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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 Nov 30. 2020

Day8. 세 가지 터닝포인트

퇴사, 개발자, 번아웃


미국 파견근무 그리고, 퇴사

조선소에서 일할 때 정말 좋은 기회로 미국으로 3개월 동안 파견 근무를 나간 적이 있다. IT 기술의 메카가 실리콘 벨리이듯 해양플랜트의 메카는 휴스턴이다. 25살의 나는 부푼 꿈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선 나는 다양한 벤더 업체들과 선주사, 인증기관, 엔지니어링 사에 방문해 미팅에 참석하기도 하고, 시험을 참관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내가 느낀 점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기술의 핵심은 모두 한국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는 조선소들은 배를 설계하거나 건조하는 기술, 해양플랜트를 건설하는 것에는 특화되어 있지만, 해양플랜트에 들어가는 핵심 장비들은 모두 미국의 휴스턴이나 유럽의 장비 회사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양플랜트 관련된 일을 하며 한국에 있을 것이라면 있어야 할 곳이 거제도라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가진 기술은 건조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곳은 현장이었다. 아무리 설계 인력이라도 현장을 떠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알게 되었다.  첫 회사생활을 타지에서 하며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만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거제도에선 이런 점이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도 힘들었고, 업무 외에 학원이나 대학원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생활했던 휴스턴은 대도시이고, 크로스핏의 종주국답게 다양한 크로스핏 박스가 있어서 운동도 할 수 있었다. 한국과 시차 때문에 밤에도 일을 해야 했지만, 퇴근 후 즐길 수 있는 여유나, 집 앞에서 타던 스케이트 보드는 내가 어디에 있어야 행복 한지를 알게 해 줬다. 업무 외에도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일하고 싶었다. 거제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퇴근 후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집 앞 풍경


A to Z까지 앱 개발, 첫 출시

처음 개발자가 되고 많은 것이 불안했다. 비개발자이고, 대학교 때 배웠던 공부, 회사에서 했던 일들, 너무 좋았던 동료분 들을 뒤로하고 내가 선택한 길이 좋은 선택 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선택에 확신을 가진 것은 개발자가 되고 약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지금의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10년 넘는 개발자가 2분이나 계셨다. 그런데, 그분들이 떠나고 나 혼자 클라이언트 개발자로 남게 되었다. 이제 경력이 채 1년도 안된 나는 사수 없이 혼자 앱 개발을 설계부터 구현까지 맡게 되었다. 고생 끝에 앱을 출시했을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방법을 몰라 헤매고, 검색하고, 다른 개발 자을 찾아 코드 리뷰를 받고,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 했던 많은 선택 들의 결과는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겠지만, 이 성과를 통해 나라는 사람에게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번아웃

스타트업에서는 정말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역량을 끌어와서 이를 회사에 쏟아부었다. 기준이 높았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결과를 뽑아내지 못하면 좌절했고 이런 좌절들은 나도 모르는 새 자존감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개발자로 업무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기획, 문서정리, 번역, 발표, PPT 제작 등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하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대학원 준비부터 수업 듣는 모든 일까지 나는 계속해서 나를 한계치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아직 나는 번아웃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은 너무 다운되어 있고, 이유 모를 이유로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요새는 그동안 해왔던 많은 일들을 멈추고, 나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런 과정의 일환으로 자기 발견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다. 그리고 요새 하루 전에 해야 할 일이 이 글쓰기가 되고 나니 할 일에 대한 나의 압박감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기존엔 해야 할 일 들이 동시에 워낙 많아, 항상 긴장 상태였는데 최근에 생긴' 하루에 하나씩 글쓰기' 하나가 나에게 어느 정도의 압박감을 주는지도 깨달았다. 더 늦기 전에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게 돼서 다행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흔들리고 불안하지만,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열심히해왔고 성취를 맛봤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늘 그랬듯 이번에도 나는 길을 찾을 것이다.


다시 뛰어오를 그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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