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르다
나는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다. 흑과 백으로 나뉘는 세상 속에 회색 영역이 좁았던 터라 한 번 정하면 흔들리지 않고 해낸다. 어렸을 때는 이런 생각들이 나와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대기업에 취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틀리다. 짧지만 내가 살아온 30년 인생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부를 못한다고 불행하지 않았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생각이 짧지 않았다. 이를 통해 나의 생각들에 조금씩 균열이 갔다.
동생과 나는 20년을 넘게 함께 살았다. 비슷한 환경 속에 살았고, 중학교까지는 똑같은 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나와 동생은 정말 달랐다. 동생은 공부하기보다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좋아했고, 운동장을 뛰어 다는 것보다는 청소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 동생의 모습은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첫 번째 마중물 역할을 해주었다.
두 번째는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 사수님의 모습이었다. 사수님은 그 누구보다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회사 내에 어떤 사람들도 입 모아 칭찬하는 분이었다. 어느 날 내가 사수님께 제일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데 사수님이 책을 거의 안 읽는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책을 읽는 건 무조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의 반쪽 만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수님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 그 어떤 사람보다 현명했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셨고, 일도 잘하셨다. 이렇게 또 나의 세계는 큰 균열이 갔다.
이전의 나의 세계가 점점 부서지고, 우리가 다르다 라는 생각이 점점 견고 해져 갈 때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지금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은 무엇인지.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생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려고 했던 나의 노력들을 뒤돌아봤다. 그럼 그건 내가 정말 원했던 모습인가?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는 규모보다는 자율성과 자유도가 높은 곳이었다. 결혼을 해서 거제도에 정착하고 싶은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행하는 삶을 꿈꿨다. 내가 다루는 기술이 특수하길 바라기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가서 닿을 수 있는 기술 이길 바랐다. 이런 고민 들이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다르다"라는 단어와 "틀리다"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그런 대화가 길어지면 여전히 잘못된 단어를 고치고 싶어 못 견뎌한다. 내가 찾은 방법은 정말 이 단어를 고착해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부러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눌 상대는 서로 꽤 오래 시간 관계를 이루고 서로를 이해할 때나 가능한 것 같다. 다행히 나를 참고 기다려 주는 사람들 덕에 사회화가 많이 되어가고 있다.
요새 나의 화두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가 다르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고,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다르다"라는 말이 도움이 된다. 다르다 라는 것과 이해가 상대와 나 사이 어디쯤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전부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남은 부분을 다르다로 채워 넣는 것,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때로는 그 다름을 이해로 채우기 위해 몇 번이고 꺼내 보려는 노력.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는 다르다"이다.
우리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