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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Feb 18. 2022

미안해 널 미워해

네가 자꾸 미워지는 이유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오는 한 아이가 있었다. 키는 작은데 꽤 뚱뚱하고 행동은 느릿느릿했다. 내게 특별히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수업 전 예비종이 친 후 교실로 돌아갈 때가 되면 특유의 느릿느릿함으로 책을 정리했다. 종종 시간이 늦었는데도 정리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냥 기다려 주면 됐을 텐데 내 조급함에 아이를 재촉하고 채근했다.


  "예진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읽은 책 제자리에 꽂으려고요."


  "예비종 친 게 언젠데 아직도 여기 있으면 어떡해. 빨리 가야지."

  "네에. 이거 하고 나서요."


  "수업에 늦으면 안 되잖아. 그냥 두고 얼른 올라가."


   답답했다. 예진이를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요령도 없는 데다 행동은 굼뜨고 둔해서 싫었다. 나중엔 모든 게 거슬렸다. 사람들이 나를 이런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엄마가 늘 내게 말했었다. 키도 작은데 뚱뚱하기까지 하면 둔해 보인다고. 그 말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보이는 내 모습이 미웠다. 나도 모르게 그 미움을 예진이에게 투사했다. 그때만 해도 정확하게는 몰랐다. 그저 예진이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도 잔뜩 날을 세우고 예진이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별일 아닌 것도 예진이가 하면 미워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예진이의 모든 행동이 불편했다. 그 애 역시 나를 불편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딪치지 않으려 했지만 모든 행동이 나쁜 방향으로 해석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넌 도대체 왜 매번 그러는 거야. 샘이 몇 번 말해.”

  “.....”


  “샘이 말하는 거 안 들려?”

  “.....”


  “내 말이 그렇게 듣기 싫으면 그냥 오지 마.”

  ”샘. 대체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뭐?"

  "샘 왜 저한테만 그러시냐고요.”


  “내가 뭘 너한테...”

  “제가 샘한테 뭘 잘못했나요? 왜 절 그렇게 미워하세요?”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내가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예진이는 울면서 뛰쳐나갔다. 그때 뛰어나가 아이를 붙들고 사과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명확하진 않아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예진이에게서 보이는 적나라한 내 모습이 싫었다는 것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건 잘못인데.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 일인지 가장 잘 알면서도 학생에게 나를 투사해 버린 거다. 가장 되고 싶지 않던 어른이 되어버렸다. 내 모습을 반성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그 후로 예진이를 계속 기다렸다. 도서관 문이 열리면 혹시 그 애일까 싶어 고개를 쭉 뺐다. 그 아이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학기가 끝나고 예진이는 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결국 사과하지 못했다.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만한 착각이었다.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다.


   믿을만한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상담을 받으면서 나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보는 시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가족, 친구 그 외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았다.


   이제껏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나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뚤어져 있던 시선과 관점을 바로잡으니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여전히 예진이가 생각이 난다. 마음 한편에 언제나 예진이의 그 표정이 담겨 있다. 이 글을 빌어 예진이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사과를 전한다.


  "예진아. 잘 지내고 있지? 샘도 그때 부족한 점이 많아서 너를 힘들게 했지. 정말 미안해. 지금은 네 덕분에 다른 아이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각자의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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