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알고 싶어요
나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아 내가 이래서 이 글쓰기를 시작했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자기 발견의 첫걸음 또한 나를 잘 모르고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했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봤다. 제목이 "집순이, 집돌이, 알고 보면 예민한 사람?"이라는 주제였다. 나는 업무가 있거나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할 경우 밖에서 꽤 에너지가 있는 편인데, 쉴 수 있는 날엔 가능하면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조용한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근데 영상에선 이런 사람들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나는 음식점에 가서 머리카락이 나와도 조용히 빼고 먹는 사람이고, 친구들의 외모 변화에도 둔감하며, 나 오늘 바뀐 거 없어?라는 질문을 가장 무서워한다. 근데 이런 내가 예민하다니.
영상에서 전홍진 교수님이 말씀하신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사람 많은 곳에서 생기는 노이즈가 필터링이 잘 안돼서 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최근에 친구와 쿠킹클래스에 간 적이 있었는데, 옆에서 요리하던 분들이 칼도 위험하게 쓰고, 불도 안 다뤄본 분들 같아 불안했다. 클래스가 끝나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계속 남았는데, 친구는 옆에 사람들의 행동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었다. 이런 불편한 마음이 생긴 이유가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니 나의 다른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나는 발표할 때 반드시 사람들의 눈을 본다. 사람들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를 발표에 녹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호스트 역할을 하려 한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참여를 돕기 위해 더 질문을 하려고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내가 예민하게 사람들에 반응하기 때문이고 이런 예민함이 사람에 대한 배려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나는 아직도 나를 알아가고 있다.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임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HP/MP처럼 나의 체력, 정신력, 지식 등을 수치로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에 알게 되면 제일 좋을 것 같은 것은 나의 레벨업이 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공부나, 운동은 그 효과를 느끼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지난한 과정 중에도 소수점 한자리라도 나의 능력치가 느는 것이 보인다면 더 신나고 이를 지속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이미 하고 있다.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나, "참 잘했어요" 스티커가 붙어있는 캘린더가 그런 역할을 한다.
꿈같은 얘기지만 현존하는 기술 중에 나의 체력, 정신력, 지식들을 수치화해주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의 능력치나 한계를 알기 위해서 내가 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인간의 뇌는 게으르다. 기존에 하던 대로 하려는 관성을 갖고 있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나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게으른 뇌를 각성시키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나를 관찰하는 일은 객관성을 잃어가기 쉬운데 글을 쓰는 과정이 나를 좀 더 객관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메타인지를 갖고 나를 관찰하는 과정들이 쌓여서 나만의 공략집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쓰기를 하면서 같이 본 영상이 있는데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에 대한 북리뷰이다. 이 중에 꼭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싶은 것이 있다. "행복"은 감정이라는 것이 나의 머리를 때렸다. 나는 이제 8년 차 크로스핏터이다. 매일매일 와드를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럼 그 당시 나의 감정은 "힘듦"이다. 그런데 와드가 끝나고 나면 정말 "행복"하다. 오늘 무사히 운동을 끝냈다는 것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것.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와드를 수행했다는 것. 만약에 내가 순간의 감정인 "힘듦"을 따라 선택했다면, 와드가 끝나고 느끼는 "행복"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순간의 "행복"보다는 "의미"를 찾는 삶을 계속 살아왔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나의 삶의 "의미"는 확실하다.
내가 갔던 길이 누군가에게 길이 되는 것
처음 조선소에서 기계설계 엔지니어로 일할 때, 조선 3사에 단 한 명의 여자 임원도 없었다. 그때 나는 그 유리창을 꼭 깨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갔던 길을 조금 더 쉽게 갈 수 있길 바랐다. 직무를 바꿔 개발자인 지금도 비슷하다. 비전공자였던 개발자들이 나를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갖는 것. 직무에서 뿐만 아니라 나를 멘토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의 멘토인 사수님, 고등학교 은사님, 지금 회사의 대표님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의 의미이다.
행복은 기분입니다. 감정이죠. 감정은 일시적입니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삶을 목표로 삼을수록 깊이, 의미, 공동체가 결여된 삶을 살 확률이 높다고 하네요. 또한 Giver 보다 Taker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편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삽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관여하고 기여하려고 하죠. 의미 있는 삶은 행복한 삶보다 높은 차원의 걱정, 스트레스, 불안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의미와 행복은 서로 상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일은 나중에 더 심오한 형태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삶은 곧 가치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한 달 자기 발견 가이드 글 중,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라는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