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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19. 2021

크리스마스는 교회 가는 날 아니야

소심한 종교전쟁

학교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일하던 때로부터 네 번째 계절을 맞이할 즈음이었다. 적응만으로도 버거웠던 봄, 익숙해지기가 무섭게 모두가 떠나버린 고요한 교정에서 맞이한 여름은 금세 흘러갔다.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과의 북적북적한 축제 준비로 떠들썩했던 가을도 지났다. 가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겨울은 서둘러 도착했다.


   수능이 끝난 후의 고등학교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공존한다. 지난 12년간 애쓰고 노력해 온 큰 산을 하나 넘은 아이들의 해방감이 여기저기에 묻어 있다. 물론 여전히 대입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함이 가끔 비춰 보일 때도 있다.


   동시에 약 360일 후면 커다란 인생 과제를 맞이해야 하는 다음 학년의 아이들이 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가득하다. 본인도 모르게 때로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이쪽도 저쪽도 이해가 가서 각자를 나름의 방법으로 격려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한 위로의 방법은 아이들이 오는 시간에 맞추어 도서관에 잔잔하게 음악을 틀어주는 거였다.


   도서관에서 CCM을 가끔 들려주었다. 가사가 좋은 대중가요를 틀어두기도 했다. 종교색이 있는 학교라서 신앙과 믿음의 부담을 가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 나름의 선교지로 생각하고 소심하게 교회 다니는 애들 편을 들기도 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도서관에서 논리쌤이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진 수업을 보강할 날짜를 정하는 거였다. 논리쌤이 물어보는 날마다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 학원을 가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들이 학원가는 날을 제외하고 나니 남는 요일이 없었다. 결국 화가 난 논리쌤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야! 니네는 맨날 학원만 가냐. 그럼, 크리스마스 날 보충하자. 그날은 학원 가는 애 없지?


그 말에 한 아이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넌 왜? 뭐?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가야 되는데요.

-뭐? 야!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교회를 다니냐. 그런 건 초등학교 때 졸업했어야지.


-저도 교회 가야 돼요. /  저도요.

-크리스마스는 교회 가는 날이 아니고 보강하는 날이야. 알았냐?


   말을 마친 논리쌤은 먼저 자리를 떴고, 아이들은 도서관에 남아 웅성웅성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크리스마스는 교회 가는 날이야.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잖아. 당연히 교회 가야지.

-아 근데 논리쌤이!


-그건 논리쌤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니까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 크리스마스 때도 교회 안 가면 언제 가냐?

-맨날 논리쌤 맘대로 시간 잡아요. 진짜 안 되는데.


-부모님도 교회 다니셔? 부모님한테 혼난다고 핑계대고 보강 다른 날로 잡자고 말씀드려 봐.

-그래야겠어요. / 나도 엄마한테 일러야지.


-화이팅!!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름의 해답을 찾은 아이들은 인사를 하고는 우르르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나도 논리쌤이 말했을 때 조금 열 받았었다. 본인이 타 종교라고 해도 타인이 존중하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이미 어른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학교는 특정 종교재단에서 설립한 사립학교였다. 그곳에 있던 3년 간은 매일 소소하게 크고 작은 나름의 종교전쟁을 했다. 한 번은 종교재단의 간부를 맡고 있다는 선생님이 오셔서 내게 주말마다 종교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며 자신들의 교에 들 생각이 없는지 물으신 적도 있었다.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대답했더니 그 이후로는 종교문제로 내게 말을 걸지 않으셨다. 다시 강요하면 일을 관둔다고 말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논리쌤의 '크리스마스는 교회 가는 날 아니야' 라고 했던 그 황딩한 말에 대놓고 반박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조금의 용기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례하게 행동했던 그때의 논리쌤에게 다시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크리스마스는 교회 가는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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