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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보리 Jan 30. 2021

[식물다방] 고무나무도 죽인다는 똥손 내 친구

- 아냐, 그거 키우기 어려운 거야...

 뱅갈 고무나무, 드라코, 호야, 로드킬 선인장, 인도 고무나무, 휘커스 움베르타, 떡갈 고무나무, 동백나무, 몬스테라, 스킨답서스, 유칼립투스, 마오리 소포라, 아이비 외 아주 다수의 식물들.


 위에는 내가 지금껏 죽인 식물들의 리스트이다. 그냥 머릿속에 번뜻 지나가는 아이들만 해도 이 정도인데 판매를 하다 남은 아이들, 농장 비닐하우스 한 구석에서 아무도 알게 모르게 죽어간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난 지옥에 갈게 분명하다. 수많은 식물을 죽인 죄로 말이다.


 식물 농장을 운영하는 시댁 덕분에 나는 결혼과 동시에 수많은 식물을 접하고 키울 수 있었다. 우리 시어머님의 어록 중에 '사람들이 식물을 죽여야 식물 파는 사람도 먹고 산다!'는 띵언이 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타샤 할머니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 실업자 가운데에는 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식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아주 크게 상심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나는 고무나무도 죽이는 똥손이야


 사진도 잘 찍고, 싹싹하고, 키도 크고,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캠핑도 잘하고, 섬세하고, 얼굴도 그 정도면 훈훈하고, 여행 코스도 잘 짜고, 이벤트도 잘하는 내 (남자사람-여친 없음) 친구도 얼마 전부터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농장 온실을 지을 때 찾아와 노동의 대가로 고무나무를 분양받아 온 정성으로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리는 15년이 된 사이라, 서로의 안부는 절대 묻지 않는데 이렇게 식물의 안부만을 전해온다.

  

 이럴 때만 나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아직 사진만 보고 점쟁이 같이 단번에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뭔가 물에 의한 증상이라 판단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한 생명을 키우는 것이 절대 쉬울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말하는 사람 속도 모른다는데, 하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식물의 상황을 우리가 어찌 100% 판단한단 말인가. 이 친구에게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좀 더 면밀하게 식물이 자라고 있는 환경과 상태를 살펴봐달라고 했다.


 더불어 작은 팁도 전해줬다. 물주기를 어찌하고 있냐는 질문에 겉흙이 말랐는지 본다길래, 그럼 겉흙의 기준은 얼마냐고 말했더니, 손가락 한마디 깊이라고 했다. 2-3마디까지는 확인하라고 전해줬다. 며칠에 1번 꼴로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2-3마디 깊이까지의 겉흙이 말랐는지 확인하고 물을 주어야 한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식물을 이제 막 키우기 시작한 친구에게는 모두가 헷갈리는 것 투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식물 하는 친구를 옆에 두고 뭔 걱정이냐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본다. 우스갯소리로 식물 죽으면, 농장에 와서 하루 일하고 일당으로 식물을 얻어가라고 말해줬다. 식물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식물을 키우는 모든 분들은 걱정하는 마음을 내려놓으시길. 그래야 식물 생활도 오래 할 수 있다.


 이제 막 식물 생활을 시작한 내 친구. 본인이 분갈이를 한 사진을 보내주고, 분갈이할 식물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고 오는 친구의 모습은 참 색다르고 귀엽기도 하다. 치열한 20대를 고민 속에서 방황하고, 좌절하고, 또 이겨내는 모습을 봐왔던 사이인데 이제는 모두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서 자신보다 더 식물을 귀하게 여기고 가꾸는 모습에서 역시 참 좋은 친구였구나, 나중에 장가가면 좋은 아빠가 될 것 같다는 믿음도 들었다. 식물은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까지도 좋은 사람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식물 키우기에는 자신 없어하는 친구에게 원래 고무나무는 키우기 어려운 거라고 똥손 아니니 걱정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나의 이 한마디가 친구의 식물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조금의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나도 식물 덕분에 참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런데 혹시 나같이 식물로 먹고사는 친구가 없다며 나에게 오라. 그래서 식물다방을 만들지 않았는가. 더불어 식물을 배우고 싶은 분들을 위해 온라인 강의도 준비 중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라! 식물을 통해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하게 되는 요즘. 난 진짜 식물을 통해 복 받은 사람이다.




다방면의 식물이야기가 있는 곳, 식물다방에 오신 여려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식물다방 마담보리입니다:)


40년 가까이 식물 농장을 운영하시는 시부모님과 함께 원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직접 길러낸 식물과 트랜디한 식물들을 종로꽃시장에서 판매했습니다. 그러다 제대로 식물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에 2020년 편입을 통해 두번째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현재 열심히 원예디자인 학부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학업을 하면서 동시에 [바이그리너리]라는 브랜드를 통해 카페, 전시, 무대, 웨딩홀, 정원 등 다양한 공간을 식물로 구성하는 일을 합니다.


원예치료사로서는 꿈의학교, 초등학생 스쿨팜 교육과 weeclass청소년, 특수학급 , 어르신 대상으로 식물을 매개로 한 원예치료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의 작가이자, 농민신문의 오피니언 외부 필진으로 활동 중이며,

유튜브 채널 <식물다방 마담보리>를 운영,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고,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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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곁에 있고 싶은 당신을 위한 모든 것, [바이그리너리]에서는

식물 기반의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식물다방]을 함께 운영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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