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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Feb 25. 2022

하나뿐인 우리 반 반장

빗물 젖은 케이크는 달콤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김영란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2009년 2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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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식과 졸업식이 끝나고 2월 봄방학이 시작되었다. 학생들로 북적거리던 학교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다. 끼익~ 소리와 함께 도서관 문이 열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내가 교생실습으로 맡았던 우리 반 반장이었다. 비를 맞았는지 온몸이 다 젖었고, 얼굴 가득 울상이다. 유나는 나를 보자마자 울먹거리며 말했다.

  "샘, 죄송해요. 제가 예쁘게 잘 가져왔는데, 다 와서 넘어져서... 으아앙. 엉엉."


   비에 홀딱 젖은 우리 반 반장이 울면서 내게 건네준 건, 다 찌그러지고 구겨진 케이크 박스였다. 순간 그녀의 울먹거림과 속상함이 다 이해가 됐다.


   내가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학생은 봄방학에 학교 올 일이 없으니, 퇴근하기 전에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거다. 혹시 늦을 까 봐 걱정이 되어, 하굣길에 서둘러 케이크를 샀고, 내게 가져다주러 유나는 혼자서 학교로 돌아왔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비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다. 케이크를 예쁜 모양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서, 그녀는 결국 우산 쓰기를 포기했다. 온몸으로 비바람을 다 맞으면서도 양손으로 소중히 케이크 박스를 들고 왔던 거였다.


   케이크를 들고 학교로 걸어오는 10여 분 동안, 혹시나 흔들려서 모양이 망가지진 않을까 엄청나게 신경을 썼을 거다. 애석하게도 학교에 다 와서 사고가 생겼다. 오르막길에서 발밑을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졌고, 케이크 박스는 바닥으로 떨어져 구겨지고 찌그러졌다. 게다가 비까지 맞았다. 찌그러진 박스를 들고 도서관에 올라오면서 얼마나 속상했을까.


   엉엉 울고 있는 우리 반 반장 유나의 어여쁜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동시에 케이크 모양이 다 망가졌다며 속상해하는 유나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울먹이는 그녀를 달래주면서도, 내 입가는 미소로 가득 채워졌다. 울먹이는 유나를 보니 몇 달 전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유나의 얼굴이 생각났다.


   일반적으로 교생실습은 대부분 3~4주면 끝난다. 내 경우는 조금 특별했다. 본래 일하고 있던 학교라서 교생실습이 끝난 후에도 한 층 아래에서 매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고맙게도 지난 1년 동안 우리 반 아이들과 체육대회, 소풍, 축제 등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함께 한 해를 보내는 동안, 유나는 반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선생님과 아이들을 도왔다.


   언젠가부터 같은 반 아이 중 몇몇이 유나를 은근히 따돌리기 시작했다.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친구들 생각은 안 하는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던 유나는 어느 날인가 나에게 찾아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유나는 이 일로 생각보다 꽤 오래 맘고생을 했다.


   다행히 가을 무렵에는 유나의 변함없는 노력으로 오해가 풀어졌다. 그 후 가을 소풍으로 갔던 강가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던 유나와 눈이 마주쳤다. 유나는 날 보고 정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친구들과 함께 까르르 웃었다. 아이들의 웃음 뒤로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와 노을이 눈부셨다.


   수건을 건네주고 유나가 젖은 머리와 몸을 닦는 동안, 나는 구겨진 박스 안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케이크 위의 생크림 일부가 박스 여기저기에 흩어져 붙어있었다. 케이크 한쪽이 조금 찌그러졌지만, 다행히 빗물이 들어가진 않은 것 같다.


   망가진 케이크를 보자 다시 왈칵 눈물이 나는지, 또 울먹거린다.

  "예쁘게 드리려고 엄청 조심히 들고 왔는데..."

 

  "괜찮아, 울지 마. 모양 좀 망가지면 어때. 이거 반 애들이랑 같이 준비했어?"

  "아니요. 제가 샘 챙겨드리고 싶어서.."


  "진짜? 우리 유나가 샘을 생각해서 준비해 준 것만으로도 완전 대박 감동받았어."

  "그래도 다 망가져서 죄송해요. 흑흑."


  "죄송하긴. 와~ 정말 맛있다. 얼른 너도 한 조각 먹어봐. 케이크가 맛있으면 된 거지. 모양이 뭐가 중요해. 고마워."


   케이크를 한 입 받아먹은 그녀는 진짜 맛있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런 유나가 귀여워서

  "너, 방금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했더니,

  "언제요. 저 안 웃었거든요."

하고 정색하며 시치미를 뗀다. 귀여운 녀석.


   우리 둘은 그렇게 울고 웃으며 찌그러진 생크림 케이크를 맛있게 먹어치웠다. 울다가 웃다가 생크림까지 온 얼굴에 묻어서 엉망진창이었지만 유나의 따뜻하고 예쁜 마음 덕분에 행복했다.


   이 학교에서 사서 샘으로 근무를 하면서, 동시에 교생실습도 하게 되었다. 정교사가 되더라도 사서교사는 교과가 아니기에 담임을 맡을 수도, 승진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교생으로서의 담임 반이었다.


   원치 않게 학교를 떠나야 했었기 때문에 사실 아쉬웠고 서운했다. 내 평생 한 번뿐인 우리 반, 궂은 날씨에도 마음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해준 하나뿐인 우리 반 반장이 있어서 마음속 아쉬움을 깊이 위로받을 수 있었다.


  "너의 그 예쁜 마음,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유나야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그 케이크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최고로 맛있었어. 아마 네 마음이 담겨서 그랬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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