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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Dec 10. 2021

무지개 연못엔 눈물꽃 핀다

쪽지가 건넨 용기

​평소처럼 분주하고 정신없는 점심시간이었다. 폭풍이라도 한바탕 휘몰아친 듯 도서관에 가득하던 아이들이 줄어들 무렵 겨우 한숨을 돌렸다.


눈이 커다랗고 개구리 머리띠를 즐겨해서 개구리 왕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고3 효정이가 터벅터벅 다가와 내게 책을 내밀었다.


  -샘, 반납이요.

  -그래 효정아. 잘 지내? 요즘 많이 힘들지?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아. 너 충분히 잘하고 있어.


   오랜만에 온 효정이에게서 책을 받아 들며 한 마디를 건넸다. 반납도서 바코드를 찍는데 효정이가 갑자기 얼굴을 감싸 쥐더니 도서관 대출대 옆에 딸린 화장실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깜짝 놀랐다. 혹시 코피가 났나 싶어 나도 재빨리 효정이를 뒤따라갔다.


  -효정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효정이의 커다란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울고 있었던 거다. 괜한 말을 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말 한마디에 울컥했을까 싶어 짠하기도 했다. 효정이를 품에 안고 계속 다독여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가지 "괜찮아. 울어도 돼"라는 말이었다.


   화장실로 나를 찾으러 온 도서부 아이 한 명에게 눈짓으로 대출대를 부탁하고, 한참 동안이나 효정이를 안은 채로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있었다. 예비종이 치고 다른 아이들이 모두 교실로 돌아갔을 즈음 효정이는 눈물을 그쳤다.


   내가 효정이라면 괜히 민망할 거 같아서, 누가 눈 왜 부었냐고 물으면 사서 샘한테 혼났다고 하라는 객쩍은 소리를 건네고는, 새 손수건 하나를 쥐어주고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냈다. 효정이가 가고 난 후에도 내내 아이의 눈물과 표정이 생각나서 마음이 안 좋았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물어봐서도 안 될 것 같았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다. 수능 예비소집일이라 고3은 오전 수업만 하고 하교 예정이었다. 분주하게 도서관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효정이가 '샘~'하고 들어오더니, 내 손에 쪽지 모양으로 예쁘게 접은 종이 하나를 쥐어주고 도망치듯 나간다.


  -효정아! 이게 뭐야?

  -저 가면 읽어보세요. 시험 잘 보고 올게요.

  

  -그래. 시험 잘 봐. 효정이 화이팅!!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후 조용해진 도서관에 앉아 효정이가 전해 준 쪽지를 펼쳤다. 쪽지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선생님, 지난번에 제가 울었을 때 안아주시고 다독여 주셔서 완전 감사했어요. 저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 그날은 좀 그랬어요. 수능은 얼마 안 남았는데 공부도 너무 안 되고, 자신감도 떨어져서 진짜 힘들었는데, 샘이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 너무 고마웠어요. 그전에는 잘 몰랐는데 그때 샘이 정말 친언니 같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 시험 열심히 잘 보고 올게요."


   효정이가 준 쪽지를 읽으며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어려운 시험을 앞두고 지치고 힘든 시간을 씩씩하게 극복해 낸 효정이가 대견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그 짧은 순간을 기억하고 감사의 편지까지 써 준 그 마음도 고마웠다.


   그 후, 효정이는 수능을 잘 마치고 가고 싶어 하던 전공분야로 무사히 진학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효정이가 전해준 쪽지는 아직도 내 서랍 안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내가 이 일에 충분치 못하다고 느껴질 때, 넉넉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할 때,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지 고민될 때 가끔 효정이의 쪽지를 꺼내 본다. 그걸로 오늘도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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