬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잘 잤냐고 확인하고, 분무도 곧잘 해준다고 한다.


 흔하디 흔한 여인초가 '꿈'이라니!! 이모는 그저 기분이 좋구나, 아가야.


 아이가 여인초 '꿈'이와 함께 건강하게 자라나서, 이 이모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식물일을 하고 있을 테니 언제든 식물이 키우고 싶다면 연락했으면 좋겠다.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 꽃밭에서 양손으로 꽃받침을 만들고 환히 웃었던 기분 좋은 추억처럼, 아이의 추억 속에도 초록한 식물이 함께 하기를. 그래서 몸과 마음 모두 초록하게 건강한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고통과 아픔 없이, 식물과 함께하며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한다.




다방면의 식물이야기가 있는 곳, 식물다방에 오신 여려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식물다방 마담보리입니다:)


40년 가까이 식물 농장을 운영하시는 시부모님과 함께 원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직접 길러낸 식물과 트랜디한 식물들을 종로꽃시장에서 판매했습니다. 그러다 제대로 식물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에 2020년 편입을 통해 두번째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현재 열심히 원예디자인 학부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학업을 하면서 동시에 [바이그리너리]라는 브랜드를 통해 카페, 전시, 무대, 웨딩홀, 정원 등 다양한 공간을 식물로 구성하는 일을 합니다.


원예치료사로서는 꿈의학교, 초등학생 스쿨팜 교육과 weeclass청소년, 특수학급 , 어르신 대상으로 식물을 매개로 한 원예치료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의 작가이자, 농민신문의 오피니언 외부 필진으로 활동 중이며,

유튜브 채널 <식물다방 마담보리>를 운영,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고,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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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곁에 있고 싶은 당신을 위한 모든 것, [바이그리너리]에서는

식물 기반의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식물다방]을 함께 운영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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