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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26. 2021

방앗간 집 딸과 쌀 떡볶이 사서 샘

여름캠프 쌀떡볶이 파티

방학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 나는 매번 깊은 고민에 빠진다. 독서캠프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다양한 독서 활동을 체험하기 힘들다. 때문에 방학 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 다채로운 독후활동을 하게 된다. 그동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매년 2회씩 독서캠프를 운영해 왔다.  


   학교도서관 운영과 관리에 관한 모든 사항은 학교 사서가 결정한다. 방학 중에 운영되는 독서캠프 역시 운영계획 세우기부터 시작하여 간식 제공까지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해야 한다.


   프로그램 이외에 가장 신경을 쓴 건, 독서캠프에서 나누어 줄 간식을 정하는 거였다. 아이들의 ‘뇌고픔’과 ‘배고픔’을 동시에 해소하려면 어떤 음식이 가장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도서관 안으로 순둥순둥 하게 생긴 하얀 밀가루 같은 얼굴에 순수한 미소를 장착한 희주가 들어왔다.  


   희주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말했다.


  -희주야!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네.


  -가래떡 주문하려면 최소한 며칠 전에 말씀드려야 해?

  -그래도 2~3일 전엔 얘기해주시면 좋을걸요?


  -알았다. 고마워! 덕분에 고민이 해결됐다.

  -에?


   당시 내가 가장 자신 있었던 요리는 집에서 만든 떡볶이였다. 대학생 때 학교 축제 기간에 동아리에서 떡볶이와 어묵탕을 담당해서 5일 동안이나 판매한 적이 있었다. 또 동생이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내 요리가 바로 떡볶이이기도 했다. 거기에 희주는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방앗간 집의 딸이었다.


   내가 세운 계획은 이랬다. 학교 앞 방앗간에 가래떡을 주문해서 독서캠프 당일 아침에 받는다. 아이들이 조별 활동을 하는 동안 떡볶이를 만든다. 조별 활동이 끝나면 바로 떡볶이와 보너스로 어묵탕을 배식한다. 독서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이 메뉴를 점심으로 준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며 입에 침이 고였다.  



   드디어 독서캠프 당일, 미리 가래떡도 주문해 놓고 떡볶이에 들어갈 양념도 바리바리 다 챙겨 왔다. 독서캠프 참석인원은 중고등학교 합쳐서 40명 정도였다. 커다란 프라이팬 두 개에 양쪽으로 20인분씩 떡볶이를 끓였다. 눌어붙지 않도록 나무 주걱으로 번갈아 가며 양쪽을 저어주다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버렸다.  


   언제나 3~4인분의 떡볶이만 만들었던 터라, 40인분의 떡볶이가 어느 정도로 양이 많은지 가늠하지 못했다. 뜨거운 가래떡이 서로 얼마나 잘 달라붙는지, 떼고 자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지 못했다.

    떡볶이 양념은 맛있게 끓어오르는데 미처 다 분리하지 못한 가래떡 덩어리들은 양념 속을 자유롭게 떠다녔다. 한참을 끓여도 떡에 양념이 배지 않았다. 점심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직 떡볶이 양념에 동화되지 못한 하얀 떡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바닥에 있던 떡들이 눌어붙어 살짝 탄내가 날 무렵, 자유롭게 떠다니던 떡들도 어느 정도 빛깔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의 가래떡과의 사투 끝에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독서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길게 줄을 늘어섰다.  


   고맙게도 희주와 다른 몇몇 아이들이 배식을 도와주었다. 한 명당 종이컵 2개씩을 주고 컵 하나에는 적당량의 떡볶이를 담고, 또 하나에는 어묵탕을 담아 나눠주었다. 분명 설익은 떡도 있었을 텐데 아이들이 너무도 맛있게 남김없이 먹어주었다.


   점심 배식이 끝나고 남은 떡볶이를 먹으며 희주에게 사과를 건넸다.


  -좋은 쌀로 정성 들여 만들어주신 가래떡인데 샘이 망친 것 같아. 미안해

  -아니에요. 맛있었어요!


  -어머니께 진짜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려.

  -네! 전할게요. 덕분에 저도 잘 먹었습니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도서관에서 만들었던 쌀 떡볶이에서 나던 은은한 탄내. 깊게 배지 않은 떡볶이 양념에도 불구하고 가래떡 자체가 쫀득쫀득하게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두 남매의 엄마가 된 희주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 봐야겠다. “희주야,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지? 언제 샘이랑 맛있는 쌀 떡볶이 먹으러 또 가자. 샘이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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