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롤러코스터> (20년 2월 2일 쓰다)
배우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이었던 <롤러코스터>. 당시에도 하정우는 이미 대세 배우였기에,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 영화도 촬영 시점부터 이미 유명해진 상태였고 개봉을 앞두고는 홍보도 꽤나 크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영화를 좋아하고, 하정우도 좋아했기에 내심 개봉을 기다렸으나 상영 당시에는 보지 않았다.
하정우의 진중한 연기를 좋아했던 대다수 관람객들은 <롤러코스터>의 가벼운 웃음에 대해서 모종의 배신감 혹은 의아함을 느낀 듯했고 이러한 반응은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결국 주저하다가 영화는 극장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생각보다 빠른 폐막는 주저함이 옳았다는 확신을 주는듯 했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났지만 그동안은 한 번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 영화가 새롭게 이슈가 되거나 재평가(?)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정우의 새로운 활동이 끊이지 않기도 했고.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연히 마주한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말장난으로 대사를 가득 채운 것인가 싶다가도, 이 정도 말장난은 평소에 연구하지 않으면 꺼낼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만큼 ‘찰진’ 대사들이었다. 어떤 리뷰에는 이 영화를 설명하며 ‘소동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아주 공감 가는 표현이었다. 90여 분 동안 크고 작은 소란들이 반복되는데 그 소란을 대하는 인물 하나하나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다. 더욱이 여러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불필요한 캐릭터는 단 하나도 없었다. 꽉 맞는 퍼즐처럼.
찰진 대사들과 정신을 놓은 것 같은 캐릭터들 사이로 하나 더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피사체가 있었다. 럭키 스트라이크였다. 럭키 스트라이크는 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에서 생산했던 담배로 2011년 말에 출시했다. 2012년부터 이듬해까지 이 담배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나는 제대한 직후인 2013년 4월에 럭키 스트라이크를 처음 봤다. 담배를 피우던 친구에게 몇 대 얻어 피워봤는데, 그는 목넘김이 부드럽다고 했다. 담배맛을 알 리 없던 나에게는 그저 엄청 진한 담배로 느껴졌다. 그래도 간결하면서도 적당히 긴 이름, 깔끔한 디자인과 물 건너온 느낌이 물씬 나던 브랜드는 참 마음에 들었다. 마치 미군 군수품을 몰래 손에 쥔 느낌이랄까.
럭키 스트라이크는 낮은 판매량과 동일한 브랜드임에도 해외산보다 떨어지는 맛(?) 때문에 2015년이 되면서 단종되었다. 결국 국내에서 럭키 스트라이크를 볼 수 있었던 것은 2012년에서 2014년까지 3년이었던 셈이다. 혼란스러운 영화 장면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럭키 스트라이크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2013년에 개봉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어떤 물건은 시간을 알려주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물론 럭키 스트라이크는 자신의 짧은 운명을 몰랐겠지만.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한바탕 낄낄대고 나서는, 생각이 2013년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그해에는 내가 뭘 했지, 어디를 여행했지, 무슨 노래를 들었지, 혼잣말을 하며 생각에 빠졌다. 깊숙히도 침잠했던 그해. <24:26>, <Lucky numbers>, <Play Hard> 따위를 들으며 한강을 뛰었던 날들. 온종일 비가 오고, 밤이 되어야 그치던 2013년의 봄과 여름. 아무도 없는 한강변을 뛰며 갖은 번민을 떨쳐내고 싶었던 감정이 생각났다. 그렇게 영화 소품 하나가 던져준 기억의 실마리 덕분에 나는 이미 7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영화에서는 악천후를 만나 흔들리는 비행기, 그리고 그 속의 소동들을 롤러코스터라는 제목으로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 비행기가 안전히 착륙하고, 인물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음에도 나는 그제야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내가 한 장면에 스쳐 간 담배 한 갑으로 긴 시간을 반추하게 된다는 것이 재미있다. 올해는 나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까. 올해 나의 ‘럭키 스트라이크’는 어떤 것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