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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Dec 17. 2021

나도 한 때는 제자였다

선생님을 부탁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생님이 계시는가?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저 매일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나에게 힘이 되어 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처음 시원 선생님을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도덕 시간이었다. 이분의 수업은 뭔가 달랐다. 선생님이 소개해주는 영화들-죽은 시인의 사회, 로빙화, 킹 사이즈 등을 통해 새로운 생각과 관점이 열렸다. 선생님이 만드신 동아리에 가입 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눈 가치 토론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 삶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배웠다.



   선생님은 상담실도 맡고 계셨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힘들 때마다 난 상담실에 찾아가 울곤 했다. 선생님은 우는 나를 말리지도 않고 가만히 보다가 휴지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울고 싶을 땐 눈물이 안 나올 때까지 울어. 그러면 돼." 언제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나를 혼내기도 하셨다. 그런 선생님이 오히려 좋았다.


   그날은 참 역사적인 날이었다. 시원 선생님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여름 독서캠프 특강을 해 주시러 오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동안 몇 권의 소설책과 에세이 책을 낸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로, 잠깐은 하자센터1)의 교감 선생님으로, 또 신촌에서 3명이 함께 운영하는 카페의 사장님으로 살고 계셨다.


   선생님을 뵈러 카페에 방문한 어느 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카운터에 있던 아르바이트 생이 나를 보고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뭐지?’ 하고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전에 근무한 학교에서 내가 2년간 만났던 학생이었다. 나의 은사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나의 제자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독서캠프 개회선언과 더불어 나의 스승님을 소개했다.


-오늘 오신 강사님을 소개해드릴게요. 오늘 강의를 해 주실 분은 <학교는 ●●>, <라락 와인>, <엄마 없서 슬펐니?> 등의 책을 쓰신 작가이자 제가 여러분만 했을 때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셨던 시원 작가님이십니다. 박수!!


-저는 소개받은 대로 유진 샘이 여러분만 할 때 처음 만났습니다. 이렇게 제자가 일하는 학교에 와서 강의를 한다는 건 제게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사실 시원 선생님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 한 사건에서 학생들의 입장을 들어주셨다는 이유로 학교를 관두셔야 했다. 학교를 관두고 그 지역을 멀리 떠나 아예 이사 가시던 날, 선생님의 첫 책에 사인을 받으러 찾아갔다. 책을 넘겨보시다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유진아, 이거 밑줄 누가 그은 거야?

  -제가요. 왜요?


  -어쩜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밑줄을 그어놨어?

  -하하. 제가 원래 주제 파악이 좀 빠릅니다.


  -아니, 진짜로 대단해. 좀 감동이다.

  -그냥 좋아서 그었는데 핵심 포인트였다니, 제가 샘을 너무 좋아하나 봐요


  -고맙다.


   그 후로도 나는 1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스승의 날마다 선생님과의 연락을 이어왔다. 많이 바쁘실 텐데 15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를 위해 시간도 내어 주시고,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좋은 강의도 들려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날 저녁,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부끄럽게도 그날의 식사는 내가 아니라 시원 선생님이 사 주셨다. 모든 것이 막막했던 그 시절, 나에게 선생님이 계셨기에 그나마 버텨낼 수 있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던 것 같다.


   나의 학창 시절에 스승다운 스승으로 내 곁에 계셔주셨던 시원 선생님을 기억한다. 학창 시절은 진즉에 지나갔지만, 선생님은 내게 여전히 배울 점 가득한 인생의 선배님이자 스승님이다.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며 멋지게 살아주셔서 늘 감사한 나의 선생님께 이 글로 늦은 안부를 전한다. 항상 건강하세요.


*1)1999년 12월 8일 개관한 하자센터는 서울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적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개발, 운영하고 지속 가능한 진로 생태계를 확장하는 청소년 직업체험 특화시설로서 공식 명칭은 ‘서울시립청소년미래진로센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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