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보다 김치와 고추장이 더입맛에 맞고, 침대보다 온돌이 더 좋다던 귀화 한국인 민병갈 박사가 가꿔낸 그곳......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피츠턴 버크넬 광산촌에서 빈한한 집안의맏이로 태어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던 Carl Ferris Miller.
2차 세계대전 중 미군사령부 일본어 통역장교로 활동하며 1946년 연합군 중위로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딜 때가 그의 나이 25세였다 합니다. 그 후 무엇이 그를 한국으로 불렀을까요. 전쟁 중엔 자원해서 한국에 왔었고, 1953년엔 한국은행에 취직하여 터를 잡으면서 아예 귀화하게 됩니다.
천리포 사람 누군가가 본인의 땅을 사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1962년 1.5ha의 땅 매입을 시작하여 1971년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합니다. 그 이후 계속적으로 근처 땅을 매입하여 5군데로 나뉘어 있는데 4곳은 비공개 지역이라고 하더군요. 그곳에 서식하는 식물은 16,000여 종이라 하니 가히 대단한 성취를 이룬 샘입니다. 그 많은 식물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 그들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는 경탄스런 광경이란.....
수목원의 식물 이름표
민병갈 박사님이 남기신 말입니다.
나는 3백 년 뒤를 보고 수목원 사업을 시작했다. 나의 미완성 사업이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내가 제2의 조국으로 삼은 우리나라에 값진 선물로 남기를 바란다.
2002년도에 세상을 뜨신 박사님의 바람대로 그 이후 수목원은 10명의 이사가 선임되어 함께 가꿔나가고 있다 합니다.
올해가 수목원을 설립한 지 50주년이며, 박사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랍니다.
코로나로 지친 심신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박사님의 선물과도 같은 <천리포수목원>에서 치유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노라면 좋은 인연과 만나고, 그 인연을 통해 또 다른 활로를 개척하기도 합니다.
수목원의 이사님 중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의 저자 고규홍 님의 열정적인 식물 강의로부터 이 여행은 시작되었는데요.
민병갈 박사님이 그러하셨고요.
"인천항에 상륙했을 때 이곳에 한번 살아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기자 생활을 하던 고규홍 이사님도 어느 해 6월, 천리포수목원을 찾았을 때, 아직 피어있는 목련을 보고 식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식물도감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수많은 종의 목련이 있었습니다. 수목원 곳곳에......
박사님은 목련을 많이 좋아하셨다 하더군요.
그리하여 사후 목련나무 밑 수목장으로 그분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2002년 4월 초 타계하신 박사님이 그해의 목련꽃을 보지 못하심을 못내 아쉬워하던 수목원 식구들은 4월 말경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던 목련들을 "이 속도 없는 것들아~~!!" 핀잔을 주었다는데, 특별히 민박사님이 아끼던 목련은 그해 꽃을 피우지 않고 박사님의 서거를 애도했다는군요.
요즘 '반려식물'이라는 표현들을 많이 하는데요.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치유력의 힘을 많은 사람이 믿기 때문이겠죠.
영화 <식물 카페, 온정>에서 그 따스한 위로를 맛보기도 했네요.
영화 포스터
종전 사진기자현재는 파키스탄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로 더 이상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수목원에서의 식물과 교감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식물 카페를 열어 식물과 더불어 사람들을 치유합니다.
화학을 전공하셨고 금융계에 종사하시던 민박사님의 뒤늦은 식물 사랑은 대단하셔서 그 분야에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루었는데요.
한국 자연을 사랑하여 전국을 답사하던 시기, 1978년도에 남해안 완도에서 발견한 감탕나무와 호랑가시나무의 교잡으로 생긴 신종 식물을 발견하고 국제규약에 따라 '완도 호랑가시'로 명명하게 됩니다.
수목원 내 설명판
물속에서 산다는 낙우송을 3그루 가져다 물속과 물 옆에 심어 그들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속에 심은 낙우송은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여리여리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 속의 낙우송과 물 옆에서 자라는 낙우송
또 특별한 나무의 사연은 이란산 카스피주엽나무였습니다. 이 나무는 이란에 많은 낙타가 잎을 따먹기에 낙타의 키에 맞춰 그 윗부분에만 입이 나고, 아랫부분에는 가시가 잎 대신 나 있었는데요. 이곳에 와서 40년이 지나니 서서히 아랫부분에도 잎이 돋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나무들도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카스피주엽 나무의 변화 모습
이렇게 식물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여유를 갖도록 독려하는 <천리포수목원>......
숲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크라운 샤이니스'를 확인할 수 있다죠?!
크라운 샤이니스
서로 경쟁하며 자라지만 각자의 경계를 지키며 이웃을 침범하지 않는 현명함.
그렇게 우리는 그날 밤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대화를 나누며 타인의 관심사에도 호기심을 발동하며 천리포 바다를 즐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