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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Kim Jul 24. 2022

기억의 갱신

내 안의 사건 만들기

4월의 달력은 특별한 기억을 소환하는 숫자들로 가득 차 있다. 역사책을 통해 알게 되었던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회적 사건, 뉴스를 보며 경악했던 동시대의 사건, 그리고 가족에게 일어났던, 또한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사건까지… 그 일들이 4월의 그날에 발생한 것은 '우연' 이겠지만, 그것이 '사건'이 된 것은 그것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일 것이다.


나의 대학 시절인 80년대엔 4.19라는 숫자가 학생들을 깨웠었고, 그날이 되면 매캐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혁명의 정신을 되새겼다. 4년 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 낸 노란 리본의 기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퇴색되지 않은 채 아픔으로 남아있다. 한편 어바인 병원에서 가영이의 첫 울음소리를 들었던 그날도 화창한 4월이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감격과 함께 '아빠'라는 정체성을 새로이 부여받고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렸던 날이다. 그리고 병원 수술실 옆 대기실에서 내 생애 가장 긴 '5시간'을 보낸 것은 '18일'이라는 숫자 속에 깊게 새겨져 있는 가장 가까운 4월의 기억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억이란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기억은 계속해서 갱신된다. 과거가 새로운 현재에 작용해서 또 다른 기억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일 년 전 아내가 수술받은 것을 나에게 벌어진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삶을 안팎으로 많이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아내에 대한 , 다른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선과 생각이 새롭게 바뀌었다. 원치 않았던 힘든 상황이 오히려 삶의 의미를 찾고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바꾸어 놓았다고나 할까. 2017년을 이제까지의 내 생애 중 가장 열심히 잘 살아낸 해로 기억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지난 몇 주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상의 루틴에 지쳤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것은 삶을 긍정하게 했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희미해져서인지도 모른다. 이제 유효기간이 거의 다 된 기억을  불러들여 새로운 기억으로 갱신해 보기로 한다. 그때 그 상황을 복기해 보고 내가 현재 겪고 있는 불편함을 그 위에 얹어본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그리고 내가 대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본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을 내 안의 사건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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