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Apr 15. 2022

스릴 넘치는 진로상담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학교에서 사서로 근무하면서 같은 학교에서 사서교사 교생실습을 할 때의 일이다. 평생 한 번뿐인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해 주고 싶었다. 무엇을 해 주어야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기억에도 남을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여 찾아낸 답은 진로상담이었다.


   담임선생님과 상의를 해서 자습시간을 활용하여 매일 3~4명씩 상담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총 43명이었다. 매일 4명씩 꽉 채워 상담을 한다고 해도 꼬박 2주가 넘게 걸리는 상담이었다. 대학교 때, 교양과목으로 각종 상담 관련 수업은 다 들었던 터라 나름대로 자신감이 넘쳤다. 진로상담을 제대로 해 주면 교생실습 기간도 좀 더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번호 순서대로 진로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1번 소공녀부터 43번 홍깨비까지 매일 아침과 저녁 자습 시간마다 한 명씩 따로 불러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진지하게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물어보았다. 플로리스트, 레터링 디자이너, 역사 선생님, 모델, 수의사, 화가, 뮤지컬 배우, 체육 선생님, 메이크업 아티스트, 유치원 교사, 국어 선생님, 영화감독, 여행작가, 사서 선생님, 간호사, 무대 디자이너, 사회복지사, 건물주 등등 다양한 아이들의 꿈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사서 교사답게 제일 먼저 아이들의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책을 추천해 주었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기초작업이 무엇인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당 직업을 갖기 위해 어떤 학과로 진학하면 도움이 되는지도 알려주었다.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짧은 범위에서였지만, 유용한 정보들을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았다.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여러 날이 흘러갔다.


   진로상담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은 43번 홍깨비의 차례였다. 깨비는 평소 얼굴에 생기도 없고 밤에 무얼 하는지 항상 비몽사몽이었다. 수업 시간엔 주로 맨 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억지로 깨워보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잠들었다. 아주 가끔 화장실에 갈 때만 휘적거리며 일어나곤 했다.


   학기 초, 깨비와 관련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집에는 학교에서 야자를 빠지면 혼난다고 말하고, 학교에다가는 엄마가 학원을 가라고 했다고 야자를 쨌다. 그렇게 얻은 시간에 깨비가 향한 곳은 PC방이었다. 깨비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게임에 너무 깊이 빠져 게임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아이였다. 학교도 집에서도 깨비가 게임을 못하게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썼다. 그런데 양쪽의 눈을 모두 속이고 몇 개월이나 몰래 게임을 하러 다녔던 거다.


   사실이 밝혀진 후부터는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부모님이 깨비를 데리러 왔다. 중간에 PC방으로 새지 못하도록 깨비에게 철저한 감시가 붙었고, 깨비는 집으로 직행해야 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었기에 깨비의 진로상담 시간은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드디어 깨비가 내려왔다. 깨비를 맞은편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깨비야,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 친구 생각이 많이 나요."

  

  "어떤 친구?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어?"

  "제가 5학년 때 친한 친구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안 친해?"

  "걔랑 6학년 때 같이 놀이공원에 바이킹을 타러 갔다가, 바이킹을 잘못 타서 목이 잘려 죽었어요."

  

  "...... 응?"

  "요즘 그 친구가 생각나요."


   적잖이 당황한 나는 말을 살짝 돌리기로 했다. 게임중독이 너무 심해 현실과 상상을 구분 못하고, 가끔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을 했구나. 공포영화 같다."

  "....."


  "자, 그래서 깨비는 뭘 하고 싶어? 아니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직업도 좋고 아니면 이런 종류의 일이 좋다는 것도 괜찮고."

  "시체 닦는 일이요."


  "시체... 닦는 일? 그런 일이 있어?"

  "장례업체에 가서 시체 닦는 일이 있대요."


  "그게 왜 하고 싶은데..?"

  "돈을 많이 준대요."


   내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깨비는 입꼬리 한쪽을 올려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들이 많이 죽어야 하는데."

  "............."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얼른 이 진로상담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런 직업이 있구나. 샘은 무서워서 못할 것 같은데. 좀 더 밝은 직업을 찾아봐도 좋지 않을까? 아직 어리니까 너무 단정할 필요는 없지. 하고 싶은 것들을 다양하게 더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아. 오늘 수고했어. 교실로 돌아가도 돼."


   나는 그야말로 속사포 랩처럼 대답도 듣지 않고 할 말을 다다다다 쏟아붓듯이 해댔다. 깨비가 뭐라고 대답해도 들리지도 않았다. 대답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깨비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휘적휘적 걸어 교실로 돌아갔다. 깨비가 돌아간 다음에도 온몸에 돋은 소름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앞에 펼쳐두었던 교생실습일지와 교생실습일지와 진로상담 관련 도서들을 정리하는데 야자감독을 하던 담임선생님이 도서관으로 내려오셨다.


  "샘, 너무너무 수고하셨어요. 진짜 애들한테 도움 될 것 같아요. 제가 해야 하는 건데, 샘 덕분에 제가 편해졌네요."

  "아니에요. 저도 즐거웠어요."

  "그럼 다행이고요. “


  "근데 좀 전에 깨비가 자기는 시체 닦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시체 닦는 일이요? “


  "돈을 많이 번대요. 그러더니 내가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들이 많이 죽어야 되는데 하고 씩 웃는 거예요."

  "네....?"


  "저 완전 소름 돋아서 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걔가 게임 중독 때문에 가끔 헛소리를 해요."


  "아니 근데 눈빛이 진심이었어요."

  "에휴. 샘 신경 쓰지 마요. 또 이상한 소릴 했나 보다."


  "너무 소름 끼쳤어요. 으아아.."

  "고생하셨어요. 이제 얼른 집에 가서 쉬세요."


  "샘도요."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깨비 때문이었는지 자는 동안 바이킹에 목이 잘려 죽은 친구가 나오는 악몽을 꿨다. 깨비의 이야기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다.


   깨비는 계속해서 게임중독을 이겨내기 위한 치료를 받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2학년이 될 무렵에 나는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학교를 떠나야 했다. 다른 아이들의 소식은 얼핏 여기저기서 들려오기도 하는데, 깨비의 소식은 전혀 듣지를 못했다.


   솔직히 깨비를 생각할 때면, 얘가 이러다가 뉴스에 나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생각날 때마다 깨비의 게임중독이 잘 치료되게 해 달라는 기도도 했다. 무섭기도 했지만 정작 깨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이들의 진짜 고민 앞에서 나는 얼마나 무기력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깨비가 그 이후로 훨씬 좋은 선생님, 선후배, 친구들을 만나 점점 좋아졌기를. 지금은 멋진 청년 깨비가 되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마음을 달래볼뿐이다.


  "근데 깨비야, 그 친구 이야기 진짜니? 샘은 아직도 좀 궁금해."

이전 08화 미안해 널 미워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