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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21. 2023

#34 허겁지겁도 하나의 겁이다.

언젠가부터 허겁지겁 일상을 살아 간다. 무척이나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서도 마무리가 되었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멍하니 자정을 맞이할 뿐이다. 최근에 이사하면서 매일 하던 일기 쓰기와 운동을 잠시 미뤄두었는데 혼란은 가시기는 커녕 더욱 심해졌다. 전등도 갈아야하고 커튼도 새로 달아야 한다. 머릿 속 폭풍이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매일의 장면을 적어보면 특별히 버거운 것이 없다. 업무분장이 바뀐 회사일도 한달이면 다시 적응할 것이고 내 마음을 무겁게하는 이들 역시 회사를 떠나는 순간 사라질 일시적인 번잡함일 뿐이다. 머릿속에 담아둔 고민도 마찬가지다. 요즘 떠오르는 고민들은 작년 이맘 때에도, 재작년 이맘 때에도 늘 존재하던 것들이다. 나는 고민을 늘 그림자처럼 갖고 다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에서 발아된 통증에 시달리는 것 또한 나의 지독하고도 고독한 의무였다. 반갑지는 않지만 이미 익숙해져버린 탓에 그것들이 정해진 범위를 넘어 일상을 침식하는 일들 냉정히 따져보면 많지 않았다. 결국 마음과 머릿속의 부유물들을 하나씩 나열해보면 결국 허겁지겁 살아야할 이유나 배경은 하나도 없다. 


하루를 버겁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날 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하지 않고, 그날 이룰 수 없는 것들만 시공간을 초월해 끌어오는 아집 때문이다. 그리고 이룰 수 없는 것들에 정체모를 의미를 부여하고 직시할 수 없는 모호한 이름을 붙인다. 모호한 것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어넣는다. 허겁지겁이라는 이름의 겁도 막연함에서 시작된 괴담일 뿐이다. 


허겁지겁의 반대편으로 가자. 그곳은 평온함이나 무료함이 아니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오늘의 직시하는 것, 명확한 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행할 수 있는 장면 하나를 하루에 집어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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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2일 처음 쓰다.

2023년 6월 21일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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