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의 서울, 그리고 윤여정이라는 원석발견, 자가복제
오늘의 소개할 영화는 윤여정 배우가 주연을 맡았고, 1960년대의 하녀를 1970년대의 감성으로 옮겨온 자신의 작품을 리메이크 한 故 김기영 감독의 작품.
하녀의 성공 이후,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중산층 가정과 계급 구조를 다시 조명하고자 화녀를 제작했고. 영화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인물의 캐릭터이고 시대별로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기 위해 동일한 주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하녀에서의 2층 양옥집은 화녀에서 도시 변두리의 양계장으로 설정을 바꾸어, 시대적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냈다.
많은 사람들이 하녀를 인생작으로 꼽으며, 자연스럽게 화녀로 그 이야기를 이어갈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하녀 역시 1960년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감각적이고 훌륭한 영화지만, 개인적으로는 화녀에 더 큰 반응이 왔었다.
나는 2020년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화녀를 처음 보았다. 현존하는 화질이 깔끔하지 않아서 처음엔 걱정이 많았지만, 스토리텔링이 워낙 훌륭해서 그런 불편함도 감수하며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윤여정 배우님의 아카데미 수상 이후, CGV에서 화녀를 다시 상영해 주었을 때 극장에서 직접 스크린으로 감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때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았다. 원본 필름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상영된 버전은 해외 수출용 프린트 판본이었고, 리마스터링을 거쳤음에도 화질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화질임에도 불구하고, 서사와 스토리, 그리고 광기 어린 윤여정 배우님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 순간, 어딘가에 더 좋은 화질과 상태를 가진 필름이 남아 있길 바랐다. 만약 그런 필름이 발견되어 리마스터링이 되고, 잘려나가 사진으로 대체된 장면들이 만약 살아 있고, 고화질로 복원되었다면 얼마나 더 강렬했을까 싶다.
김기영 감독의 경우 연출방식이 꽤 독특하다고 한다. 실제 쥐를 풀어 배우의 공포를 극대화하거나, 윤여정 배우와 사적인 자리를 가지며 인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발견해 내는 등 배우의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또한, 시나리오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에서 즉흥적인 변화를 유도하며 유연한 연출을 추구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출을 진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거미를 사용해 배우 한유림의 극한의 공포를 이끌어내는 장면이 있다. 이처럼 김기영 감독의 실험적 연출은 후대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어찌 보면 괴팍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지만..
윤여정 배우는 화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하였으며, 이 작품으로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김수현 사단에 합류하면서 조연, 주연할 것 없이 드라마와 충무로를 오가며 여러 감독들의 사랑을 받았다.
2021년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를 통해 전 세계에 더 널리 알려졌으며, 솔직하고 위트 넘치는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윤여정만의 유니크한 연기 스타일과 존재감은 한국 영화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김기영 감독의 () 녀 시리즈들과 2010년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모두 같은 기반에서 출발한 작품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배경과 표현 방식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와 설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름만 알고 있는 1982년 충녀와 1979년 수녀는 아직 보지 못했다. (수녀만 조금 끝맺음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봤다) 반면,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김기영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섹슈얼리티와 모던함을 과감하게 풀어내며, 원작의 강렬한 감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냈다. (이후의 돈의 맛도 하녀의 세계관에 이어지는 듯했다) 김기영의 실험적 연출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그 감각이 놀라웠고, 원작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자가복제'라는 비판이 따랐고, 실제로 김기영 감독 역시 "나는 같은 이야기를 변주하고 있다"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단순한 복제가 아니었다. 김기영 감독에게 그것은 집요한 탐구였다. 그는 영화 속 '집'을 인간 욕망의 상징으로 사용했고,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갈등과 파괴적인 욕망을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기 위해 같은 이야기 구조를 고집했고, 시대에 맞춰 공간과 표현을 조정하며 새롭게 해석했다. 리메이크는 단순히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그의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그래서 하녀 시리즈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색깔로 빛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빠른 시일 내 수녀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