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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05. 2021

고딩도 사탕에 목숨 건다

초긴장 첫 수업

처음 학교도서관에 출근했던 날, 업무는 낯설었지만,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총 45학급에 학생 수는 1,750명. 꽤 큰 규모의 학교였다.

학교도서관에서는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도서관 이용교육'을 진행한다. 도서관에 대해 기본적인 이용안내, 도서를 주제별로 나눈 한국 십진분류법, 도서관 이용규칙 등을 알려주는 시간이다.

   1학년 신입생은 총 열다섯 반이었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각반마다 1시간씩 '도서관 이용교육' 을 진행하였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는 재미난 수업을 하기 위해, 며칠간 머리 아프게 고민하여 수업지도안을 짰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퀴즈도 넣었다.

   퀴즈를 하려면 당연히 상품이 있어야 한다. 대체 무엇을 상품으로 주면 좋을까. 사비로 준비해야했기 때문에 너무 큰 건 부담스러웠다. 각반별로 5개의 퀴즈, 상품은 여유 있게 7~8개를 준비했다. 합쳐서 총 100여 개를 준비해야 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준비한 상품은 개별 포장된 사탕이었다. 겨우 사탕밖에 줄 수가 없어 미안했다. 형편상 그 이상은 무리였다. 사탕을 줄 테니 퀴즈를 풀라고 하면 반응이 어떨까? 우리가 어린애냐고 투덜거리거나, 우리를 뭘로 보는 거냐고 화내진 않을까?

   드디어 '도서관 이용교육'이 시작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원활하고 매끄럽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퀴즈 시간이 되었다.

"지금까지 배웠던 내용으로 퀴즈를 풀어보겠습니다. 다섯 개의 퀴즈가 있는데, 맞추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있어요."

"오오~ 선물이 뭐예요??“

"이따가 받아보면 알 수 있어요. 일단 1번 문제 진행해볼까요?"

"빨리해요!!“

"샘이 퀴즈를 내면, 아는 사람은 손을 드세요. 지목을 하면 그 사람이 정답을 맞히면 됩니다. 혹시 틀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기회가 있어요. “

"네~“

"자, 1번 문제입니다. 이 책은 아까 배운 한국 십진 분류표 중에, 어느 주제 번호에 속할까요? “

"저요~! 800번 문학?"

"정답입니다! 나와서 상품 받아 가세요. “

   사탕이 상품인 걸 확인한 아이들은 갑자기 업 되기 시작하더니, 두 번째 문제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손을 다 내리라면서, 의자 위에 올라가는 아이도 등장했다. 그야말로 봉숭아학당이 따로 없었다.

   사탕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참여하는 건지 피식 웃음이 났다. 고등학생들도 그저 아이들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얻은 나는 퀴즈를 다 푼 이후에,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한 가지를 더 약속했다.

"지금부터 수업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듣는 친구들 중 2~3명을 뽑아서 마칠 때 사탕을 더 줄게요. “

"우와 아아아아아~“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그러더니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이용규칙을 같이 읽어 보자고 했더니,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그 모습에 또 웃음이 터졌다.

   시커먼 고등학생들이 사탕 하나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다니. 그 모습이 또 참을 수 없게 귀여웠다. 용기를 얻었다. 초짜 선생에 심심한 내용, 보잘것없는 상품인데도, 열심히 반응해 준 아이들 덕분에 '도서관 이용교육'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고딩도 사탕에 목숨 건다는 것을. 아이들에겐 사탕에 담긴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탕 하나에 도서관 수업실을 온통 봉숭아 학당으로 물들였던 그때 그 녀석들의 즐거운 미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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