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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Feb 04. 2022

갈 곳 없는 아이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른다

학교는 아이들이 생활하고 배우고 친구들을 만나고 성장하는 곳이다.


   과연 그럴까. 때로 학교라는 곳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말 못 할 정도로 괴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매일 학교에는 가야 하는데 하루가 얼마나 길고 힘들까.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하다못해 화장실에서도 쉴 곳이 없는 아이들이 있다.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아이라 해도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다. 해맑아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 뒤에 각자의 다른 사연이 있다는 것을.


   내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6명의 무리로부터 1년간 학교폭력을 당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그 아이들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들의 방해와 끈질긴 괴롭힘으로 인해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교실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운동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과도 아니었다. 화장실은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곳이라 부담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내가 택한 피난처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 가면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고, 방해하지도 않았다. 내가 선택한 책 속 세계에 빠져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 내내 도서관에 박혀 있다가 종이 칠 때쯤 교실로 돌아갔다. 수업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괴롭힘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불필요한 관심 같은 건 받지 않아도 됐다.


   10년 후, 학교도서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은 한 가지였다. 교실, 운동장, 화장실 등 어디도 있기 힘든 아이들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 마음 편하게 언제든 올 수 있고 조용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곳. 평범하게 일상적인 인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길 바랬다.


   사서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이나 교과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갖는 메리트가 있다. 성적평가를 하지 않으니 더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도 거리낌 없이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상담했다. 아이들이 친구들이나 선생님에 대해 지나친 비난은 하지 않도록 했다. 수위조절이 안 되면 또 다른 다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기본적으로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는 공간이 되길 원했다. 내가 운영하는 학교도서관은 그런 곳이었으면 했다.


   가끔 교실에서는 조용하면서 도서관에 와서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있다. 내가 꿈꾸는 도서관을 위해 그런 아이들은 초기에 자제하도록 하는 편이다. 막상 담임 선생님께 그런 사실을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신다.   


  "샘, 오늘 준희가 도서관에서 이러저러한 사고를 쳐서 지도했어요. 샘도 한 번만 더 주의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준희가요??? 걔가 말도 해요?"


   이런 식이다. 교실에선 한 마디도 못하는 녀석들이 꼭 도서관 와서 심하게 장난을 치는 걸 보면 속상하다. 오죽 답답하면 도서관에 와서 그럴까 싶어 한 편으론 안쓰럽다. 반대로 괴롭힘 당하는 애들 입장에서 보면 지도를 안 할 수가 없다. 도서관이 편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질서는 지켜야 하는 거라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지난 16년 동안, 학교 안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여기저기를 헤매는지. 갈 곳이 없어 떠돌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루 정도 출장을 가거나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는 날이 있다. 다음 날 아이들이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샘, 어제 어디 갔었어요?"

  "출장 간다고 붙여놨는데 못 봤어?"


  "봤는데. 갈 데가 없어서 문 앞에 앉아있었어요." / "저도요."

  ”문 앞에? 바닥 안 차가웠어?”


  "그냥 문 열어놓고 가면 안 돼요?"

  "그건 안 돼. 관리가 안 되잖아."


  "제가 문 닫을게요. 저도 잘할 수 있어요."

  "그건 안 돼. 하루니까 좀만 참으면 안 될까?"


  "진짜 갈 데가 없어요. 딴 데 가면 귀찮게 한다고 혼나요." / “맞아.”

  “혼내기까지 하셔?”


  "샘, 출장은 한 학기에 아니다 일 년에 한 번만 가요."

  "그럴 수가 없지. 지금도 최대한 점심시간은 피해서 가는 거야."


  "히잉. 알겠어요. 이제 또 언제 가요?"

  "당분간은 없어."


  "앗싸~"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숨 쉴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 놓고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애써 그런 척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다. 또 어른이라 어쩔 수 없는 잔소리를 해야 해서 늘 미안하다.


   보이지 않는 친구 관계의 압박, 성적의 압박,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압박,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 등 여러 가지 것들이 숨통을 누른다. 아이들은 오늘도 자유롭게 숨을 쉴 곳이 필요하다. 도서관이 그런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밝고 쾌활하던 막냇동생 천지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선택한 후, 뒤늦게 동생의 흔적을 따라가는 언니 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지는 친한 줄 알았던 친구 화연으로부터 교묘한 괴롭힘과 언어폭력을 당해 왔다. 엄마도 친언니인 만지도 천지의 상황과 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만지는 천지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대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천지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은 도서관에서 만난 추상박이었다. 그는 말한다. “살다 보면 엄한 사람한테 속 얘기를 할 때도 있는 거야. 엄한 사람은 비밀을 담아 둘 필요가 없잖아. 내가 바로 그 엄한 사람이야.”



   나도, 내가 운영하는 도서관도 아이들에게 추상박 같은 사람, 추상박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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